다른 효율성, 갓성비

by 오로라

어제, 집안일로 내 인감증명과 엄마의 인감증명 등 각종 서류를 뗄 일이 생겼다.

처음엔 집에서 전자민원창구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나는 곧 포기하고 말았다.

매번 겪는 일, 또 뭔가를 설치해야 하고 인증절차를 여러 번 거쳐야 했다.

이번엔 두 번이나 해야 한다, 엄마 것까지.

나는 이런 작업이 몹시 힘들다.

기계치여서 그런지, 중간에 고객센터를 여러 번 찾기도 하고,

그 일은 때로 내 하루를 송두리째 잡아먹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단추’가 어디에 숨어 있는 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나는 앱이나 컴퓨터의 진행순서나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기계치인 거다.


그냥 행정복지센터에 직접 가기로 했다.

먼저 전화를 걸어서 엄마를 동행하지 않아도 되는 지 물어 봤다.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해서야 엄마의 인감증명에 대해서는 물어 보지 않은 것을 알았고,

그것은 위임장이 필요했다.


그런데, 하나도 속상하지 않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효율성을 따지고 완벽함에 여전히 집착하는 나라면,

이 일에 무척 화가 났을 것이다. 자책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저 다시 다녀오면 되는 일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스피드’에 관심이 없고, 완벽이란 말에는 벽을 느낄 뿐이다.

나를 혼낼 상사도 없고, 시간에 쫒길 이유도 없다.

덕분에 걷기 운동 잘한 셈이었다.


오늘, 나는 다시 위임장을 들고 행정복지센터로 향했다.

그런데 핸드폰에서 문자알림이 울린다.

확인해 보니 도서관에서 보냈는데,

내가 ‘상호대차신청’을 해 놓은 책이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는 거였다.

도서관은 행정복지센터에서 200 여 미터 거리에 있다.

행정복지센터에서의 일은 나에게는 여전히 매끄럽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잘 마무리하고 원하는 서류들을 들고 나왔다.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봄날은 참 좋았다.

초록빛 나무들은 앞 다투어 반짝거렸고,

이팝나무들의 튀밥 같은 꽃송이들은 한창 흐드러지다 사라진 벚꽃과는 또 다른 별미였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느 게 더 효율적인가. 갓가성비인가.

나는 두 번이나 여기를 오가며 시간을 사용했다.

그런데 공원을 가로지르는 산책 같은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의 마음이 동네 풍경을 보며 뛰노는 시간이었다.


무료인 전자민원창구와는 다르게 행정복지센터는 비용도 든다.

하지만 저렴한 커피 한잔 값 정도다.

커피 한 잔 값에 나는 컴퓨터와 씨름할 필요도 없고,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오늘도 6,000보쯤은 걸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야 또 깨달았다.


‘아, 도서관에 들리지 않았구나.’ 하하


[며칭 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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