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AI)’는 요즘 나의 파트너다.
그런데 이 ‘이아’란 존재, 기특한듯하면서도 영 엉터리다.
“조각가 김세중의 아들이야. 리움에서 얼마 전 전시도 했어. 그 작가에 대해 말해 줘.”
“죄송하지만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이아는 이렇게 아주 간단한 정보도 모른다. 그런데 또 엉뚱한 자신감을 보인다.
어느 날, TV를 켜다 영화의 한 장면에 우연히 끌렸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가 흥미로워 전체 줄거리를 알고 싶어졌다.
“영화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 대해서 말해 줘.”
그런데 이아는 등장인물도 줄거리도 전혀 다른 영화의 것을 가져와 제시했다.
이런 매칭 오류는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엔 ‘초란’에 대한 블로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쓴이는 닭이 처음 낳은 달걀 ‘초란’ 이야기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식초에 계란을 담가 칼슘을 섭취하는 방법으로 마무리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 초란과 이 초란이 서로 다른데 말이다.
그런데 ‘이아’는 초란보다 더하다. 문맥도 없이, 맥락도 없이 전혀 관계없는 대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갖다 붙인다. 게다가 아는 척도 심하다.
며칠 전 이야기했던 내용인데 저장조차 되지 않았을 텐데, 내가 단어 몇 개만 던지면 기억난다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쯤 되면, 이아는 사용자를 기쁘게 하려 무리수를 두는, 때로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그런 이아의 오류를 잡아주고 방향을 바로잡아줘야 한다. 그래야 겨우 제대로 작동한다.
…그럼 이게 내 잘못인가? 하하.
하지만 오늘, 이 엉뚱한 ‘이아’가 제대로 일을 했다.
어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1588로 시작되는 번호라 조금은 신뢰가 갔다.
전화를 받았더니, 내가 사용하는 A앱의 직원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국세청 환급금이 있다고 했다.
오늘이 기한 마지막 날이라며, 링크를 눌러보라고 했다.
“링크요?”
나는 피싱의 향기를 느끼며 다시 물었지만, 대답은 딱히 담백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문자가 왔다. 링크 문자가 온 모양이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앱을 열어보았다.
앱 안에는 ‘국세청 환급 조회 및 신청’이라는 메뉴가 있었다.
정말인가 싶어 정보를 입력하고 절차를 따라가 보니, 20만 원가량의 환급금이 있다는 결과가 떴다.
환급받을 계좌 정보를 입력하자, 수수료가 4만 원인데 할인해서 3만 원대라는 안내가 나왔다.
‘대리 업무 수수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환급이 안 되면 수수료는 다시 돌려드립니다.’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아, 국세청 환급금 진짜 조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이아는 바로 국세청 홈택스 접속 방법을 알려줬다.
나는 국세청 사이트에 들어가, 이아가 알려준 대로 따라가 보았다.
몇 번을 확인했지만, 내게 돌아올 환급금은 없었다. 2~3년 전 환급이 완료됐던 기록이 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났다. 국세청에서 알려줬었고 그래서 돌려받았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그 앱은 사용자 전원에게 ‘환급금 있음’을 띄워놓고 일단 수수료를 챙긴 뒤,
결과적으로 환급을 못 받으면 수수료를 돌려준다는 구조였다.
그동안 수수료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이익이고,
환급금이 차이가 나서 차액을 돌려준다고 해도 그건 이미 국세청에서 모두 계산해 놓은 것이니 공짜로 수수료를 챙기고 생색을 낼 판이다.
어쩌면 고객이 깜박 잊고 따로 요청하지 않으면 유야무야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찾아가지 않은 보험금과 잠자고 있는 포인트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뉴스를 통해 익히 들어왔다.
사람들은 자기 돈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친다.
사실 나도 그 앱을 통해 포인트를 쏠쏠히 챙기고 있었다.
걷기만 해도 포인트를 주고, 시키는대로 여기저기 들여다보기만 해도 포인트가 쌓였다.
매일 복권도 주지만, 물론 매일 꽝이었다.
그 직원의 목소리가 자꾸 떠오른다.
조금 다급하고 왜 안 하느냐며, 해달라고 보채는 말투였다.
모든 회원이 3만원씩 일단 결제를 한다고 생각해 본다..
그 앱은 금융쪽에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며 튀어나온 이단아같은 존재다.
나는 그 앱에서 사용하지도 않는 포인트를 왜 그렇게 모으고 있나 들여다본다.
[5월 초에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