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현실사이 1

by 오로라

오래전에 ‘아이 러브 스쿨‘이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나도 가입했는데 나는 곧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우리 반 남자애. 나는 반가움에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만나자고 누가 먼저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는 만나 보면 기억해 내리라 생각하고 용감하게 혼자 그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 친구 외에 여러 명의 남자애들이 나를 본다고 나와 있었고 그중에는 나를 기억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 만남으로 우리의 초등학교 동창 모임은 시작 됐다고 친구들이 늘 말해 준다.


그 친구는 정말 유쾌한 까불이였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그저 무난한 학생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학예회를 준비해야 하는데 나는 그 친구와 한 팀이 되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연습할 생각을 안 하고 계속 장난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재촉했다. 아마 그 당시 여학생들의 전용무기인 꼬집기도 시도했을 것 같다. 하하. 그런데 다른 남학생의 집으로 가서 연습을 해야 했던 거다. 나와 다른 여학생 그리고 그 친구와 함께 다른 남학생의 집으로 가는데 정말 이상했다. 같은 길을 몇 번씩 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해가 저물었고 나와 다른 여학생은 그제야 알았다. 까불이 그 녀석이 우리를 골탕 먹이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 둘은 꼬집어 주고 난리를 쳤겠지. 그 녀석은 도망 다니며 킬킬거렸겠지. 그때는 당했다는 마음에 몹시 화가 났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이후, 그때 그 애의 장난이 나는 왠지 좋았다.


나는 그 애의 그 장난기를 좀 배운 것 같다. 그렇게 친구를 골탕 먹이는 장난은 아니지만 나도 그 이후 내 친구들에게 사소한 장난을 많이 치는 아이였으니까.

그 애와의 에피소드는 또 있다. 내 어머니는 우리 학교 근처에서 의류점을 하셨었다. 나는 학교를 파하고 나면 바로 엄마 가게로 가서 놀다 집으로 가곤 했다. 가게에 안쪽에는 방이 하나 붙어 있고 거기서 나는 숙제도 하고 엄마의 장사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그 작은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데 “안녕하세요?”하는 아주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친구의 목소리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조금 열린 문틈으로 가게를 들여다봤다. 친구 두 명이 그 친구를 따라왔고 그 친구는 내 어머니에게서 양말 같은 걸 사는 모양이었다. 그 과정에 친구의 장난기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어른스러웠다. 그 애가 마지막으로 내 어머니에게 남긴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주머니 자제분과 저는 같은 반입니다.”


자제분이라고? 세상에 겨우 4학년이 ’ 자제분‘이라는 말을 썼다. 그 아이가 달라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포크댄스할 때 내 파트너이기도 했다.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포크댄스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와 나를 대표로 나오게 해서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도록 했다. 그때의 여자애들은 남자애들의 손을 잡은 것을 아주 부담스러워했다. 선생님이 눈치채지 못하시도록 종이를 말아 서로 그 종이를 바짝 붙잡고 춤을 췄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는 이런 추억이 있는데 그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 애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들은 아주 많았다. 좀 서운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 친구는 내 소중한 추억이었다.


더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곁을 주지 않았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그럴만하다.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낯선 사람이 아는 체를 하는데 얼마나 이상했을까. 결국 나는 그 친구를 나의 ‘남자사람친구’로 만들지 못했다. 왠지 더 그 친구에게 공을 들이면 친구가 오해할 것만 같았다.


다른 동창 중에 내 짝이었던 친구도 있었다. 다행히 이 친구는 나를 기억했다.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 친구에게도 ‘남자사람친구’를 시도했다. 그러자 이 친구는 많은 친구들 앞에서 자기와 내가 마치 이성적인 대화를 나눈 듯이 떠들어댔다. 정말 망신이었다.


이렇게 나는 ‘남자사람친구’를 만드는 일을 실패했다.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사람친구가 있는 주인공이 정말 부럽다. 대학시절부터 줄곧 나는 그런 친구를 만들기에 애를 썼지만 졸업 후 그 많던 남자 동기들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마치 나와 친구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모두 연락이 끊겼다.


그래! 현실은 이게 맞나 보다. 오래된 남자사람친구, 동네 남자사람친구 이런 거 다 드라마 속 이야기일 거야. 라며 나는 나를 위로한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진짜로 남자사람친구가 있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

요즘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미지의 남자사람친구가 나온다. 이사를 안 다니는 지방 사람들에게만 그게 가능한 일일까?

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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