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 이혼의 의미
10년 넘게 별거를 하면서도 이혼하지 못한 친구 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혼 안 해."
친구의 형부는 이 말 한마디를 반복하며 자녀도 모두 독립했는데 협의 이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살면서도 남편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이라 했다.
별거 이후 생활비 지원은 물론 재산 분할도 응하지 않은 상태다. 남편의 일방적인 태도는 결혼생활 중에도 여러 면에서 나타났다. 아내가 이혼하려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런 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친구도 언니를 안쓰러워했다. 언니의 고통은 갈수록 극심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라는 식이었다.
결혼생활 동안 남편과 동등한 위치에서 살지 못한 언니가 중년이 되면서 이혼을 요구했다. 자녀가 모두 성인이 될 때까지 버티어 온 탓이다. 30년 가까이 이어온 그동안의 생활을 고려해 남편에게 이혼하고 싶은 이유를 잘 설명했다. 별거 전 여러 번 같이 부부상담을 받아서 개선하자고 한 아내의 제안을 남편은 번번이 무시하며 거절했다.
"유난떨고 있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내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했다.
뭐든 일방적으로 결정하려는 스타일이었다. 아내는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 물어보지 않는 게 제일 불만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아내 탓을 하며 화를 내기 일쑤였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생각한 후 이혼을 결심했다.
남편의 이런 태도는 이혼조차 자신이 결정해야 가능하다고 여기는 듯 하다. 부부관계에서 오랫동안 우월한 지위라고 여겼던 것 같다.
'저러니 이혼하고 싶지.'
친구 언니의 심정이 담긴 동생의 말이 이해되었다.
부부 갈등이 없으면 좋겠으나 오래 살다보면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럴 땐 해결 의지를 보이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의외로 고집을 피우며 거부적인 배우자 때문에 이혼도 못하고 마음고생하는 예가 있다.
이혼을 원하지 않으면 개선방법을 함께 찾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 인식의 차이가 크면 상대방에게 이혼 요구는 물론 과정도 괴롭다. 특히, 이혼을 요구하는 배우자에게 상대가 무조건 싫다고 버티면 어려워진다. 거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중심적이며 미성숙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도 있다. 이미 마음이 떠나 정서적 이혼상태인데도 아내가 반응하지 않는 경우다. 갈등으로 별거하는 커플도 있지만 한 집에서 살면서 냉랭하게 지내기도 한다. 두 사람은 함께 식사나 대화를 하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밥을 하거나 세탁도 거부한다. 한 지붕 두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서로 가족으로 여기지 않음에도 이혼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아집에 가깝다. 이혼가정으로 보이는 게 싫어서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은 이들 커플의 이혼에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기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다.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는 협의 이혼을 더 어렵게 한다.
부부갈등의 지속은 서로를 감정적으로 죽이는 일과 같다. 회복을 위한 노력 없이 각자 편한 길로만 가는 것은 남은 시간을 방해한다.
이런 커플의 경우, 왜곡된 사고에 기인하는 예가 많다. 위 사례의 남편은 왜곡된 가부장적 태도를 고수한다고 봐야 한다. 아내는 전통적 역할을 중시하지만 비합리적 선택에 머물러 있다. 두 사례 모두 인지적 왜곡으로 편향된 선택을 하기 쉽다.
요즘 20~30대 자녀는 부모 세대와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의 이런 선택을 이해하기 어렵다. 부모의 이혼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더 힘들어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도 이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억지처럼 들리고 나주엔 부모의 일이라 치부하여 관여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양쪽다 이기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고 봐야 한다.
이기적인 것이 개인주의와 같은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선택을 상호 존중한다.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이기주의는 내 생각만 옳다고 여겨서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쉽게 타협하지 못한다. 상호 존중이 없는 쏠림으로 자칫 극단의 이기성을 드러낼 수 있다. 갈등이 첨예해진다고 봐야 한다.
결혼 결정을 두 사람이 합의로 했듯이 이혼도 협의로 마무리하는 게 좋다. 법으로도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심리적 우위에 있는 측에서 버티면 협의 이혼은 불가능하다. 이런 선택은 또다른 형태로 배우자를 괴롭히는 것이다.
자식이나 제 3자가 봐도 이혼이 마땅한 커플도 있다. 폭력, 외도, 경제적 파탄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서적인 문제도 영향을 준다. 내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이혼이 필요함에도 동의해 줄 수 없다는 식이면 곤란하다. 결국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배우자 곁에 남아 있을 사람은 없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움을 느끼고 고립되는 상황이 된다. 이혼을 원하는 입장에선 배우자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결국 재판이혼으로 가야 한다.
이혼을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도 문제지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런 태도로 버티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결혼생활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성인 남녀가 연합하는 과정이다.
최소 20년 이상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인격의 소유자가 배우자가 되는 것이다. 배우자끼리 또는 자식에게 인격은 영향을 준다. 성장배경이 결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만약, 성장과정에서 생긴 자기도 모르는 부정적인 성격이나 병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가 결혼생활 중에 드러나 가족 갈등이 초래된 경우라면 원만한 생활을 하기 어렵다. 특히, 부부는 나이, 학력, 집안, 성격, 가치관 등이 다르더라도 동등한 지위로 출발하는 사이다. 부부관계는 상호 존중이 필요한데 노력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협의가 필요한 순간에 이런 성격적 문제로 막무가내로 나오면 답이 없다. 보통 이런 유형의 사람은 남의 이야기나 의견을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탓에 부부상담이나 치료를 권해도 선택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기 말이 맞다는 왜곡된 신념에 빠져 있는 예가 많다. 서로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대화에선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부부사이에도 당연히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상대에게 물어보는 편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다. 배우자가 될 상대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는지 결혼 전에 면밀히 살피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며, 원인은 다양하다. 갈등 자체가 문제라기보단 갈등을 대처하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갈등의 심화는 태도가 더 큰 문제인 경우가 많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부부처럼 친밀했던 사이라도 지속해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특히, 부부는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이다. 부모자녀와 형제자매보다 유대감이 커서 다른 가족에게도 영향을 준다. 갈등으로 생긴 피로감이 누적되면 신체적, 정서적, 심리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보통 사람에게 약간의 스트레스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선 문제 해결방법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미해결된 문제가 쌓이면 만성질환처럼 개선이 힘들다. 부부생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 결국에는 둘 다 소진(burnout)시킨다.
성인기 과업 중 중요한 것은 결혼이다. 결혼생활을 통해 성인은 이전보다 성숙해 진다. 차츰 책임을 다하는 어른이 되어가는 일이다.
어른이 아동과 다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합리적 사고와 언어의 발달로 문제를 대화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고집이나 아집을 부리는 태도가 줄어든다. 즉, 대부분의 의사결정에 있어 합리성과 논리성을 가지고 상대와 대화한다. 갈등 시에도 근거를 가지고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노력을 한다. 간혹 자기 주장만 반복하거나 왜곡된 인식만 드러내면 관계가 악화될 수 있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말이 안 통해서 못 살겠어.'
서로를 향해 이런 말을 하는 부부가 있다. 대화로 갈등을 줄이지 못하는 경우일 것이다. 갈등을 무조건 피하는 대상이 있다. 마치 소나기를 피하듯 당장은 괜찮아 보이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상대와의 갈등을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때때로 침묵도 방법이다. 하지만 최소화해야 한다. 그것이 성인의 자세다.
이혼 과정에서 배우자에게 더 실망하는 부분이 있는데 감정에 따라 경제적 단절을 선택하는 것이다.
대부분 가정에서 남편이 가계를 책임지는 부분이 크다. 이혼 전후로 아내와 자식의 경제를 담당하던 남편이 위기상황이라고 일방적으로 의무를 거부하는 예가 있다. 만약, 상황이 달라져 지급할 수 없는 경우라면 사전이나 사후라도 이유를 설명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남편의 수입이 갑자기 줄었다면 생활비를 조절하면 된다. 아내와 자식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면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혼 사례를 살펴보면, 배우자에게 감정이 상했다고 일시에 자식들에게 용돈을 주지 않거나 생활비를 바로 중단하는 형태가 있는데 바람직하지 못하다. 자식들 입장에서도 비겁한 방법이라고 느낄 수 있다. 이혼을 하더라도 부모 역할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법으로도 양육비 지급을 의무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갑자기 생활비를 중단하는 일은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상대방의 자존심을 손상시킨다. 경제적 우위에 있는 배우자가 돈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강압적 자세가 내포되어 있다. 즉, 돈으로 상대를 통제하는 것이다. 부부 갈등이 있더라도 이런 선택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의외로 이런 배우자가 적지 않다.
K의 엄마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남편과의 갈등이 지속되어 이혼했다.
법원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양육비 지급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이행하지 않아서 아내는 K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구직을 했으나 양육의 공백이 생겼다. 남편이 양육비를 주었다면 자녀에게 더 나은 환경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K는 휴대전화기 사용이 늘어났다. 교대 근무를 하는 엄마로 인해 종종 게임에 빠져 학교와 학원 학습을 소홀히했다. 학습과 정서적 문제행동이 나타났다. 아내가 남편에게 다시 양육비를 요구했으나 끝까지 주지 않았다. 남편의 반응은 '그냥 없어서 못줘'였다.
K의 엄마는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남편이 끝까지 자식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같아 부정적인 감정이 커졌다.
부부가 살면서 이혼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이혼에 이르더라도 최소한 서로를 배려했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주어진 남은 인생의 시간을 위해서라도 협의 이혼을 하는 편이 낫다.
한쪽 배우자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판 이혼으로 가기 전에 갈등의 원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합의를 이루면 최선이다. 이때 생활비 지급이나 양육권 등 남은 책임과 의무에 대한 조율이 필요하다. 이후 부모로서 역할은 함께 하고 상대를 향한 최악의 감정까진 가지 않을 것이다. 혹시 별거를 한다면 의무를 하는 배우자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다른 선택을 할 지도 모른다.
떨어져 있으면 마음이 멀어진다. 그러나 감정이 사그러지면 최악으로 치닫는 감정도 가라앉을 수 있다. 조금 더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생길 수도 있다.
기사에서 본 사례 하나가 있다.
이혼하기 위해 법원까지 함께 간 아내의 경험이었다. 법원 앞에서 남편이 신발 끈이 풀어진 자신의 발에 관심을 보여서 이혼을 철회했다고.
단순히 신발끈을 묶어 준 행위가 철회 사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몇 십년 이상 결혼생활을 하면서 자주 싸웠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아까지 않는다고 느끼는 감정이 컸다. 외도로 생긴 배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아주 작은 관심으로 남편을 재평가했다.
부부는 싫어진다고 100퍼센트 나쁜 사람이라고 인식하진 않을 것이다. 좋은 점보다 좋지 않은 점이 더 많아서 싫다고 느끼게 된다. 반복해서 그런 상황이나 마음이 커질 때 이혼을 고려한다. 따라서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50퍼센트 이상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으면 관계를 개선할 만하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면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낮은 자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무조건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거나 상대에게 당신은 잘못이 없냐고 따지면 상황은 악화한다. 게다가 그게 뭐가 문제냐라는 식으로 대처했다간 심각해진다.
남편과 아내는 둘 다 부부로서 초보의 길을 간다. 50년 이상을 살더라도 50년 지기 부부의 생활은 처음이다. 그래서 서로가 죽을 때까지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따라서 갈등을 회피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해결책을 모색하자. 부부문제는 결국 두 사람이 해결할 몫이다.
법으로 정한 이혼 사유에 해당하면 재판 이혼을 할 수 있다. 이것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재판 준비 시간을 내야 한다. 변호사를 선임해도 비용과 증거 제출에 따른 정신적, 심리적 고통이 생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나 부정적인 태도, 상황에 대한 인식 차이와 같은 것으로 관계 회복이 어려워져도 그것이 왜 이혼에 이르게 하는지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배우자의 부정적인 요인이나 경험을 찾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가능하다면 합의로 이혼하는 편이 낫다. 이혼 소송을 하더라도 상호 존중의 자세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최악의 관계는 피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면 이혼에 이르지 않았겠지만.
친구의 형부처럼 이혼 청구를 거부만 한다면 아내뿐 아니라 자신도 비슷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남을 미워하는 행위는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운 커플이라면 이혼이 최소한의 배려다.
이혼했다고 최악의 관계로 남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배우자를 동반자 혹은 반려자라고 부른다. 동등한 위치에서 동감하는 짝이 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배우자와 이별할지라도 협의로 마무리하는 게 최악을 막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야 이혼 후에도 부모자녀나 양쪽 가족과 남은 관계를 유지시켜 줄 수 있다.
주변에서 보면, 이혼했지만 고부, 시누 올케, 처남과 매형 등 이전에 유지한 관계를 지속하는 예도 있다. 이혼은 부부의 또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점점 더 오래 살아야 하는 노년기 부부가 많다. 황혼이혼처럼 늦게라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가능한한 회복을 위한 서로의 노력에 집중하거나 협조적인 태도로 협의 이혼 절차를 밟는 선택을 하자. 사랑하고 부부로 살아 온 날들을 기억한다면 이것이 그나마 서로를 향한 예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