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이혼할, 이혼하게 될

이혼하더라도 이혼식으로 잘 마무리하면 어떨까

by 오로라

긴 추석연휴가 지나고 대학 동창인 세 친구가 만났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명절을 보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친정에서 모처럼 길게 쉬다 왔네."


K는 1년 전 남편과 협의이혼했다. 10년 동안 이혼을 하자고 했지만 남편이 동의하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한 상태였다. 세 아이 모두 성인이 될 때까지 K는 남편과 갈등을 좁히지 못했다. 더 이상 남편과의 결혼생활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본격적으로 이혼을 요구해 왔다. 가장 큰 이혼 사유는 소통불가였다. 특히, 권위적인 태도로 자기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는 남편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을 아이들 앞에서 보이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 사소한 이야기라도 소리부터 지르는 탓에 전잘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부부는 훈계하는 사이가 아니다. K는 무남독려 외동딸로 친정에서 귀하게 자란 편이다. 이런 성장배경이라 남편이 큰소리를 내면서 감정적으로 몰아붙이면 참기 어렵다. 조용히 말하라고 해도 남편은 감정을 폭발시킬 때가 잦아지면서 이혼을 결심하고 실행한 것이다.


"난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J는 몇 달 전 재판이혼을 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수차례 남편과의 갈등을 좁히기 위해 부부상담까지 권했지만 남편은 응하지 않았다. 노력해도 바뀔 것 같지 않다는 판단에 이르러 결심했다. J역시 남편과 대화가 잘 되지 않는 것을 가장 불편하게 여겼고 이혼 사유라고 생각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두 사람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둘만 있으면 가슴이 답답했다. 갈수록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어 결혼생활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애들이 어릴 땐 자녀 키우는 맛으로 산다고 아이들을 보며 참고 견디었다. 남편은 자기 생각이나 속마음을 잘 나누지 않는다. 친구도 거의 없다. 물론 회사 생활은 큰 문제 없이 하고 있다. 나름 괜찮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터라 남들이 보면 평범한 가정처럼 보인다.


"아무도 내 속 모른다. 살아봐야 알지."


J가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말이다.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는 J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혼 이야기를 하면 자리를 피한다. 진지하게 말해도 건성이다.

서로 다른 성격을 알고 있다면서도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두 사람이 함께 할 시간이 길어질 것을 떠올리면 잠도 안 올 지경이다. 이혼으로 남은 인생을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입버릇처럼 친구들에게 하소연했던 일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부부관계를 살펴보면 서로가 크게 잘못한 것은 없다. 하지만 괜스레 남편의 눈치를 보고 애들 눈치까지 봐야 하는 상황에 J는 마음이 불편하다. 부부의 분위기가 싸해지면 자녀들은 뭔가 이상하다고만 느끼고 싸움이 일어나진 않으나 낌새를 챈 듯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애들도 불편한 분위기를 피하는 것으로 회피하고 있다. 점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더는 견디지 않기로 했다.


"애들 때문에 시댁에 다녀오긴 했는데 다녀와서 또 싸웠다. 아니 싸운 건 아니구나."


M도 남편과의 갈등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진 않았으나 최근엔 이혼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친구들에게 글썽이며 말했다. M의 남편은 불만이 있으면 혼자서 화가 나는지 뽀루퉁해서 자리를 뜬다. 얼굴에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탓에 M도 남편의 눈치를 보는 애들이 더 신경쓰인다.


추석 연휴동안 사소한 이견으로 말다툼이 있었다. 화가 났는지 오고가는 자동차 안에서 남편은 M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M은 침묵하는 남편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아 이번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이들 때문에 참긴 했지만 도무지 남편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다. 아니 화가 난 것까진 이해하는데 매번 이런 태도를 하는 이유를 더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 남편도 불만이 있겠지만.


"차라리 말을 했으면 속이라도 시원하지."


말을 하라고 해도 입 꾹 다물고 애들을 두고 나가는 통에 연휴 마지막 날엔 속이 부글거렸다고 했다. 아직 어린 막내 때문에 이혼 생각을 했다가도 유보하게 된다며 하소연했다.




세 여자 모두 중년기 이후 남편과 노년기까지 함께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은 같았다. M은 아직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어 이혼을 미루고 있지만 계속 살다간 암에 걸릴 것 같다고 두 친구를 향해 말했다. 연휴가 지난지 2주가 지나가고 있으나 여전히 삐진 상태처럼 남편이 감정을 풀지 않아 답답해 하고 있다.


"자기 감정을 자기가 풀어야지 누가 풀어주냐고. 말 안하고 돌아서서 나가는데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더라고. 애들 때문에 참았는데 죽는 줄 알았어."


"말만 들어도 속이 뒤집힌다."


J는 M의 심정을 헤아리며 측은한 마음으로 빈 잔에 맥주를 따랐다.


"나도 그래서 결심했잖아."


K가 두 친구를 향해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다 너 죽어. 이혼 별거 아냐. 하기 전까지만 힘들지."


몇 년 전부터 결혼생활을 유지하다간 스트레스로 미치거나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 K는 이혼 후부터 모임에서 편안한 얼굴이었다.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 살만하다고 했다. 남편이 억지주장을 하며 큰소리치는 것을 듣지 않아서.


"나도 곧 정리할 거야."


J는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협의이혼으로 하자고 남편에게 거듭 부탁했으나 거절당한 상황을 전했다.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남편은 이혼 이야기만 나오면 동문서답을 했다.


"그런 일로 이혼하면 대한민국 부부 다 이혼하게."


이런 말을 들으면 J는 답답해서 그런 생각과 사고는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설령 남편이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아내가 이혼을 떠올릴만큼 힘들다고 하면 왜 그런지 이유라도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해도 의도를 헤아리지 못했다. 당연히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말을 해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남편과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쌍둥이 두 아들이 모두 군에 입대하고 별거를 시작했다.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남편과 같이 생활하다간 K가 말한 것처럼 암과 같이 중병에 걸리거나 우울증이 생길 것 같아서다.


몇 년 전부터 불면에 시달리지만 남편은 그 고통을 모르는 것 같다.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이미 각방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J는 늙어서까지 부부가 한 침대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서로를 안아주거나 스킨십하며 잠드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섹스리스 부부로 산지 여러 해가 되었다.


서로 다른 정서를 이해하지만 갈수록 외로움의 원인이 남편과의 관계 때문인 것 같아 괴로웠다. 나이들수록 공허해지는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생활비를 받는 것 말고 딱히 남편에게 바라는 것도 없는 실정이다. 결정적인 이혼사유를 찾는 것이 어려워보이지만 성격 차이에 따른 이혼으로 마무리하려고 변호사를 찾은 것이다.


여기까진 실제 사례를 조금 각색한 내용이다.




세 여자들이 이혼을 떠올린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부부 사이에 배려와 존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혼의 동기는 커플마다 다르다. 동질성과 보상성이 작용한다. 연인시절 비슷한 점이나 다른 점이 있어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되면 결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이유 역시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되면 생각이 같거나 달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사소통을 하면 겉모습은 달라도 상관없다. 결혼을 결정하는 이유가 천차만별인 것처럼 이혼 사유도 제각각이다.


결혼생활 20년 이상일때 이별하는 것을 황혼이혼이라고 한다. 중년 부부들이 이혼을 결심하기까진 여러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아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반면, 남편들은 은퇴 후 가정에서 안정성을 유지하고자 변화를 원치 않은 예가 많다. 동상이몽이다. 이런 차이를 좁이지 못하면 이혼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간혹 이혼 후 혼자만의 행복찾기로 보고 이기적인 것으로 비판하는 배우자가 있다. 그러나 이혼을 요구하는 쪽에선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질 때 선택하는 예가 더 많다. 즉, 남은 시간을 건강하게 살기 위한 선택 중 하나가 이혼이다.


사례로 소개한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남편과의 지속적인 소통 부재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빈둥지증후군을 느끼는 중년기 이후에 부부의 대화 단절은 외로움을 더 많이 유발한다. 대화단절은 관계의 문제를 초래하기 쉽다. 이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삶은 '한 지붕 두 가정'같다.


거주는 같이해도 함께 잠을 자지 않는 부부도 적지 않다. 심지어 밥조차 같이 먹지 않는 커플도 있다. 서로 대화를 하지 않을 때 다른 가족의 심리적 불편함은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부부가 같이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분리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50세 이상 중년들의 경우, 남편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예가 훨씬 많다. 맞벌이를 하는 경우에도 주택이 남편 단독 명의인 경우가 많아 재산 분할의 어려움이 있어서 이혼을 포기한다. 이혼을 한다고 해도 재산이 반으로 나눠지면 둘다 경제적 어려움이 더 커질 수 있어 쉽사리 결정하지 못한다. 망설일 수밖에 없다. 직업이 있더라도 서서히 은퇴할 나이여서 섣불리 이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만약, 새로 구직을 하고 싶어도 중장년 일자리는 녹록하지 않다. 구한다고 해도 이전의 상태보다 더 좋을 것이란 보장이 없고, 훨씬 열악하거나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크면 고민이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혼하지 않고 이혼한 것이나 별반 차이없이 살아간다.


둘째, 이혼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서류상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녀들이 겪을 심리적 불안과 불만을 견디기 힘들어서 이혼하지 않는다. 부모에게 이혼을 고려할 때 가장 신경써야 하는 대상이 자녀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유보한다. 성인 자녀라도 혼인 문제를 앞두고 있다면 이혼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사돈이 될 집안에 부모의 이혼 사실이 알려지면 자녀에게 불이익이 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혼 후 재혼을 하더라도 자녀의 결혼에 아무 걸림돌이 되지 않는 예도 드물게 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 문화에선 부모의 이혼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자녀들 역시 부모의 이혼을 원하지 않고, 타인에겐 굳이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부부가 이혼에 합의했더라도 서류 정리까지 하진 않는다.




최근 우리나라 이혼율의 증가와 더불어 황혼이혼도 늘어난다는 보고가 있다. 사례로 든 세 동창생처럼 자녀가 성인이 될때까지 참다가 이혼을 실천에 옮긴 탓도 포함된다.


자신의 경험과 상담 사례를 통해 이혼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모아 풀어낸 이지훈 변호사의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란 책을 보면 현실 속 부부는 제목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 같다. 즉, 결혼은 신속하게 이혼은 신중하게.


결혼은 이혼은.png 출처 : 예스 24.

그러다보니, 자신과 어울리지 않은 배우자와 빠르게 결혼한 것을 살면서 후회하고, 이혼할 땐 오랜 시간 속을 끓이다가 겨우 하거나 죽을 때까지 하지 못한다. 종종 '차라리 빨리 이혼했으면 폭행이나 죽음은 면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까운 결혼생활을 한 아내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접한다.


마음을 도저히 맞추고 살 수 없으면 서로를 위해 헤어질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배우자들이 있다. 결혼 결정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이혼이다. 하지만 이혼에 이르기 전에 여러 신호들이 커플 앞에 나타난다.


존 가트맨 도서1.png 출처 : 예스24.



존 카트맨의 책에 따르면, 행복을 느끼며 사는 부부와 달리 이혼을 결심하는 부부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대화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부부의 의견 차이는 어느 부부에게도 있다. 해결방법이 다를 뿐이다.


부부는 자라온 환경과 배경, 가치관, 성격, 인성으로 표현되는 여러 가지 요소가 다르다. 이 때문에 갈등은 불가피하다. 사소한 말다툼이 큰 싸움이 되는 이유도 대화의 기술 때문인 예가 많다. 즉, 의사소통의 문제이다. 그렇다고 부부가 이런 문제로 모두 이혼하는 것은 아니다.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관계가 좋아지지 않는 커플이 있다. 싸움이 되풀이만 되는 갈등의 원인을 찾지 못한다. 이런 커플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각자 배려와 존중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극단의 가치관을 가진 커플도 사랑에 빠질 수는 있다.


위 사례 J의 남편처럼 부부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가볍게 생각하면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부부갈등이 심하면 두 사람이 해결하려고 애쓰기보다 제 3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부부상담이나 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원인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사생활로 치부하면 이 역시 접근이 어렵다.


부부의 관계는 자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적지 않은 부부들이 갈등의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 갈등을 키운다.


갈등은 한자어의 뜻처럼 바로 풀지 않으면 계속 꼬이듯 엉키기 마련이다. 길어지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상책이다. 결국 이혼에 이르는 것은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부족인 경우가 많은데 안타깝다.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방법이 있으나 찾지 않느니 이혼에 이르는 것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주 방기하는 이유는 다른 부부들의 사례로 치부하는 탓이다. 즉, 남들은 이혼해도 자신은 이혼하지 않을 것같은 착각이다. 이혼하지 않고 갈등을 좁이거나 해결하면 좋지만 노력없이는 어렵다. 두 사람이 노력에 합의하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이 과정까지 이르면 이혼을 피할지도 모르겠다.





사례에서 언급한 세 명의 동창생 남편들은 민법 제840조에 해당하는 이혼 사유가 명확한 5가지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심한 성격 차이 등 부부 일방이 혼인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객관적으로 판단되는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 이 경우엔 재판이혼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부부간 이견이 크면 이혼은 어렵다. 아내와 남편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이것을 입증하려면 두 사람 모두 힘들었던 경험을 진술해야만 한다.


비슷한 사유로 재판이혼을 시작했지만 어려워 한 부부들을 만난 경험이 있다. 아동과 청소년 상담자로 일하면서 가족의 근본적인 문제는 부부관계인 예가 적지 않았다. 배우자의 부정행위나 폭력, 외도, 부당한 대우 같은 것이 아니라도 갈등은 얼마든지 있다. 두 사람의 성격 차이를 입증하기 어려워했지만 결국 이혼한다. 간혹 한쪽 배우자가 성격 차이 정도로 이혼할 수 없다고 버티면 기간이 길어지기도 하지만 끝은 이혼이다.


개인적 경험 때문에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왜 결혼할 때는 성인 두 사람의 동의만 있으면 법원 판결 없이도 지자체의 시청이나 행정복지센터에서 혼인신고가 가능한데 이혼은 아닌걸까? 부부가 협의로 이혼한다고 해도 꼭 재판부의 확인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혼인신고처럼 증인이 있다면 굳이 이런 절차를 생략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하면 이혼율이 더 증가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법원에 두 사람이 모두 가야만 협의이혼도 가능하기에 번거로움으로 이혼을 늦추는 커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의 선택이나 삶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파탄에 이를 정도로 부부관계가 악화된 사이라면 서류상 부부로 있는 것이 두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이혼 관련 도서나 연구를 살펴봐도, 자녀조차 부모의 이혼 사실 자체보다 과정 속에서 부모가 서로 싸우면서 갈등을 보이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 부부 역시 자녀 앞에서 이런 모습을 노출하는 것을 꺼리지만 함게 살면 불가피하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차라리 빨리 이혼으로 부모가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부부관계는 가족 구성원에게 영향을 준다. 따라서 성인으로서 책임질 수 있다면 두 사람의 원만한 합의만 있다면 혼인신고처럼 이혼신고 절차 역시 지금보단 간소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이런 절차에도 불구하고 이혼율은 감소하자 않았다. 재판이혼의 번거로움에도 이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절차는 크게 중요하게 않다는 이야기도 된다.


현재 이런 절차 상태로 이혼을 할수 밖에 없다면 가능한한 재판보다 부부 두 사람의 협의로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혼을 결정했다면 결혼식처럼 이혼식을 준비하라고 권하고 싶다. 자녀가 있다면 함께 부부의 이혼 사유를 알려주고 서로의 감정을 충분히 나눈 후 이혼으로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부모는 성인답게 서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혼과정을 존중해야 한다. 즉, 이혼을 하더라도 두 사람은 부모로서 계속 자녀의 일로 만날 수 있을 정도의 사이로는 남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감정의 골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어지기 전에 이혼하는 편이 낫다. 죽을 때까지 절대로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서로를 미워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결혼만큼 이혼도 잘 끝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권했던 그림책 한 권이 생각난다.



따로따로 행복하게.png 출처 : 예스 24.



우리나라 문화에선 이혼식이란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부부나 자녀 모두 이후의 긍정적인 정서를 고려해 볼 때 그림책처럼 눈꼽만큼도 부모가 마음이 안 맞는다면 "끝혼식(이혼식)"을 하는 편이 낫다. 가족 모두에게 건강한 이별이 될 것 같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 분명하니까. 그렇더라도 상처를 최소화해서 흉터를 덜 남길수만 있다면 이런 방법도 괜찮아 보인다. 이젠 우리나라도 이런 방법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혼은 서로에게 남은 인생의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조금 더 두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 선택하길 바란다. 남은 삶도 건강하기 위해선 이것 역시 또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주변에 이혼한 친구가 있다. 이혼 후 더 건강해 보인다.

이혼을 하기 위해 재판 중인 사람도 있는데 결정 후 홀가분하다고 말한다.

애들이 모두 성인이 되면 결국 이혼할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실행할 것 같다.


이혼이 현실이라면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가족 모두 그림책 제목처럼 따로따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최선이 아니면 차선으로, 차선이 없다면 최소한. 그것도 어렵다면 최악의 상태를 피하면서 하는 이혼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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