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이나 귀촌을 고민하는 중년이라면

2박 3일 충북 옥천 여행으로 느낀 인생 후반전

by 오로라

지난 주 남편의 직장 때문에 보은으로 이사간 M과 통화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 대추 마지막 축제일이라며 주말에 놀러오라고 했다. 연중 가장 큰 행사라며 얼굴도 보고 싶다고 해 겸사겸사 그러겠노라고 하고 지난 주말에 다녀왔다. 주차장에서부터 반갑게 맞이하는 M때문에 정체로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어서와요. 언니!"


M을 따라 대추 축제의 열기가 가득한 장소로 이동했다. 하천을 따라 길게 세워진 행사장은 사람들로 제법 시끌시끌했다. 장터국밥과 두부김치로 저녁식사를 하고 주변을 더 돌아봤다. M은 축제 장소 위쪽을 가리키며 봄이면 벚꽃이 만개한다며 다시 오라고 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제법 길어요. 터널처럼 쭉 이어져요."


지도까지 보여주며 설명하는 M의 이야기를 들으니 상상만으로도 멋질 것 같아 오겠다고 약속해 버렸다.



M이 제공하는 따뜻한 잠자리로 숙박도 해결되어 새벽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M은 결혼 후 소도시에서 살면서 느껴 온 감정 담긴 생활을 여러 방면으로 쏟아냈다. 나 역시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강원도 횡성의 면 소재지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 대부분의 이야기가 공감이 되었다.


"언니, 여긴 다이소가 아직 없어요."


"그래? 요즘엔 집 근처에 '올다무'가 있어야 된다는데."


'올리브영, 다이소, 무신사'라고 말하자 M은


"두 개는 생길지도 모르지만 무신사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럴 수 있겠다."


인구가 적다며 군단위 지역의 실상을 이야기하며 살짝 웃는 M은 이사 오기 전 살았던 횡성 읍과 비교하며 또다른 이야기로 이어갔다. 횡성은 서울에서의 접근성이 좋아 의외로 귀농이나 귀촌 인구가 제법 많은 편이었다고 했다. M은 그때도 읍내에 살아 상점들이 제법 잘 갖추어 있어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었다.


"아, 그랬구나."


보은으로 이사 온 M은 인근 지역인 옥천과 대전도 가끔은 다녀온다고 했다. 보은보단 인구가 조금 많은 옥천 이었지만 5만명이 안 된다고 했다.


M은 아동이 적어서인지 보은읍에 어린이 놀이터가 겨우 한 개뿐이라며 아쉬운 점을 토로했다. 지방 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불편 사항도 이야기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M의 배경이라 더 그럴 수도 있어 보였다. 소도시에 사는 것의 장점도 많지만 여전히 자녀를 키우는데 불편함은 아쉬웁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대전까지 가서 그림을 배우고 있는 M은 초등학교를 마치기 전에 두 자녀를 위해 대전으로 이사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은 작은 마을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인구 감소나 지방 소멸 지역 주민으로 분류되거나 귀농과 귀촌인의 현실적 고민이 이해되었다.


"이모부가 2회 졸업생인데."


인근 옥천에 사는 이모가 내년도에 신입생이 없으면 중학교가 폐교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며 한 말이었다.


이모는 서울에서 살았지만 지방 근무를 하는 남편을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녔다. 전학이 잦은 애들의 어려움으로 결국 중간 지역인 대전으로 이사를 하고 살았다. 사촌 동생들이 성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이후 옥천에 혼자 사셨던 시어머니가 소천하자 빈집으로 둘 수 없어 이모부와 대전과 옥천을 오가며 과수원과 밭농사를 신경썼다. 이후 이모부가 은퇴하자 혼자 귀촌했다. 몇 년 동안 주말 부부로 지내다 이모도 정착했다.


이모는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이모부와 살기로 마음먹어서 귀농했다. 하지만 도시에서 귀촌하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떠나기도 한다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M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보은에 간김에 인접 지역인 옥천을 다시 여행했다. 2박 3일 동안 두 지역의 아름다운정취를 느끼며 혼자 걸었다.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바람소리와 금강 물줄기를 따라 걷는 길이 좋았다. 선선한 10월의 가을 바람과 하늘도.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도시와 다른 공기와 흙의 기운이 온 몸으로 전해지는 기분이 마음에 들었다. 사는 것은 쉽지 않지만 가끔 이런 여행은 괜찮을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자연 경관에도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는 뭘까?'




관광지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이지만 대부분 한산했다. 특히, 옥천 구읍의 한 행사장에 들렸을 땐 휑한 느낌마저 들었다.

10월이라 그곳도 축제 포스터가 있었다. 마지막 공연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정시에 시작하지 못했다. 출연자와 관계자를 빼면 겨우 서너 명의 관걕만 있는 상태였다. 전날보다 확연히 낮아진 기온과 차갑게 부는 바람 탓도 있었지만 지방의 현주소같아 조금 씁쓸했다.


월요일은 평일이라 관광지여도 사람은 적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유형은 크게 두 부류로 보였다.


은퇴했을 것처럼 보이는 60세 이상의 부부 커플

모임에서 단체로 온 것처럼 느껴지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


그외 가족 단위로 온 관광객이 일부 있었다




산림욕장에서 만난 세 사람은 직장 동료였는데 구미에서 1시간 밖에 걸리지 않아 당일 여행이라고 했다. 옥천 여행이 처음이라며 내게 갈만한 식당과 카페에 대해 물어 알고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지방 소도시로 이사하고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귀촌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떠나오고 정착하려고 할까?'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수도권의 집중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귀농과 귀촌을 유도하는 지방의 정책은 실효성이 별로 없어 보였다. 인구 감소 지역은 점점 더 늘어가는 게 현실이다. 간혹 그런데도 귀촌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있다. M이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언니, 분당에서 온 우리 동네 어떤 아저씨는 년세나 전세로도 집을 못 구하니까 읍에 아파트를 사서 살아요."


그 남자는 은퇴 후 분당의 아파트를 전세 주고 이사왔다. 집을 매수하고 싶진 않았지만 읍에 적당한 집을 구하지 못해서 20년 정도 된 구축 소형 아파트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몇 년 전에 6천만원에 구입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며 결정에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귀촌했으나 읍 소재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이다.


'귀촌이긴 한 걸까?'




보은읍은 군의 지원으로 생활체육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M도 남편과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그 남자도 이런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옥천에 사는 이모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고령층이 많은 지역이라 작년에 새로 목욕탕까지 만들었는데 면민들은 모두 무료였다. 그래도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며 이모는 빈집에 대한 이야기도 앴다. 인구 이탈을 막기 위한 이런 식의 정책을 해도 쉽지 않은 게 현실처럼 보였다.


노인이 혼자 살다 사망하면 빈집이 되어 그들이 소유한 땅도 관리가 되지 않아 마을마다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이모네도 이젠 복숭아와 인삼 농사를 짓지 못한다. 마당 한쪽에 화분에서 키우는 작은 텃밭 같은 농사가 전부였다.


땅을 놀리고 싶지 않아도 두 분 모두 힘이 들어 다른 도리가 없다고 했다. 무상으로 땅을 빌려주고 싶어도 마을엔 젊은 사람이 거의 없어 이 역시 대안이 되지 못했다. 이모가 젊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60세가 넘었을 정도로 고령화는 농촌이 더 심했다.




귀농이나 귀촌을 유도하는 정책의 실효성이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의료와 문화 이용의 어려움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모도 종종 건강 검진이나 질병으로 검사를 해야 하면 대전이나 딸이 사는 분당 서울대병원을 주로 이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공기도 맑고 물도 좋은데 귀농이나 귀촌하고 싶어도 병원이 문제군요. 아플 때가 여전히 제일 걱정이겠네요."


내 말에 이모는


"젊은 사람들이야 그렇지. 이젠 우린 아프면 그냥 죽으면 되지. 병원에 갈 일이 뭐가 있겠냐."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라고 해도 그 말은 아프게 들렸다.


나이들면 아픈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좋겠지만 노인기엔 불가피하다. 그나마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이동의 편리성은 확보된다.


이전과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농촌도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면 생필품 구입은 가능햇다. 이모 역시 대부분 자식들이 주문을 대신 해 주어 큰 불편은 없어 보였다. 이런 노인들이 제법 많은지 근처 농협 하나로마트에 물건이 점점 준다고 앴다. 일부는 폐점하고 합치는 문제까지 고려하는 게 현실이라는 이모의 말에 또한번 농촌 지역의 위기를 알수 있었다.




2박 3일간 여행을 하면서 귀농 혹은 귀촌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결심은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꼭 살아보고 결정하세요."


장계관광지에서 만난 해설사의 말이었다. 그녀 역시 도시에서 살다 은퇴 후 옥천읍에 단독주택을 사서 귀촌했다고 한다. 작은 땅이라도 있으면 관리가 어렵다며 풀과의 전쟁이라 표현했다.


"여름엔 다시 도시로 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솔직한 마음 같았다.




귀촌인의 현실적 고민과 더불어 중년 여성이 혼자 여행을 하면 받는 질문과 인식 유형의 차이를 이번 여행에서 알 수 있었다.

옥천 부소담악에서 유람선을 타기 위해 기다렸다. 이용료를 결제하는 사람이 몇 명이냐고 물어 혼자라고 대답했더니 바로 질문했다.


"왜 혼자 왔어요?"


'왜라니? 혼자 오면 안 되나?'


먼저 탑승한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부부로 보이는 커플이었다.


"아는 동생이 있는데 애들 학교 때문에 혼자 왔어요."


불필요하게 괜한 대답을 했다고 느꼈다.



천상의 정원에서도 매표 시 같은 질문을 받았다. 역시 혼자라고 대답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카드결제를 하며 말했다.


"요즘엔 혼자 오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좋은 시간 되세요."


비슷한 상황인데 반응은 달랐다. 앞선 상황처럼 불필요한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되어 가볍게 목례 후 입구로 이동했다.


제일 먼저 만난 곳은 '좁은 문'이었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었다. 진짜 좁은 문이었다. 의도성이 엿보였다. 통과하면서 잠시 생각했다.


'타인의 상황을 모르면서 불필요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나도 있지 않을까?'


타인을 대할 때 낮은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나?

좁은 문에서 잠시 '나와 너,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나는 어떤 자세로 임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자세를 낮췄다.


20251027_160444.jpg 충북 옥천의 천상의 정원

대청호를 품은 정원의 아름다움을 더 깊게 느끼도록 중간 중간 침묵해 보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말을 줄이라는 요구가 신선했다. 어차피 혼자라 입은 계속 다물고 걸어야만 했다.


평일이라 인적이 더 적기도 했고 주변이 조용해서 침묵까지 더하니 자연 속 비경이 더 깊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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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이곳에서의 기억이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는데 때마침 '추억의 한컷'이란 문구가 보여 조용히 웃었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홀로 느끼는 것도 괜찮았다.


혼자 여행하면 가장 좋은 점은 침묵 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깨달음이다. 이번 여행에선 인생 2막의 의미와 다짐에 관한 성찰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내 인생의 시간이 허무하지 않도록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걷다 보니 이후로도 혼자 여행하는 시간을 더 가져도 좋을 것 같았다.


관람을 마치고 대청호를 굽이굽이 돌아 회인IC까지 나오는 좁은 산길을 낀 마을을 보며 다시 혼자 운전석에 앉았다. 차츰 어두워지는 창밖의 풍경을 눈에 담으면서 느리게 이동했다. 어둠이 더 깊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둠이 내게 다가오듯이 내 인생의 시간도 후반으로 향하고 있다.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서울' 방향의 이정표가 보였다. 점점 속도를 냈다.

천안쯤 오자 고층 아파트와 건물의 불빛으로 주변이 점점 환해졌다.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다.


늘어나는 차들의 행렬 속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삶에 익숙해온 탓일 것이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편하다고 느낀다.


시속 110km의 제한 속도마저 빠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속성처럼 도시인의 삶은 급하게 돌아간다. 이곳으로 회귀하면 느리게 흐르는 옥천에서의 감정마저 빨라지려나?


나는 이제 도시와 농촌의 삶 모두 마음만 먹으면 선택할 수 있다. 중년이된 이후 학군을 신경써야 할 자식도 다 컸고, 돌봄을 지속해야 할 부모님도 소천하셨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내 인생의 후반전은 오롯이 나의 시간으로 써도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인생의 종착지까지 살아갈까?'


즐거운 상상을 더 많이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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