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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May 22. 2023


3학년 1반

1. 첫 만남

(과거회상)

운동회는 남자계주를 시작으로 최절정에 다 달았고 

아이들의 함성소리와 응원 소리가 운동장을 울리며 시끄럽다.    

3번째 주자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마지막 주자 민성은 흙먼지를 뒤로 뿌리며 빠르게 질주한다. 

나는 그런 민성을 넋 보고 있다. 주먹을 쥔 작은 손이 흥분해서 떨린다. 

민성은 1등으로 달리던 아이의 뒤를 바짝 쫓았고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져 결국 따라잡았다. 

민성이는 뒤를 힐끔 본 뒤 흰색 바통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고 

활짝 웃으며 여유를 부리고 이내 결승선을 끊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민성에게 달려간다. 


(현재)

교실로 들어서며 어깨에 멘 책가방을 힘주어 쥐며 쭈뼛쭈뼛 뒷자리로 향했다. 

새 교실의 낯선 냄새와 함께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피하며 교실 안으로 들어가 구석에 앉았다. 

잠시 어디에 앉을까 고민도 있었지만 키가 커서 뒤쪽에 앉는 것이 낫겠다 싶어 

창가 쪽 구석에 자리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웅성웅성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하나둘 쏟아지듯이 교실 문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을 보며 궁금증을 애써 감추지 않고 

나의 시선은 문으로 고정됐다.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대현이가 보였다. 

몇몇 아는 얼굴도 보였지만 친했던 아이는 없었기에 실망스러웠고 3학년 1반 팻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담임선생님으로 보이는 후덕한 중년의 여성이 교실에 들어섰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무서움이 살짝 느껴졌지만 말투에서 상냥함이 묻어나 있었다. 

쭉 둘러보시더니 칠판에 심경자 이름을 쓰시고는 출석을 부르셨다. 

아직은 어색한지 모두가 소심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때 씩씩한 한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그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고 아이들은 까르르 웃는다. 

나도 그들을 따라 어디서 난 소리인지 두리번거렸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반 아이들은 교실을 꽉 채웠고 모두가 도착했음을 확인하신 선생님은 

칠판을 끝에서 끝까지 지우개로 빈틈없이 닦으시며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우리는 모두 그 지우개를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기침을 하자 또 웃음이 터졌다. 

웃음 바이러스는 금세 번져서 반 학생 모두가 웃는 얼굴이 되었다.

선생님도 이내 지우기를 멈추시고 앞을 보시며

“나는 3학년 1반 담임을 맡게 된 심경자입니다. 모두 반갑습니다.”

하며 짧게 목례를 하셨다. 간단한 당부의 말씀이 이어지고 내일부터는 번호 순서대로 앉으라고 하셨다.  

가나다 순으로 각자의 번호가 정해졌다. 

일순간 조용해진다. 

나는 김 씨라 역시 앞번호다. 

“김나영?” 

“네!” 

“5번.”

나는 3학년 1반 5번이 되었다.      


며칠이 지났고 

남자, 여자 5명씩 성적순대로 칠판의 이름을 적혔고 투표를 통해 반장선거를 했다.

나는 여자 부반장이 되었다. 

이후 선생님은 맨 앞에 있는 나를 보며 키순서대로 앉아야겠다고 하셨고 

수업이 끝나고 일제히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키 순서대로 교실 중앙에 섰다. 

우리는 알아서 서로 키를 재며 앞으로 뒤로 자리를 정해나갔다. 

선생님은 남녀가 짝이 되어 앉도록 지시하셨고 우리는 그 지시를 잘 따랐다. 

자리를 옮기느라 번잡한 시간이 흐르고 모두 자리에 앉자 잠시 어색한 정적이 교실을 흘렀다.


울상이 된 여자애들 옆에는 히죽거리는 남자아이들이 보였고 

둘 다 마음에 안 드는지 싫은 표정이 역력한 아이들도 보였다. 

키가 큰 나는 맨 뒤쪽에 앉았고 내 옆에도 남자아이가 앉았다. 

나는 관심 없다는 듯이 쳐다보지 않았지만 사실 궁금했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민성이는 낯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나와 짝꿍이 된 이 아이의 이름은 정민성이다. 

키가 컸고 제법 잘생긴 얼굴이었다. 

나는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남자와 같이 앉은 것이 처음도 아닌데 살짝 긴장이 됐다. 


수업이 끝나자 민성이는 

“부반장. 숙제 여기까지 맞지?”

‘내 이름이 부반장인가.’ 

왜인지 모르지만 기분이 나빴다. 힐끗 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내 대답을 못 들었는지 건성으로 말해서 못 미더웠는지 앞에 아이한테 똑같은 질문을 한다. 

나는 기분이 나빠서 

“거기까지가 맞아.” 목소리를 높인다. 

민성이는 웃으며

“알았어.” 

웃는 얼굴은 더 잘 생겨 보인다. 



2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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