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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May 22. 2023

내 짝꿍

2. 설레임

매일 일찍 등교를 해야 했다. 

아침 자습시간 전에 선생님께서 미리 적어두신 문제들을 칠판에 옮겨 적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숙제 검사를 하시다가 내 필체가 마음에 드신다고 선생님께서 시키신 일이다. 

그렇게 내가 칠판에 문제를 적고 있으면 

교실로 들어온 학생들은 조용히 앉아서 문제를 공책에 받아 적고 자습시간에 답을 적었다.

항상 일찍 오는 아이들 중에 내 짝꿍도 있었다. 


내 짝꿍 민성이는 말수는 적었지만 리더십이 있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다른 남자아이들과 달리 숙제도 빠짐없이 해오고 준비물도 잘 챙겨 와서 선생님께 혼나는 일이 없었다. 

방과 후에 남자아이 몇몇과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걸 볼 때마다 골을 넣는 걸 보니 운동도 잘하는 모양이다.

키가 크고 다부진 모습에 남자답고 든든한데 얼굴까지 잘 생겼으니 나의 학교생활은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반장 선거 때 민성이 이름이 없던 걸 보면 10등 안에는 못 드는 것 같지만 

열심히 하니 곧 10등 안에 들거라 믿었고 내가 그렇게 만들겠다는 책임감까지 들었다. 


가끔 나에게 준비물이나 숙제를 묻곤 했는데 

내가 부반장이었으니 그랬겠지만 그렇게 말 걸어 주는 일이 싫지 않았고 

일부러 문제를 더 뽑아서 풀어보게 하기도 했고 할 말이 없으면 일부러 지우개를 빌리기도 했다. 

당연히 나는 지우개를 가지고 있었다. 




매달 20일은 집에서 종이폐품을 수집해 학교로 가져가는 날이다. 

집에서 모은 종이를 묶어서 학교로 가져와 선생님은 무게를 재고 무게만큼 스티커를 주셨다. 

스티커 수에 따라 선생님은 점수를 매기셨기에 많이 가져오면 활동점수를 높이 받을 수 있어 유리했다. 

엄마의 노력 덕분에 오늘도 내 손으로는 들 수 없는 폐품이 모아졌다. 

학교 정문 앞까지만 들어다 주고 가라고 나는 고집을 부렸다. 

엄마는 무거워서 안 된다고 하셨지만 

나는 교실까지 가져다주시는 걸 오늘은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 

그럼 안 가져가겠다고 아침부터 소리까지 지르니 

엄마는 이내 두 손 두 발 드시고 학교 정문에서 폐품을 놓고 가는 걸로 합의를 봤다. 


엄마가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고는 폐품을 집어 들었다. 

이런, 이건 도저히 들 수가 없다. 너무 무거웠다. 

아이들이 뚱뚱한 엄마를 보는 게 싫어서 내린 결정인데 내가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그날따라 운동장은 더 거대한 고래 입 속 같았고

서늘한 아침 바람이 불었지만 내 이마에는 벌써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큰일났다, 빨리 가서 문제를 적어야 하는데.’ 

걱정의 무게가 더해졌는지 천근만근 무거워져만 갔다. 

그렇게 낑낑대며 폐품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한 발짝 힘겹게 내딛고 있는데


그때 뒤에서 민성이가 

“나영아! 내가 도와줄게.” 내 옆으로 와서 폐품을 낚아챘다.  

나는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했다. 

한참 동안 뒤에서 내 이런 모습을 본 것 같아 창피했다. 

하지만 민성이는 웃으며 내 폐품을 뺏어 들고 앞장서 갔다. 


교실은 1층이었지만 큰 운동장을 가로질러 한참을 가야 했기에 

아침햇살에 비친 그의 뒷모습을 보니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민성이도 힘겨워 보였지만 다부지게 한 손으로 움켜쥔 폐품 더미가 나의 눈에는 작게 느껴졌다.

그 옆으로 걸어야 할지 그냥 이대로 뒤따라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미안한 마음에 같이 들자며 옆으로 갔다. 


“무거운 건 남자가 드는 거야.” 

나를 따뜻한 눈으로 쳐다보며 

“이걸 집에서부터 가져온 거야?”

그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응.” 거짓말을 한다. 

"다음에는 내가 도와줄게."  

‘폐품 내는 날이면 우리 집 앞으로 온다는 말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학교 앞에서 만나자는 건가.’ 

헷갈렸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거대해 보였던 운동장을 날아서 왔는지 금세 교실에 도착했다. 

민성이도 힘들었는지 뒷문 쪽에 폐품을 놓아두고 땀을 닦았다. 

여름이라 그랬을까 둘 다 벌건 얼굴이 되었다. 


3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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