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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May 22. 2023

체육시간

3. 나를 좋아하나?

민성이는 원래 남을 잘 도와주는 아이다. 

축구를 해도 일부러 패스를 많이 했고 아무도 안 하려는 골키퍼도 자처했다.

선생님 질문에 답을 못하고 난처해하는 친구에게 나지막이 답을 말해주는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한결같이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민성이가 멋있어 보였다. 

그렇기에 나에게도 이렇게 하는 일은 특별하지도 감동받을 일도 아니었건만 

나는 민성이의 뒷모습을 보며 고마움을 넘어서서 설레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점점 민성이가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좋으니 남에 눈에도 좋아 보였겠지.

당연히 민성이는 반에서 인기가 많았다. 

여자, 남자 모두 그 아이를 좋아했고 나는 짝꿍인 게 자랑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편이었지만 나는 더욱더 외모에 상당히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 다른 옷을 입느라 고심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엄마한테 옷 사달라고 자주 칭얼거렸다. 

언니들도 안 하는 옷타령을 한다고 구박을 받았지만 결국 못 이기고 주말마다 옷을 사러 나갔다. 

옷에 맞춰 신발도 머리 끈도 구비할 게 참 많았다. 

그 아이는 늘 수수하게 입었지만 나는 외모로 어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쫓아다니는 몇몇 아이들도 있었다. 

집 앞에까지 와서 책가방을 들어주는 아이도 있었고 끝나고 집에 데려다주는 아이도 생겼다. 

엄마나 언니들이 남자친구냐며 할 때마다 나는 기겁을 하며 그냥 같은 반 친구라고 소리소리를 질렀다. 

그 남자아이는 무안한 듯 

“그냥 친구예요.” 힘없이 말하는 소리에 나는 미안했지만 

분명히 선을 그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는 따로 있기에. 




체육시간. 

남녀 뒤섞여 피구가 한창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민성이와 다른 편이 되고 말았다. 

나는 공을 피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공을 잘 잡는 아이들은 무서움도 모르고 잡으려고 앞으로 나갔고 나는 뒤에서 피하는데만 집중했다. 

역시 상대편에는 민성이가 맨 앞에서 날아오는 공을 잡고 우리 편 아이들을 하나씩 맞춰가고 있었다. 

공 속도에 무섭기도 했지만 민성이에게 맞고 나가는 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근데 거의 민성이만 공을 잡는 게 아닌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나가고 없었고 우리 편은 나와 대현이 두 명만 남았다. 


대현이는 재빠르게 피하며 공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공도 잡으려 달려들었다. 

그런데 나는 달랐다. 

운동신경은 전혀 없어서 움직임도 느리고 얼굴은 벌써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 쉽게 맞출 수 있을 텐데 웬걸 민성이는 나를 겨누지는 않았다. 

그 당시는 정신없어 알아채지 못했지만 다른 남자아이가 분하다는 듯 발을 구르며 

“야 너 일부러 나영이는 안 맞추냐? 빨리 죽여!” 하는 말을 듣고는 알게 됐다. 

모두가 그에게 공을 줬고 나를 충분히 맞추고도 남았는데 당장이라도 나가게 할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나를 피하는 게 보였다. 


민성이는 아니라고 했지만 대현이만 집중해서 맞추려 하고 있었다. 

나는 집중되는 시선이 부끄러웠지만 속으로 좋았다. 

그 아이도 그 말에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그건 분명히 더워서 벌겋게 익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다 대현이는 곧 죽었고 결국 나만 남았다. 


나는 잡고 싶지 않았지만 내 앞에 놓인 공을 잡았다.

어쩔 수 없이 맨 앞에 있는 민성이를 향해 던졌다. 

당연히 잡힐 줄 알았던 공은 민성이를 맞히고 말았다. 

멋쩍은 듯 웃으며 민성이는 나갔고 바로 나도 죽어서 아웃 됐지만 그때 나는 직감했다. 

민성이도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체육시간이 끝나면 반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가 수돗가에 입을 대거나 손으로 물을 받아 마셨다. 

나도 따라갔지만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랐다. 

콸콸 쏟아지는 물에 소매가 다 젖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도꼭지에 입을 대기는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민성이가 너머에 있었기 때문에 꽤 신경이 쓰였다. 


나는 손만 씻고 교실에 들어와 앉으니 민성이가 물컵을 내미는 게 아닌가.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고 먹었다고 해버렸다. 

민성이는 "안 먹는 거 봤는데?" 하더니 

멋쩍은지 자신이 먹어 버린다. 

그러더니 민성은

“나영이 너 운동은 못 하나 봐?” 하며 장난치는 얼굴을 했다. 

갑자기 뜨거운 게 얼굴로 올라왔다. 

'운동은 못 하나 봐? 그럼 다른 건 잘한다는 건가?'

놀리는 건지 칭찬인지. 

그래도 기분이 좋다. 

“너는 운동만 잘하지?” 

내가 되받아 친다. 

민성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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