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만 보라고
실은 나도 인기가 꽤 있었다.
새 짝꿍이 된 용섭이는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는 아이였는데
나와 짝꿍이 되고부터는 옷이 깔끔해지고 자꾸 말을 걸었다.
도저히 용섭이 입에서 나올 거라고 믿기 힘든 말들도 거침없이 해댔다.
"네가 우리 반에서 제일 이뻐."
'누가 물어봤나.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는다.
수업 중에도 가끔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지지만 쳐다만 보는 걸 뭐라 할 수도 없다.
수업 끝나고 문제풀이를 물어보는 게 여간 성가신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나를 좋아하는 거 같다.
공부는 반에서 거의 꼴등인데 갑자기 공부를 왜 열심히 하겠나.
자꾸 뭔가 보여주려는 게 의심스럽다.
역시 나는 귀찮기만 하다.
나는 영주와 민성이 대화하는 게 싫은 만큼 나도 용섭과 대화는 자제하기로 했기에
모든 말에 대꾸조차 안 했다.
그리고 지저분한 그의 소지품이 넘어올라치면 금을 그었다.
“너는 여기까지만 써. 방해되니까.”
용섭은 무서운 외모와 다르게 다행히 순순히 그러겠다 했다.
실망한 표정이 역력해 사실 미안해지긴 했지만 더 이상 용섭이와 엮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칼바람 쌩쌩 부는 우리와는 달리
민성이와 영주는 늘 화기애애했다.
늘 영주가 열심히 말을 걸며 둘의 사이가 급격하게 친해지는 게 보였다.
영주는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내 눈에도 제법 예쁜 아이였다.
키도 크고 머리를 길게 땋아 허리까지 닿을 정도였고 늘 하늘거리는 원피를 입었고
쌍꺼풀은 없었지만 웃는 얼굴이 유독 예뻤다.
모든 면에서 내가 앞섰지만 그 아이는 어딘가 모르게 순진해 보이는 매력이 있었고
먼저 말을 잘 거는 아이라 그 부분은 내가 이길 수 없었다.
나는 좀 새침하고 무뚝뚝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부반장이라 아이들에게 좀 근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쉬는 시간에 떠드는 사람 이름을 적기 위해 칠판 앞으로 가면 모두가 조용해졌다.
반장보다 무서운 부반장이었다.
영주는 과자를 자주 가져와서 민성이랑 같이 먹었다.
나도 멀리 있지 않은데 먹어보란 소리가 한마디 없다.
민성이가 가끔 나에게 먹어보라고 주면 그때서야
"나영아 좀 줄까?"
영주는 마지못해 거든다.
나는 매몰차게 거절한다.
멋쩍은 민성은 한 번 더 나를 보며 권했지만 나는 됐다고 자리를 피했다.
민성에게까지 짜증 낼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둘의 매개체에 바보같이 껴서 맛있어할 내 혀가 싫었다.
마지못해 과자를 내미는 영주가 민성이 앞에서 착한 척하는 꼴이 더 얄미웠다.
눈치가 밥통인 민성이는 그런 영주를 약자라고 여기며 안쓰러워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아 심장이 요동친다.
쉬는 시간.
나는 어김없이 떠드는 사람 이름을 적으러 칠판 앞에 섰다.
민성이와 영주가 자리에서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이 더 잘 보였다.
이름을 적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민성이까지 적을 수는 없으니 일단 참는다.
둘이 한참 속닥거리더니
민성이 나가자 영주는 내 자리 쪽으로 간다.
내 가방을 쳐다보는 것 같다.
옆을 힐끗 보더니 내 가방에 손을 대는 것 같았다.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내 가방을 만졌다.
요새 우리 반에는 지갑이 자주 없어졌다.
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동전 몇 개로 학교 앞 문방구에서
이것저것 먹고 놀 수 있는 게 많았기에 우리에게 작은 돈이란 없었다.
수업 종이 울리고 자리에 앉았다.
온통 머릿속은 가방을 확인하고픈 생각뿐이었지만
쉬는 시간까지 참았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책가방 앞 보조 주머니에 있을 지갑을 살폈다.
책가방은 열려 있었고 역시 지갑이 없어졌다.
6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