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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May 22. 2023

내 남자 건들지 마

6. 그녀의 약점


늘 활기찬 3학년 1반.

반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매일 웃고 떠든다. 

나는 쉬는 시간이 되면 떠드는 사람 이름을 칠판 적는다. 

이름 지워달라고 하는 애걸복걸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끔 지워주지만 나는 좀 매몰차게 군다. 

쉬는 시간에 떠드는 건 당연할 일인데 나는 왜 그리 꼴 보기 싫을까. 

반장보다 공부를 더 잘했기에 나는 뭔가 그들보다 더 나은 사람쯤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이렇게 깐깐한 내가 우리 반 지갑 도둑을 알았다. 

그것도 오영주. 

내가 가장 싫어하는 아이. 

당장이라도 가방을 뒤져서 도둑이라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선생님께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종례 시간.

우리는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모두 눈을 감았다. 

"지갑 가져간 사람, 조용히 손 들어." 

선생님의 엄한 목소리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없어?" 

영주는 손을 들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범인이 나올 때까지 모두 벌 설까?"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한참이 지나도 손 드는 사람은 없었다. 

선생님은 모두 눈뜨라 하셨고

"한번 더 이런 일이 있으면 범인 나올 때까지 집에 안 보낼 거다, 알았어?" 

훈계가 한참 이어졌다. 

책가방을 싸는 나에게 민성은

"지갑 어떻게 생겼어?" 묻는다. 

'바보, 네 짝꿍이 가져갔어.' 하고 싶었지만 

"괜찮아."

힐끔 영주를 보니 표정이 가관이었다. 

새 파랗게 질려 있는 게 아닌가. 

웬일로 민성에게 인사도 없이 가방을 낚아채고 황급히 나가버리는 영주의 뒷모습을 나는 한참 쳐다봤다. 




나는 친구도 별로 없고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지만 사실 늘 외로웠다. 

집에서도 언니 둘은 꿍짝이 잘 맞아서 나를 빼고 늘 놀러 다녔고 나는 좀처럼 끼워주지 않았다.

언니들은 매일 엄마에게 나와 비교당했기에 나를 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았다. 

“너는 어째 막내 반도 못하냐? 막내는 말 안 해도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실내화부터 빤다. 

솔로 얼마나 꼼꼼하게 닦는지 아냐? 그걸 요렇게 가져다 햇빛 아래 말려놓는다. 너는 여자애가...”

늘 엄마가 언니들에게 잔소리하는 레퍼토리다. 


엄마는 엄청 깔끔하시다. 

정리는 잘 못하셔도 지저분한 건 못 참으셔서 매일 쓸고 닦고 가 일이었다. 

거기에 딸이 셋이니 나오는 옷이며 설거지며 늘 치울 것들이 산더미다. 

나는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다시 친구들과 놀러 나가는 일이 없었기에 

늘 집에 오면 청소하는 엄마와 청소를 함께 했다. 

자연스럽게 청소가 놀이가 되었고 청소와 정리까지 해야 직성에 풀리는 나를 엄마는 무척 만족해하셨다. 

그러니 비교의 대상이 되는 언니들에게는 내가 미운털이 될 수밖에. 


할 게 없으면 책을 읽었다. 

가끔 친구들에게 책 읽고 줄거리나 느낀 점을 얘기해 주면 제법 아이들이 몰려들며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걸 본 선생님은 C.A시간에 나에게 나와서 책 얘기를 해주라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말을 잘한다. 

절대 말싸움에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꼬치꼬치 논리적으로 따지는 걸 좋아했기에 토론 시간은 늘 내가 있는 분단이 이겼고 

그로 인해 나는 청소당번이 된 일이 거의 없다. 


근데 꼭 민성이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목석같이 무뚝뚝해진다.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나는 민성이와 다시 짝꿍이 되는 날이다.

그날따라 아침이 분주하다. 

아침부터 찌개를 끓이는 엄마에게 나는 안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이빨을 닦는데 찌개를 먹으며 고춧가루가 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밥투정이냐며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고 나는 아침부터 눈물을 흘리면 학교로 갔다. 

기분 좋은 날에 이게 뭔 일인가. 

눈과 코가 빨갛고 운 자국이 역력했다. 

뒤 한번 안 돌아보고 칠판에 문제를 적고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아 문제만 풀었다. 

민성이가 나를 쓱 쳐다봤지만 나는 모른척했다. 

"너 울었어?"

"아니."

"무슨 일 있어?"

"아니."

민성은 더는 묻지 않고 문제를 풀었다. 

무슨 말을 나누고 싶었지만 나의 울었던 얼굴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영주는 이제 자기 짝꿍도 아니면서 책가방 내려놓기 무섭게 민성이에게 또 말을 걸었다. 

뻔뻔한 것, 도둑년 주제에. 

얄밉다, 나한테는 말도 잘 안 걸면서. 

분명히 영주도 민성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민성이는 분명 날 좋아한다고 믿었다. 


아니다. 두 명을 좋아할 수도 있다. 

아직 난 민성의 여자친구도 아니지 않나. 고백 비슷한 것도 못 들었다. 

한 주 동안 영주에게 마음이 넘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되찾아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확, 도둑년이라고 말해 버릴까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 물증도 없지 않은가.

무뚝뚝한 성격에 내가 갑자기 잘해주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머리가 아프다.

좋은 생각이 나겠지. 


‘그래! 곧 내 생일이지.’


7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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