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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May 22. 2023

생일

7. 오뉴월의 서리


‘분명 민성이는 올 거야. 내 부탁은 항상 들어줬잖아.’

그렇게 생일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 나갔다. 

그림도 직접 그려 초대장도 만들고 방도 깨끗하게 치웠다. 

민성이가 내 방을 보고 싶다 할 수도 있으니까.

이번 생일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민성이었고

나는 은근히 민성이의 생일선물까지 기대하고 있었다. 


아차! 영주는 빼고 불러야 하는데 

저 불여시는 민성이 옆에 착 달라붙어 종알종알 말을 걸어대며 우리 사이를 방해할 게 분명했다. 

순간 소름이 목까지 올라와 부르르 몸이 떨린다. 

하지만 바로 옆자리인 민성이에게만 어떻게 초대장을 전해줄 수 있을까?

해결책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때 스쳐가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민성이는 아침 일찍 오잖아.' 


나는 초대장을 만지작거리며 민성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교실 앞 문이 열리고 민성이가 이리로 걸어온다. 

민성이가 가방을 내려놓자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열리는 뒷문. 영주였다. 

아뿔싸. 청소 당번이었다. 


일주일 내내 영주는 일찍 왔고 나는 민성에게 초대장을 전해줄 수 없었다. 

생일 전날이 돼서야 집에 가려는 민성이에게 

"내일 내 생일인데, 우리 집에 올래?"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영주는 귀도 밝다. 책가방을 싸다말고 참견질을 한다.  

"어머, 너 생일이야? 어디서 해?"

'다 들어놓고 어디서 하냐고?' 

역시 너무 얄밉다. 

"너도 올 수 있으면 와."


영주는 신났는지 알았다고 했다. 

근데 민성이의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 내일은 안 되는데." 하며 가방을 메고 일어서는 게 아닌가.

순간 멍해진 나는 멀어져 가는 민성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왜? 라고 묻고 싶었지만 안된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속상하다가 화가 났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은 엄청 중요한 날 아닌가. 

갑자기 나의 생일이 그 어떤 날보다 대단한 날로 느껴졌고 

나에게 관심도 없는 민성이를 좋아한 게 창피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굳어져 버렸다. 


그렇게 나의 생일은 주인공이 빠져버려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갔고

친구들의 축하 선물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도 나를 기쁘게 해주지 못했다. 

그날 밤은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이불속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이내 흐르는 눈물이 보기 싫어 훔쳐보지만 그럴수록 서러운 눈물은 뜨겁게 베개를 적셨고 

어깨는 더욱 요동쳤다. 



 

민성이를 미워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 먹어야 가능한 일처럼 다짐 또 다짐을 했다. 

그렇게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기로.

용섭이에게 한 것처럼 민성에게도 책상에 금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싶은지 어리둥절했지만 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는 숙제나 준비물 부탁은 더 이상 부탁이 아니었고 명령이었다. 


쉬는 시간에 떠드는 사람은 항상 정민성이라는 이름이 올라갔다. 

말 한마디만 해도 이름을 적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갑작스러운 민성이란 이름이 칠판에 등장하자 의아해하시며 적잖이 놀라셨다. 

모범생이었기에 다른 아이들은 바로 뒤로 나가 손들게 하셨지만 

민성에게는 왜 이름이 적혔는지 물으셨다. 

나는 민성의 말을 가로채며 쉬는 시간이 끝났는데 떠들었다고 우겼다. 

그렇게 민성이는 수업시간에 뒤에 나가 손을 들어야 했다.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나는 멈추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 자리는 넓게 그 애 자리는 좁게 책상에다 금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며 또 시비를 걸었다. 

넘어오는 모든 건 다 몰수 했다. 

좋아하는 감정이 분노로 바뀌자 걷잡을 수 없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짓거리를 해도 그 애는 나에게 반응을 하지 않았고 

그냥 말없이 묵묵히 좁게 자리를 쓰고 뺏기면 뺏기는 대로 옆에 아이에게 빌려서 썼다. 

‘이렇게 나온다는 건 나랑 상종도 하기 싫다는 말인 건가?’

즐기는 마음과 동시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고 자존심이 상했다. 

‘이래도 관심이 없어? 이래도?’ 

나는 더 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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