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를 다시 정독하고 아빠와 엄마를 생각하게 됐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도 내가 뭐라고 그 인생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느낀 부모님은 자식이 바라는 그리고 자식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주지는 못했다.
부족한 것 없이 키우셨다 자부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이 그렇다는 말이다.
분명 우리 부모도 그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그 보다 나으려 노력했을 테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을 걸 알기에 부모님을 싫어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선하고 희생적인 분들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안정감과 편안함은 주지 못하셨다.
아빠는 이따금씩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하셨고 가족들에게 항상 마음의 준비를 시키셨다.
어렸지만 늘 아빠의 유언 같은 말을 들으며 아빠가 없는 집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일들은 나에게는 슬픔과 함께 불안감을 주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에 나는 이해하는 척을 해야 했고
그래야 아빠의 마음이 편할 걸 알았다.
더 큰 문제는 성격이 극과 극인 부모님의 의견충돌이었다.
의견충돌은 싸움이라기 보다 강자와 약자라는 힘의 싸움이 되어 가장 약자인 자식들, 그 마음은 상처투성이 되었다.
집안은 살얼음판 같았고 모두가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슬픔과 상처가 여기저기를 휩쓸었다.
계획적이고 지배적인 완벽주의자 아빠와 계획성 없고 털털하고 웃음 많고 느긋한 엄마,
그럴 때마다 늘 지는 쪽은 엄마였다.
엄마는 조리 있게 말을 잘 못하기도 했지만 아빠는 집안의 가장이라는 무게감이 있었고
엄마보다 10살 많은 나이 그리고 경제력과 학벌에서 엄마는 변명할 것 없이 약자였다.
그리고 엄마는 어릴 적 나의 곁을 잠시 떠났다. 부모가 없는 집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 무너져갔다.
그렇게 강자와 약자로 나눠지는 세상을 일찍 배웠고
그 관계가 절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나의 첫 사회인 가정 안에서 보이지 않는 질서에 익숙해져 갔다.
가장 평화로워야 할 가정 안에서 강과 약에 대비되는 관계, 그 속에서
강자에 대한 분노와 약자의 대한 답답함이 공존했고 약자의 대한 보호심리가 커짐과
동시에 절대 약자가 되지 않겠다고 무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학교라는 두 번째 사회에서 어린 나이에 강자도 되어보고 약자도 되어보니
결국 알게 된 건 그 어느 것도 만족을 주지 못했다.
관계를 강과 약으로만 대하니 그 관계가 편안할 수 없고 지속될 수 없었다.
알게 모르게 만들어지는 수많은 관계 속에 서열이 절대 없어져야 될 것, 필요악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관계는 역할일 뿐이다.
맡은 일에 충실하기 위해 위계질서가 필요할 뿐 역할극을 내가 가장 편안해야 할 가정에서 볼 필요는 없었다.
진실된 관계로 오래가려면 기본적인 도리가 필요하다.
가까울수록 기본을 지키려는 노력 말이다.
그 기본을 지키는 것이 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중한 관계일수록 매 순간 노력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부모는 자식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혼자가 될 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키울 수 있는 통로가 돼야 하고 자식은 부모의 노력에 감사하고 순종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부부간에는 이해와 기다림이 바탕이 돼야 서로 다름에 침범하지 않을 수 있다.
가족은 공간에 함께 있다고 함께가 아니다.
함께 있다 할 수 있으려면 서로의 노력으로 울타리 안을 밝게 비춰야 한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서로의 노력에 귀 기울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다면
삶의 고단함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분명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다.
이 책에서처럼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그 일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분명 가벼운 일은 아니지만 무겁게 받아들일 일도 아니다.
죽기 전까지 한번 더 웃어주고 그렇게 주변을 밝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 긴 인생 지내고 싶다.
그것은 어쩌면 남이 아닌 나를 위한 것임을 잊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