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혹은 진짜가 되기 위한 발버둥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물건, 카페 이름, 비즈니스,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흔하게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 진정성은 처음부터 국어사전에 있던 단어는 아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진정으로’라는 말에서 나온 ‘진정’에 ‘-성’이 붙어 만들어진 표현이다.
어쩌면 진심, 정성, 진정 같은 좋은 의미가 겹겹이 쌓여 생겨난 말이 아닐지. 비슷한 결의 여러 마음을 농축해 담은걸 보면, 이 단어를 사용하는 제품이나 태도가 얼마나 진심일지 궁금해진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는 진정한 삶이란 세상의 규율이나 기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서 들려오는 ‘다이몬(내면의 신)의 목소리’를 따라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진정성이라는 것은 남의 기준보다 자신의 마음에 더 솔직하게 살아가려는 태도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패션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평생 단거리 선수처럼 살아온 나에게 장거리를 준비한다는 일은 무척이나 막막한 일이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떤 브랜드를 만들고싶은지 조차 정해진 게 없는 '미정(내 이름)'의 상태이다.
나는 한때 나가오카 겐메이(Kenmei Nagaoka)가 쓴『 D&DEPARTMENT 』를 읽고, 그들의 진정성에 깊이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줄여서) 디앤디의 비즈니스 철학인 ‘롱 라이프 디자인(Long Life Design)’은 오래 쓰고, 오래 살아남는 물건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유행을 좇아 빠르게 소비되는 제품이 아니라, 적어도 20년 이상 우리의 생활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은 물건들만을 선별해 소개하고 판매한다는 원칙이다.
매장에 가보면 우리나라 제품 중에는 시장이나 목욕탕에서 값싸게 구입하던 이태리 타월, 일명 노란 때밀이 타월조차 예쁘게 포장해 판매한다든지, 할아버지가 애용하셨을 것 같은 누런 막걸리 주전자도 사고 싶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다. 지금이야 이런 상품을 판매하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지만 2010년대 초, 그 시절에는 조금 의아한 일이기도 했다.
아니, 저걸 이런 번듯한 매장에서 판다고?
어쩌면 디앤디는 그때부터 ESG 경영을 조용히 실천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들의 방식은 단순히 오래가는 물건을 파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생활 방식을 꾸준히 발견하고 소개하며, 물건만 파는 매장이 아니라 공간을 중심으로 지역의 개성과 제작 문화를 키워가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우동 다시, 그러니까 육수 국물을 만드는 소박한 클래스를 열기도 하고, 그걸 배우려는 지역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기도 했다.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도 찾을 수 있는 정보일 텐데, 굳이 그 공간에 와서 함께 배우고 시간을 보낸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내심 부럽기도 했다.
이런 일본 특유의 짙은 감성과 태도에 끌려 결국 일본까지 날아가거나, 한국에 있는 매장(서울과 제주)도 찾아가 기웃거렸다. 그저 물건을 파는 가게라기보다, 오래된 것들의 시간과 한 지역의 이야기가 천천히 이어지는 작은 공동체 같았다. 특히, 한 지역에 한 개의 매장만 만든다거나 가게를 열고 싶어도 쉽게 기회를 주지않는 고집스런 원칙들이 디앤디의 진정성으로 느껴졌다.
패션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게 무엇인지, 타깃은 누구이며, 어떤 제품으로 시작해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아니,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쉽게 반하고, 변심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천천히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깊은 애정으로 알아가고, 찾아내자.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문뜩 떠오른 책이 바로 디앤디파트먼트였다. 그래, 다시 읽어 보자. 2014년 그 책을 처음 읽던 순간처럼 가슴이 다시 뛸지는 모르겠지만, 브랜드 진정성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Beloved brand.
오래 사랑하고,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