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토록 갖고 싶던 차. 유모차.
또래 친구, 대학 동기, 직장 동료를 비롯해 친척들 중에서도 가장 늦게 출산을 했더니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 둘 물려받은 육아용품으로 온 집안이 꽉 들어찼다.
유모차만 해도 선물 받은 유모차 2대. 물려받은 유모차 3대. 총 5대가 집안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유모차들은 친정으로 친오빠네로 아가씨네로 각각 흩어져서 우리 아가가 오면 언제든 편하게 태울 수 있게 나눠서 보관했다.
넘쳐나는 육아용품과 유모차를 나보다 잘 사용하던 건 다름 아닌 친정엄마였다.
길게 줄지어 있는 유모차를 마른 수건으로 먼지가 쌓이지 않게 닦아내며 엄마는 말씀하셨다.
“ 너네 키울 때 아빠가 어려웠잖아. 그래서 제대로 된 유모차 하나 살 돈이 없었어. 너는 업고, 한쪽에는 오빠 손, 다른 손에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시장도 보고 병원도 다녔거든. 그러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여자들을 보면 얼마나 부럽던지… 어째서 그때는 유모차 살 돈도.. 사주거나 물려줄 지인도 없었는지 모르겠네… 그때 그 한을 네가 풀어줬네. 유모차 많아서 너무 좋다. 엄마는 정말 너무 좋다. “
꿈을 어루만지는 소녀처럼 엄마는 늘 소중하게 유모차를 닦고 조심하게 끌었다.
눈물 많은 나는, 홀로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할 때면 그 시절 엄마가 생각나 가끔은 어깨까지 떨며 흐느껴 울었다.
유모차가 갖고 싶었다는 그 말이 내 온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생채기를 냈다.
요즘은 여성 중심의 육아를 내포한 ‘유모차’라는 단어 대신 ‘유아차’로 개정 됐다고 하던데
나는 여전히 유모차라고 부른다.
시대적 흐름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상관없이
할 수 있다면 엄마차라고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유모차만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차.
그래서 나는 남몰래 유아차를 ‘엄마꿈차’라고 부른다.
가진 것이 없어 슬펐던 엄마의 20대.
지금의 내 모습으로 그 시절의 엄마를 만나고 싶다.
엄마를 만나서 엄마 손에 있던 무거운 짐도 대신 들어주고… 지나가는 유모차를 부럽게 바라보는 그 눈에 짜잔- 선물이야. 하고 진짜 ‘엄마꿈차’를 담아주고 와야지.
20대 육아로 지쳐 있는 엄마를 만나고 싶은 그 마음으로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자주 찾아간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절 엄마를 만나서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지금의 엄마에게 잊지 않고 수시로 해주려고 노력한다.
“ 엄마 잘하고 있어.”
“ 엄마 내가 사줄게.”
“ 엄마 아프지 마.”
“ 엄마 사랑해. ”
“ 엄마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