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내가 정한 제2의 고향

by 다정한 오늘

얼마 전, 속초에 다녀왔다.


자주 가는 맛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카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 좀 떠나고 싶은데 하면 생각나는 속초.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듣고 싶은 노래를 주야장천 들으며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 속초를 찾았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 하얗게 떼 지어 몰려다니는 파도를 넋 놓고 바라보며 오로지 내 걱정만 했었다.

왜 아이가 안 생길까.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쩌다 사람이 이렇게 우스워졌을까.

남편이 사주는 따뜻한 장칼국수를 먹고, 문우당서림, 동아서점에 한참 동안 머물러 방황하는 작가들의 책을 찾아 다정한 문장 한 줄 한 줄을 열심히 잡아먹었다.

좋은 글귀로 배가 차면, 마음이 흐물흐물 녹아 용기가 비집고 들어 갈 틈이 생겨나곤 했다.

속초의 마지막 코스는 언제나 낙산사였다.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나는 남편 손을 꼭 잡고 낙산사를 올랐다.

어쩌다 보니 같은 자리에서 매년 사진을 찍었다.

추웠는지 코 끝이 빨개진 채로 남편과 볼을 맞대고 찍은 사진.

뜨거운 태양에 눈을 뜨지 못하고 찡그린 채 남편 어깨에 기대어 찍은 사진.

속초의 계절을 에너지 삼아 위로받던 시절이 있었다.


둘이 아닌 셋이 되어 속초로 떠나는 여행길 내내 티니핑 노래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티니핑이 좀 지겹다 싶으면 터닝메카드 노래가 나왔다.

아직 한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는 가사를 들리는 그대로 따라 불렀다.

룸미러로 남편은 아이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 가는 길 나도 모르게 티니핑 노래를 흥얼거린다.

하와이 와이키키해변을 앞에 두고도 바다는 눈으로만 보는 거라고 했던 남편은 아이 손을 잡고 속초 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낙산사 대신 설악산에 다녀왔다.

난생처음 케이블카도 타보고 아빠 손을 잡고 열심히 산에 오르는 아이가 기특해서 “동네 사람들 우리 아기 산 잘 타는 것 좀 보세요!!”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아가며 남편과 아이 뒤에서 영상만 열심히 찍어댔다.

바다와 하늘 사진이 가득했던 지난 사진첩과 달리,

풍경 사진 하나 없이 웃고 있는 아이, 화내고 있는 아이, 모래 놀이를 하는 아이 손, 파도가 지나간 뒤 우리 아이 발가락... 그런 아이를 웃으며 바라보는 남편 사진으로 가득 찬 속초 여행.

나중에 나중에 지금 보다 나이가 훨씬 더 들고,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속초가 타임머신처럼 이 시절 우리의 마음으로 돌려보내 줄 것이다.

왜 그렇게 한 장소만 고집해서 가느냐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대답을 찾았다.

서울이 아닌 제2의 고향을 남편과 내가 속초로 정한 것이다.

그래서 훗날 우리 아이가 나와 내 남편을 추억하고 싶을 때.

나와 내 남편이 젊은 우리를 돌아보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장소가 우리 가족에게는 속초가 될 것이다.

카시트에 앉아 단 한 줄도 맞는 가사 없이 티니핑 노래를 따라 부르던 우리 아기 혀 짧은 목소리가... 뒷 좌석에서 바라본 룸미러 담긴 활짝 웃고 있던 남편 얼굴이 내게는 2025년 7월의 속초로 남아.

지치고 힘든 순간 언제든 꺼내 바를 수 있는 마음 속 연고가 되어 준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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