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흘러가겠지.
이십 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갈 때는 공포 그 자체였던 것 같은데
서른에서 마흔으로 넘어갈 적에는 나이를 먹는 줄도 모르고 심지어 내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남한테 물어보는 날도 있다.
만 나이가 사라지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만으로 해도 마흔을 훌쩍 넘겨 마흔 초입 그 어딘가 내 나이가 있겠지 하고 만다. (나 진짜로 몇 살이더라?)
이삼십 대에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이제는 그 시절 선택에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 할 수 있겠다.
뭐든 덜 열심히 하고, 책 읽기를 제외한 모든 것에 설렁설렁 이었던 나는 통장 잔고가 또래보다 가볍고, 사회적 위치랄 게 없다.
덕분에 나는 무언가를 지켜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삶보다는 여전히 뭐든 피곤하지 않을 만큼 하고 여전히 내 취향의 책을 찾아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그 시절의 대가라면, 아직 내 차가 없고 (면허는 있습니다.) 모임에 입고 나갈 그럴싸한 코트나 가방이 없고, 구두가 없고, 친정 엄마가 김치냉장고를 바꾸겠다 하셨을 때 당당하게 카드를 드리며 “가격 보지 마시고 마음에 드는 걸로!”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
대신, 마흔이 훌쩍 넘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어떤 풍인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책이 어떤 류인지.
스트레스받았을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무엇을 먹었을 때 속이 편하고
누굴 만나고 만나지 말아야 하는지 잘 알게 됐다.
남편과 싸웠다고 더 이상 쪼르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지 않고,
육아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가슴 답답해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 왈 엄마보다는 할머니 마음으로 키우는 것 같다고...ㅋ)
적당히 포기할 줄 알고 적당히 타협할 줄 알게 됐다.
에너지가 없어서 화내는 일 보다 이해하는 경우가 많고,
사랑받을 때 보다 사랑을 줄 때 뿌듯함을 느낀다.
스무 살 때처럼 모두에게 예뻐 보일 필요 없고,
(꾸미면 오히려 과해... 독이야.)
서른 살 때처럼 남의 속도에 맞춰 살 필요가 없다.
(그 속도 맞추려다 이미 가랑이 두어 번 찢어져 봤거든. 증말 아팠어 그때 ㅋㅋ)
마흔 살의 나는
좁지만 내 취향으로 꾸며진 집에서
내 인생에는 없을 줄 알았던 아이와 함께 산다.
여전히 말이 잘 안 통하는 남편이지만,
세상에 발 담그지 않고 둥둥 떠다니는 나와 달리
굳건히 뿌리내리고 세상을 이성적인 시선으로 비평하고 그에 알맞게 가계부를 작성하는 남편을 존경한다
(물론 우리는 영원히 감성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나는 매일매일 오늘 보다 조금 더 늙고 못생겨질 테고,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 게,
아이에게 사주고 싶은 게 더 많아지겠지만,
때에 맞춰 가장 어울리는 옷차림과 표정을 하고
최고는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겨우겨우 그들을 만족시키려 노력하며 살아가겠지.
노력한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남들보다 조금은 덜 힘주고...낭만 한 스푼 정도는 챙겨가며 그렇게 그렇게...
생각보다 다정하고
생각보다 낭만적인 마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