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심신이 심히 고단하여
진정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요량으로 월차를 내버렸다.
하루쯤은 정말 누가 내 이름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았다.
휴가인데도 7시쯤 저절로 깨긴 했지만
억지로 눈을 감고 10시 가까이까지 뒹굴다 일어났다.
느릿느릿 씻고 아플 때마다 엄마가 자주 끓여주는
전복 삼계탕을 먹었다.
TV를 틀긴 했는데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한참 멍을 때렸다.
제이미는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나서
내 곁에 와 베이블레이드를 했고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또다시 멍의 세계로 순환전철을 탄 듯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부지런한 엄마는 그사이 꽃화분에 줄 거름을
사러 가서는 야리야리한 데이지와 채송화를
사 오셨다.
데이지는 너무 아기 같지 않느냐며
조심스레 봉지에서 꺼내시더니
이래 봬도 화단에 옮겨심으면 겨울을 나고
꽃이 가득 번질 거라고 했다.
그리고 화원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더라고
이 동네 사는 애들 다 키운 노인들이
이제 꽃을 키우며 살려고 거기 다 모였나 보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뭔가를 키워내는 존재다.
특히 우리 엄마는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다.
젊어서 막내 삼촌과 고모를 시작으로
나를 키웠고 개도 키웠고
이젠 손자 손녀까지 키우고 있다.
꽃과 나무는 평생을 키웠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키운 것들은 대부분 반질반질 윤기 흐르는 생명체로 자랐다.
어디서 비실비실한 것을 주워와도
우리 엄마 손길이 가면 꽤 그럴듯하게 변한다.
나도 오늘 엄마랑 있으니 어제보다는
덜 아픈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자연이다.
아직 내가 우리 엄마의 아기여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