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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A May 27. 2020

동료가 있다는 것

꽤 오랜만에 좋아하는 직장 후배와 점심 약속을

잡았다.

맛있는 거 말고 속 편한 거 먹으러 가자며

집밥 비슷한 음식을 내주는 식당으로 향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어제 잠을 못 잤다'로

우리의 푸념은 시작되었다.

나는 이틀째 새벽 두 시에 잠에서 깨 아침을

맞고 있었고 그녀는 지난밤 일분도 잠을 못 잤다고,

살면서 이런  완벽한 불면의 밤은 처음이라고 얘기했다.

집에서도 일 생각으로 찝찝해서 스위치가 꺼지지

않더라고 직장생활 하루 이틀도 아닌데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된다고도 했다.

나는 경험상 일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과

분노가 겹치면 그렇더라고 한 가지씩은 참아지는데

동시에 닥치면 불면증이 오더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녀는 격하게 맞장구쳤고 나는 그녀의 공감에

묘하게 위로받았다.

밥을 먹고 오늘은 커피가 아닌 수박주스를 마시자며

바로 옆 카페엘 갔다.

후배는 내가 처한 상황을 듣지 않고도

어쩐지 가늠이 된다며 언니니까 버텨내는 거라고

나를 다독여주었다.

팀에서 추진하는 일을 가장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업무가 비합리적으로 내게 몰리고 있는 상황을,

그럼에도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기는 커녕

본인의 무지를 무기처럼 이용하는 자들로 인해

답답함이 한도를 다해 분노로 폭발하려던 차였다.

그녀는 말했다.

"언니, 참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는데

맨날 일등 하는 자식은 일등 하는 걸

당연한 듯 여기는데 10등 하던 자식이 5등하잖아,

그럼 파티한다. 회사도 똑같아.

참 가족적이야  지긋지긋하게..."

주스를 마시다 말고 속절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녀도 눈시울을 붉혔다.

엄밀히 보면 내 것도 아닌 일에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열심도 병인 것 같다고 나는 주절거렸고

그녀도 사람 쉽게 안 변한다고 탄식했다.

카페에서 나와 각자의 사무실로 향하며

'우리 오늘은 꼭 잘 자자'는 대낮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밥 때문인지, 주스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동료 때문인지 두통이 조금은 가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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