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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A Oct 24. 2022

로열티 같은 소리 하네

'대퇴사의 시대'라고 하더니 동료의 퇴사, 지인의 이직 소식을 전보다 자주 접하게 된다.

간간이 들리는 퇴사 소식 중 간혹 조직에 기여를 많이 했던 친구들이 섞여있을 때는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특히나 오퍼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음에도 이직을 택한 케이스라면 더욱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일잘러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동료이자 선배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더욱 고민하게 된다.  

어느 날 타 부서 동료와 점심을 먹다가 요즘 일 잘하는 친구들이 회사를 많이 떠나 심란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조직관리도 인사관리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요즘 어느 회사나 다 그래. 그런데 로열티 없는 애들 얼마든지 나가라고 그래. 그런 애들이 뭔 필요가 있어?"라며 냉소했다. 실망스러웠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의 가치관도 과거와 다른데 조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왜 역행하는지 답답했다. 동년배 로 애환을 함께한다 믿었던 동료가 그런 말을 하니 순간 더 화가 난 나머지 "너 로열티 운운하는 거 보니 요즘 인정 좀 받나 보네? 기획부서에서 지시만 하니까 현실이 눈에 안 들어오는 건가? 그런 식으로 말할 거면 당장 실행부서로 내려와. 일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차이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커. 예전에야 다들 비슷비슷한 수준에서 평균 이상만 해도 자기 몫이 있었으니 누구나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많은 부분이 고도화된 상태에서는 누가 하느냐, 누가 아주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느냐로 시장을 지배하느냐 아님 끌려가다 사라지느냐가 결정되는 거야. 그래서 인재가 중요하고 전문가가 요구되고 진심이란 게 필요한 거라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지속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회사와 선배의 몫인거구."라고 쏘아붙이고 말았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로열티'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굴었던 것일까? 정작 조직에 로열티가 없는 부류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까지 쌍심지를 켜고 그녀를 비난했던 것일까? 아마도 내가 생각한 로열티와 그녀가 생각한 로열티의 정의가 달랐던 데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로열티는 크게 사람에 대한 로열티, 직무에 대한 로열티, 회사에 대한 로열티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좋은 선배, 팀장, 임원을 만나면 그 사람이 빛나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와 목표가 합일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실로 나 역시도 한 때는 내가 모시는 분에게 인정받는 것, 그리고 그분이 승승장구하는 것이 곧 내 기쁨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분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상당했고 덕분에 업무적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나의 충성심은 자발적이었으며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었어서 상처도 없었다. 하지만 상사에 대한 충성심의 상당수가 강요된 경우가 많으며 상사와 자신이 만든 어장 안에서 희망 고문을 당하다가 종국에는 버려지며 배신감과 후회로 점철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실 버려지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상사가 굳이 나를 버리지 않아도 대개 나보다는 상사가 조직에서 먼저 버려지기 때문이다.

 조직에 대한 로열티는 퇴색하고 있다. 과거에는 'OO 출신', 'OO맨'이라는 단어가 주는 프라이드와 더불어 그에 걸맞게 통용되는 시장가치가 있었지만 같은 조직 내에서도 개인의 역량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드러난 이후에는 후광효과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가듯 개인이 갖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 역시 희미해져가고 있다. 기업의 창립멤버, 수십 년 이상 봉직한 임원을 제외하면 조직에 로열티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적정 수준보다 과분한 대우와 보상을 받는 부류가 느끼는 특권의식 또는 안도감일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직무에 관한 로열티는 세 가지 유형 중 개인에 가장 효용이 있는 가치다. 결국 큰 틀에서 직장인은 도구일 뿐이지만 잘 벼른 칼은 어느 곳에서건 쓰임이 있고 빛이 나게 마련이다. 어차피 직장인으로 수십 년을 살아야 하고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상 직무에 대한 로열티는 유지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롭다. 사실상 거대 조직에서는 어떤 일이건 내가 해도 남이 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일은 이왕이면 누가 하는 것이 낫지.'라는 인식을 타인에게 심어주는 것은 결국 직무에 대한 로열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누군가 알아주기 이전에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자존심이기도 하다. 나는 조직에서 한순간에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부속임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안에 나의 존재를 밝히는 것은 '일하는 나' 그 자체일 뿐이다.  

 개인에 주어지는 옵션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위한, 공동체에 대한, 어떤 것을 향한 로열티는 점점 사라져 갈 가치일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그 희소한 가치가 더 높게 평가받을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서로가 가지기 어려운 마음가짐을 요구하기보다 조직은 개인으로 하여금 직무에 대한 로열티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보상 체계를 만들어주고 개인은 조직과 동료가 인정할만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냄으로써 시너지를 내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건강한 문화일 것이다. 개인이 조직에, 조직이 개인에 기여하는 공생의 순환고리는 단방향의 충성심보다 훨씬 더 공고한 가치사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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