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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A Feb 08. 2022

무쓸모의 쓸모

굳이 찾아낸 쓸모

징글징글하게 무능력한 부서장을 지켜보면서 인고의 3년여를 보냈다. 첫 해는 신임 팀장이니 배워가면서 극복해나가겠지 하는 이해의 마음이 있었지만 그다음 해엔 모자란 사람이 부서장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싹텄다. 3년째는 그가 조금 모자란 게 아니라 한참 모자란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출근해서 의자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는 버릇이 생겼다.

'하물며 개도 풍월을 읊는다는데...'

'까도 까도 새롭게 무능한 양파 같은 XX...'

따위의 푸념을 마음속으로 주워 삼키며 화를 삭일 때도 많았지만 고민이 아주 깊어졌을 때는 조직론, 리더십에 관한 책을 읽으며 답을 구하기도 했다.  때론 그가 아니라 내가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팔로어십에 대해서도 공부했고 그래도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는 국면에서는 자괴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는 내 궁리는 일절 소용이 없었다. 사람은 대체로 변하지 않으며 그는 결정적으로 자아성찰을 전혀 하지 않는, 스스로를 꽤 높이 평가하는 뻔뻔한 부류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내 인생에서도 조직에서도 쓸모없는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어디에나 쓸모없는 것들은 있게 마련이니까...

그러던 중 그 쓸모없는 사람이 내게 가져온 변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언젠가부터  남편에게 전보다는 자주 고맙다는 표현을 하게 되었고, 실로 남편 같은 사람을 만나 천만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부서장이 하루하루 찌질한 일을 할수록 나의 남편은 적어도 그런 찌질함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고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공감해주며 내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본인의 팀을 잘 꾸려보고자 고민하는 리더로서의  남편이 멋있어 보일 때도 있었다. 이 전에도 인간적으로 남편을 좋아하기 했지만 그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직장에서 빌런을 만나면 집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이런 게 바로 '무쓸모의 쓸모',

쓸모없는 사람이란 없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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