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지도 않았다. 그저 해야하니까 하는 공부였기에 마음에 와 닿지도, 인생에 대단한 가르침을 남긴것도 없었다.
오히려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 내가 사용하는 기술 집약적인 도구들의 기반이 되는 과학이 너무나도 궁금한 대상이 되었다.
모든것이 당연하면 신기할 것도, 의심할 것도, 궁금할 것도 없다. 하지만 오히려 한해 한해 살아가며 경험이 쌓이다보니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 혹은 당연해서 무관심했던 것들이 호기심의 영역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유시민 선생은 인문학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골몰한 삶을 살았지만 그 시절 과학을 일찍 접했더라면 같은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완전히 공감하며, 어설프게 아는 편파적 지식으로 세상을 프레이밍하는 반푼이를 면할 다짐으로 그의 추천작을 한권한권 읽어나가봐야겠다.
[인상깊었던 구절]
*참고서적
코스모스
원더풀 사이언스
엔드 오브 타임
이기적 유전자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E=mc2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71P
칸트는 자신의 시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칸트만 그런 게 아니다.
어떤 천재도 자신의 시대를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한다.
칸트의 인식론은 불가지론이다. 사물이 우리의 주관과 무관하게 존재하지만
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무얼 알고 무얼 모르는지 알았다. 그런 점에서 남달랐다.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88P
에드워드 윌슨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을 모르면 우리의 마음은 세계의 일부밖에 보지 못한다."
나탈리 엔지어
"과학은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127P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 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이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188P
탄소는 왜 생명의 중심이 되었을까? 과학자들이 찾은 답을 정치학 언어로 번역하면
탄소는 '유능한 중도'여서 성공했다. 중도는 좌우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가끔 치우치는 경우에도 슬쩍 편을 드는 정도에 그칠 뿐 극단으로 가지는 않는다.
열정이 있어도 몰입하지 않으며 원칙을 지녔지만 독선에 빠지지 않는다. 싸움을 먼저걸진 않아도 누가 싸움을 걸면 피하지 않는다. 무능한 중도는 극단에 휘둘리지만
유능한 중도는 좌우를 통합한다. 탄소는 유능한 중도의 대표 사례다.
사람으로 치면 성격이 온화하고 태도가 유연하다. 남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지만
필요할 때는 원만한 관계를 맺는다. 남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무엇이든 되는 쪽으로 일을 만들어 나간다.
생명이 존재하려면 DNA처럼 안정한 분자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분자의 안정성이 지나치면 안 된다. 때로는 분자를 쪼개어 새 분자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탄소는 그 분자를 만들기에 딱 좋다.
탄소는 신중하다. 다른 원자가 달란다고 해서 너무 쉽게 전자를 내어주면 생명을 이루는 데 적합한
원자들을 만나도 결합하지 못한다. 욕심이 지나쳐 아무 원자 하고나 함부로 결합해도 마찬가지 위험이 있다. 그렇지만 인색한 것은 아니다. 전자에 대한 탐욕이 아주 강한 수소가 다가오면 너그럽게 안아준다. 그렇게 해서 탄소와 수소 결합이 생명체의 분자를 이루게 되었다.
238P
'자등명 법등명', 석가모니가 죽기 전에 남겼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법(진리)을 등불로 삼는 것은 관습과 미신이 아니라 이성의 힘으로 산다는 뜻이다.
세상에 끌려다니지 말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라 했으니 석가모니는 분명 깨달은 사람이었다.
269P
하디는 학문 연구의 일반적인 동기를 세 가지로 보았다. 진리에 대한 호기심, 성과를 이루려는직업적 자긍심, 명성과 지위에 대한 야심이다. 그는 수학만큼 여기에 잘 들어맞는 학문이 없다면서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수학은 진리가 기묘한 장난을 치는 분야다. 정교하고 매혹적인
전문기술을 발휘할 기회를 준다. 수학의 성과는 다른 무엇보다 오래간다. 문명과 언어와 권력은 사멸해도 수학의 아이디어는 불멸한다.'
293P
중요한 것은 바보를 면하겠다는 결심이다. 파인만의 거만한 바보는 자신이 바보인 줄 모른다.
죽을 때까지 바보여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게 살고 죽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다. 그러나 자신이 바보였을을 알고 바보를 면하는 게 바보인 줄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 낫다. 부끄러움은 잠시지만 행복은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