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솟값으로 수렴하는 세계: 개별적 탁월함 이상의 것을 찾아서
요즘 일기예보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확도가 떨어진 것 같은, 그러나 명확하게 실패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그런 기분. 처음에는 이를 단순히 기후 변동성의 심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패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가 수집하는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모델은 더욱 복잡해졌으며, 각 시스템 간의 간섭이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각자의 세계에서 최선이어도 합해졌을 때 결코 최고가 아닌 부조화다.
흥미롭게도 금융 시장에서도 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의 리스크 모델로 현재를 설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그 막연한 불안감.
이 의문을 갖고 있던 차에 기상청장을 지내셨던 교수님께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예상외로 단순하면서도 핵심에 닿는 부분이 있었다.
"기후 예측에는 '데이터', '모델', '해석'이 고루 갖춰져야 하는데, 이게 조화로운 평균으로 성과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셋 중 가장 취약한 지점으로 수렴됩니다."
무릎을 탁 쳤다. 이것이 바로 내가 모호하게 느껴오던 것의 정체였다.
개별적 탁월함의 환상
과거에는 원칙이 명확했다. 영업은 영업을 잘하고, 리스크는 리스크를 잘 관리하고, 기획은 기획 작하면 되고 운영은 사고 안 치면 된다. 각 부서, 각 영역이 자신의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면, 그 사이의 균형이 조직의 성과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는 기계식 시계 같은 세계관이었다. 부품 하나하나가 제 역할을 완벽히 해내면, 시침은 정확하게 움직인다는 신념. 그 조합이 제대로 맞물려 있을 것이라는 착각.
그 시대에는 어느 정도 통했다. 복잡성 수준이 낮았고, 각 영역 간의 영향도 예측 가능했으며, 시스템의 복잡성도 그리 높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도 명확했고, 해결책도 직관적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복잡성의 시대—벡터의 충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다양한 '벡터'들이 제각각의 방향과 세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공간이다. 영업의 벡터, 리스크 관리의 벡터, 기술 혁신의 벡터, 규제 준수의 벡터, 고객 경험의 벡터... 무수히 많은 방향성들이 동시에 작동한다.
문제는 이 벡터들의 방향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서로 대척점에 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무엇이 일어나는가?
개별 에너지가 산산이 흩어진다. 모두 열심히 일하고,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지만, 종합적으로는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눈에 띄는 성과 역시 없다. 조직은 저마다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자리에서 회전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각 부서와 각 개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보면 완전히 타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업팀의 논리, 리스크팀의 우려, 기술팀의 야심—모두 나름의 일리가 있다. 회의실에서 아무리 논쟁해도, 의견 조율을 하는 척만 할 뿐이다. 그것은 종이 위의 합의일 뿐, 실제 작동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 각자는 여전히 자신의 관성에 따라 움직인다.
이것이 현대 대조직의 비효율의 근원이다. 거대한 구조 속에서 모두가 제각각 자기 방식으로 열심을 다하고 있으나, 통합된 방향성이 없을 때 발생하는 엔트로피를 모두가 겪고 있다.
최솟값으로의 수렴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각자 기본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왜냐하면 시스템의 성과라는 것이 평균이 아니라 최솟값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날씨 예보의 정확도가 데이터, 모델, 해석 중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 것처럼 데이터가 훌륭하고 해석이 정교하다 해도, 모델이 형편없으면 전체는 형편없는 예보가 된다. 역으로, 모델이 최고라 해도 데이터 품질이 떨어지면 무용지물이다.
금융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리스크 모델이 아무리 정교해도 데이터 파이프라인이 오염되어 있으면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진다. 시스템이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해석 능력(sense-making)이 부족하면 그 기술은 오용될 수 있다. 영업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리스크가 제어되지 않으면 조직 전체가 망하고 인프라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접합한 콘텐츠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이제는 모두가 이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 조직의 성공은 더 이상 최고 성과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가장 취약한 부분에 의해 제약받는다. 따라서 각 영역에서 기본은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시 부족하다.
방향성의 정렬(Alignment)
각자 최선을 다하되, 그 벡터가 같은 방향을 향해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벡터의 방향을 왜곡할 수도 있다. 지향해야 할 곳과 어긋난 방향으로 조직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열심히 해야 할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힘을 쓸 수 있다. 비효율은 여기서 나온다. 서로의 에너지가 상쇄되는 악순환은 전진이 아닌 제자리 혹은 퇴행을 낳는다.
방향성의 정렬 없이는 조직의 변화도, 의도한 성과 창출도, 시스템적 학습도 모두 불가능하다.
방향이 맞춰진 후에야 비로소 개별 노력들이 시너지를 만든다. 개개인은 헛된 일을 하는 느낌에서 해방될 수 있으며 의도했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팔란티어(Palantir)와 시스템적 혁신
이 모든 것을 현실적 맥락을 통해 이해하고 프로젝트를 통해 관념을 현실화하던 중,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라는 기업의 철학을 접했을 때 비로소 확신이 생겼다. 팔란티어는 이 원칙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는 기업이었다.
팔란티어의 핵심은 데이터, 기술, 도메인 전문성, 조직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통합하려는 집요한 노력이다. 단순히 좋은 기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조직의 실제 의사결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계한다. 데이터 엔지니어, 데이터 과학자, 도메인 전문가, 조직 내 의사결정자가 모두 같은 언어로,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도록 한다.
이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극도로 어려운 작업이다. 항상 저항과 긴장이 맴도는 현실 속에서 다음과 같은 어려운 일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각 영역의 전문성을 존중하되 통합해야 한다. 기술자가 조직을 무시하면 안 되고, 조직이 기술을 폄하해도 안 된다.
둘째, 이를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과 대화가 필요하다. 표면적 합의가 아닌 깊은 이해와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
셋째, 이러한 프로세스를 시스템으로 녹여내야 한다. 개인의 노력에만 의존하면 지속 불가능하다. 반복 가능한 방법론, 명확한 책임, 측정 가능한 결과가 필요하다.
AI 도입의 실패—현상의 모방으로는 부족하다
최근 AI 도입 프로젝트들이 거의 "mixed result"에 머물러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조직이 하는 것은 현존하는 프로세스의 모방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방식을 AI로 자동화할 수 있을까?"
이것이 현실의 질문이다. 그리고 답변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자동화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혁신은 아니다.
인간 노동력의 대체는 가능하다.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쉬지 않고 운영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면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고, 단지 그 실행을 기계에 맡기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기업이 추구하는 진정한 혁신은 다르다. 그것은 다음을 요구하며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기술과 인간의 관계 설정에 관한 문제다.
-문제의 재정의(Problem Reframing) - 우리가 정말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목표의 정렬(Goal Alignment) - 조직 전체가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는가?
-프로세스의 재설계(Process Redesign) - 기존 방식이 아닌, AI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방식은?
-능력의 재구성(Capability Recomposition) - 어떤 역할이 필요하고,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복잡성 시대의 통찰
우리는 각자 기본은 해야 한다. 날씨 예보가 망하는 법칙—최솟값으로의 수렴—이 존재하는 이상, 누구든 현저하게 부족하면 전체가 망가진다. 따라서 개별 영역의 탁월함은 여전히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진정한 성과는 이러한 개별 탁월함들이 같은 방향의 벡터로 정렬될 때 만들어진다. 이것이 현대의 조직, 현대의 금융 시스템, 현대의 AI 도입이 직면한 도전이다.
우리는 부품 같은 구조에서 유기체 같은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각자의 최선이 서로의 최선을 강화하는 시스템, 벡터의 충돌이 아닌 벡터의 동기화가 일어나는 조직.
이것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술과 사고, 치열한 고민과 인간의 노력이 결합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반복 가능한 시스템으로 만드는 데는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이 아니면, 지금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과 노력은 무모한 것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불확실성은 단순히 복잡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대응 방식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복잡한 네트워크 속 벡터의 시대가 되었을 때, 우리가 여전히 개별 부품을 최적화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제자리에서 회전하게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정렬이다. 새로운 조직, 새로운 사고, 새로운 시스템.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잘 정렬하고 치밀하게 조합하는 능력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