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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너 어떡하냐

추격당하는 줄 알았는데 이미 추월당했을지도...

by HoA

올해 유난히 비판적 지성과 통섭 능력에 감탄했던 교수님이 계신다. 그분이 올 초만 해도 AI를 "잘난 체하는 대학원 초년 차"에 비유하며 아직 멀었다고 평하셨다. 그랬던 그분이 이제 박사연구생 정도 되는 것 같다고 업데이트를 하셨다가, 최근에는 『먼저 온 미래』라는 책을 읽은 소감에 "인간, 너 어떡하냐"라는 짧은 문장을 남기셨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불과 몇 달 만에 일어난 지성의 거대한 방향 전환은, 이미 시작된 미래의 서늘한 공기를 압축적으로 전달했다.

사실 나는 스스로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의 지적 능력이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다고 여겨왔기에, AI가 대다수의 지식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 비교적 빨리 수긍한 편이었다. 다만 '관념적으로' 인간이 해야 한다고 믿는 특정 영역, 인간의 암묵지가 빛을 발하는 특수한 전문 영역 정도가 우리의 몫으로 남으리라 막연히 기대했다. 인간이 진짜 잘하는 무언가가 끝까지 있어주길 바랐던 것이다.

솔직히 내가 오래 몸담았던 개인신용평가 영역은 이미 AI로 대체된 지 오래다. AI라는 단어가 사후에 그 일을 장식한 것이지 아주 오랫동안 모델이 적용되고 발전해 온 영역이다. 개인의 신용상태를 판단하는 것은 사람이 더 잘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평가건이 많아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도 없다. 반면 기업 심사는 법적, 규범적 인식으로 인해 '전문 심사역'이라는 인간의 판단이 아직은 지배적인 영역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최근 만난 한 기업 심사 모델 전문가는 "이 관념이 왜 아직 유지되는지 모르겠다"라고 잘라 말했다.

늘 기업 평가 영역의 보수성과 기술적 혁신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에게, 그 말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내 생각이 맞았다는 으쓱함 한편으로, 인간 노동의 종말을 목격하는 듯한 서글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심지어 그는 "회사에서 자꾸 사람을 채용하라는데, 솔직히 그럴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나 역시 사람과 일하는 데 드는 감정적 비용과 육성을 위한 노고, 그 과정이 필요 없는 AI기술들을 떠올리며, 인력 충원이 사실상 부담스럽다고 동조한 바 있으니, 더 이상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은 최후의 보루는 무엇인가. 윤리적으로 혹은 통념상 인간에게 맡기고 싶은 문제는 의료 분야일 것이다. 다만, 영상 진단 의학 분야는 데이터 이슈와 규제, 그리고 'AI-Human Tension'이라는 저항에 부딪혀 있지만, AI모델이 기술적 성능(진료 정확도)의 문제는 이미 인간 의사를 넘어선 상태다. 그렇다면 진료와 치료처럼 더 '인간적인' 행위가 필요한 영역은 다를 것이라 믿었다.

그러던 차, 한 정신과 전문의와의 점심 식사는 그 마지막 기대마저 흔들었다. 그는 "일반적인 상담 치료는 AI에게 맡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잘할 수도 있다"라고 태연히 말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지식 노동의 성과' 측면에서 인간이 설 자리가 거의 남지 않았다는 냉혹한 현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내심 '설마' 했던 마지막 관념이 '역시'라는 사실로 굳어지는 순간,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AI가 인간의 감정을 해킹할 수 있게 되면, 우리의 신념과 선택을 조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쩌면 AI는 환자의 미묘한 표정 변화와 목소리 톤을 인간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데이터'로 인지하고, 편견 없이 '가장 적절한' 공감을 텍스트로 생성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chat gpt를 감정교류의 파트너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AGI(범용인공지능)는 글쎄…"라던 학자들은 이제 "AGI는 시간문제일 뿐"이라며 ASI(초인공지능)를 연구하고 있다. 그것이 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밀물을 타고 빠르게 오든, 썰물의 저항을 받고 더디게 오든,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나는 기술 낙관론자이며, 이미 AI의 수혜를 톡톡히 받고 있다. 이왕이면 이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깊은 고민이 든다. 이 거대한 밀물로 인해 상처 입고 피해받을 누군가의 미래를 위해, 이 방향키를 조율하고 속도를 제어하는 일은 과연 누가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저 '인간, 너 어떡하냐'는 스산한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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