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직, 나이가 혁신을 방해하는 이유

도전은 미덕이지만 생존 앞에서 사치가된다

by HoA

도전은 미덕이지만, 생존 앞에서는 사치가 된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11874591

어느 팀장이 있다고 하자. 15년을 버텼고, 부하 직원의 실수를 덮어줬으며, 윗사람의 심기를 읽어가며 자리를 지켰다. 그가 어느 날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든다. 주변은 잠시 주목한다. 그리고 침묵한다. 그 침묵 안에서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실험이 실패하면, 다음 기회는 없다는 것을.

연초에 "조직 혁신을 가로막는 건 나이가 아니라 사고방식"이라는 논설을 읽었다. 맞는 말이다. 열린 사고를 가진 50대가 있고, 닫힌 마음을 가진 30대가 있다. 명제 자체는 참이다. 그러나 이 말은 한국적 조직 현실 앞에서 반쯤만 참이다.

한국 사회에서 연령은 생물학적 숫자가 아니다. 연령은 직급이고, 직급은 권력이며, 권력은 곧 책임의 무게다. 그리고 책임의 무게가 커질수록 사고방식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 된다. 부르디외가 아비투스라고 불렀던 것 — 오랜 시간 몸에 새겨진 안전한 행동의 지도 — 은 나이가 쌓일수록 지워지지 않는다. 잃을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실험이다. 실험은 실패를 전제한다. 그런데 한국 조직에서 실패는 학습이 아니라 낙인이다. 중간관리자의 실패는 인사고과가 되고, 인사고과는 승진이 되고, 승진은 퇴직 이후의 삶과 연결된다. 이 구조 안에서 40대 후반의 팀장이 위험한 도전을 감행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다.

젊은 세대에게 실패는 커리어의 일부다. 이직하면 된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러나 기성 세대에게 실패는 종종 마지막 실수가 된다. 그간 쌓아온 신뢰, 지위, 관계망이 한 번에 무너지는 구조에서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합리성이다. 합리적 행위자가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가 조직 전체의 비합리성으로 귀결되는 것, 이것이 집합행동의 비극이다.

그래서 "나이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문제"라는 말은, 권력과 책임이 연령과 강하게 결합된 사회에서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사고방식은 자유의지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체스판의 말에게 창의적인 수를 기대하기 전에, 체스판의 규칙을 바꾸어야 한다.

연령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연령이 쌓일수록 기존의 아비투스를 버릴 수 없게 만드는 구조를 그대로 두는 한, 나이는 혁신을 저해하는 변수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개인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조직이 실패의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순간, 혁신은 선언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혁신을 원한다면, 용기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실패는 누구의 책임인가.

그 대답이 여전히 개인이라면, 그 조직은 이미 혁신을 포기한 것이다. 팀장의 손가락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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