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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 and Olivia
불꽃놀이
기억을 꺼내다
by
HoA
Oct 7. 2019
여의도 불꽃놀이 축제가 열린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단지 내 이웃하는 한 두 동에서는
불꽃놀이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 사실을 안지는 꽤 되었음에도
나는 몇 해 동안 큰아이와 남편만 구경 보낼뿐
기껏해야 우리 집 창밖으로 반쯤 가려진
불꽃을 잠깐
보다
말다 했을 뿐이다.
올해는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단지 날씨가 좋아서인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특별히 둘째까지 데리고
제대로 불꽃놀이 구경을
하고 싶었다.
조망이 특별히 좋은 아파트동 고층 복도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틈에 우리도 자리를 잡고 섰다.
이윽고 시작된 불꽃놀이.
어두운 하늘을 가로질러 솟아오른
폭죽들은
줄지어
파열
음을
내며
다채로운
색깔로 저마다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쁘고
화려하고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형언하기 어려운
다양한 감정이
내면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TV에서 어릴 때부터 꿈꾸던
디즈니랜드에 가서 불꽃놀이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김준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결혼하기 전 엄마와 단둘이 떠난 미국 여행에서
라스베이거스 음악분수쇼를 보
며
가슴이 벅찼던 장면이 생각났고
여수 오동도에서 아빠 무등을 타고
소박한 불꽃놀이를 구경했던
서너 살 유년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너무나 희미해서 가공인지 사실인지조차
확실치
않은 그런 추억 속 장면이다.
둘째는 어느새 내 등에 업혀 불꽃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잠에 들었고
잠든 아이를 받아 드는 남편과 나는
다정한 눈빛을 나누었다.
사그라드는 불빛은 아련하고 또 슬프기도 해서
아픈 친구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공연 내내
하늘이 뚫어져라 주시하는
큰 아이의 맑은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 순간을 위해 몇 달을 고민하고 고생했을
불꽃 기술자 혹은 예술가에게
신기하고 대단한 일을
해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기도 했다.
오늘 밤엔 무수히 터진 불꽃만큼이나
내 안에서 터지고 사멸한
수많은 기억과 상념이
되살아났고
그중 상당수는 연기를 남기며 사라졌다.
그런데 그 많고 사소한 것들 중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하지만
잊고 있었던
약속
하나가
생각났다.
여덟 살 혹은 아홉 살쯤이었을 것이다.
아빠와 다정히 손을 잡고 어딘가를 가던 중에
아빠는 어느 나라에 가보고 싶냐고 물었고
나의 젊은 아빠는 호주가 좋겠다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캥거루와 코알라가 있는 멀고 먼 나라가
우리가 여행하기 썩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늘 건장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후줄근한 옷을 입는 우리 아빠에게
멋진 신사복을 선물하고 함께 호주에 가자는
약속을 했던 것 같다.
내가 품었던 많은 꿈이나 다짐 중에
지금 이 장면이 생각나는 건
아마도 지금 내가 지킬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제나처럼 나의 아빠는
집에서 야구나 보는 게 좋으시겠지만
내년 즈음엔 말쑥한 옷차림의 아빠를 모시고
여행을 가야겠다.
그곳에서 불꽃놀이까지 한다면
아마 나도 눈물을 흘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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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은 있지만 내가 누군지는 찾아가는 중입니다 글을 쓰는 과정이 그 길에 닿아잇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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