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찬란한 20대를 보내기 위한 좌충우돌 취준기 I
처음 대학교 합격통지를 받았던 때가 떠오른다.
'귀하의 전형 결과가 발표되었으니, 사이트에 접속하시어 합격여부를 조회하시기 바랍니다.'
두근거리는 내 심장을 부여잡은 채, 교실에 있는 모두의 앞에서 합격여부를 공개하는 학교 전통에 따라 공개처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잔인했다. 나는 수시전형이었고, 내가 합격을 한다면 반 친구들의 부러움과 시기, 질투를 동시에 받았을 것이다. 반대라면, 꼼짝없이 선생님의 구령 하에 같이 수능 공부를 해야 했겠지…
결과는 다행히도 합격이었다. 나는 그대로 수능 전 합격자 팀에 들어가 편하게 고교생활을 마무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한 주, 두 주가 흐를수록 또 다른 불안감이 엄습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이었다.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아주 조금 빠른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막상 합격이 되어보니 또 다르게 준비할 것들이 많아졌다. 등록금 납부도 있고, 앞으로 어디서 생활하는지 답사도 좀 해보고 싶기도 했다.
주말에 부모님과 함께 캠퍼스 나들이를 갔다. 캠퍼스는 다행히 평지였고, 주변에 시외버스 간이정류장이 있어서 집에 왔다 갔다 하기도 편해 보였다. 제일 좋은 점은 기숙사가 신입생에게 많이 배정된다는 점이었다. 입결 성적에 대한 고민은 있었으나, 그래도 배정비율이 높으니 기숙사에 되겠지 싶었다. 인근을 보니 술집도 많아 보였고, 코인 노래방도 두세 개 있어서 앞으로의 생활에서 심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적응을 해야 할 캠퍼스를 바라보며 한편으로 걱정도 됐다. 어떤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할지, 어떤 교수님과 함께 수업을 할지, 동아리는 어떤 게 좋을지 등 말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너무나도 대학생활을 기대했기 때문이었을까…. 불안감마저 들었었다. 그 불안함은 뉴스를 통해서 더 커져만 갔다. “대한민국 대학교 졸업자 중 70%가 취직을 못한 상태로 취업준비생으로 남는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중 일부는 취업 실패의 도피를 위해 대학원을 진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 대학만 나오면 취직하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을 나는 계속해서 들어왔다. 대학의 의미는 나에게 무엇일까. 결국 대학은 취직을 위한 것이 아닌가? 왜냐면 회사들은 대학교 졸업장을 원하니까 말이다. 결국 ‘대학교는 취직을 위해, 회사를 다니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대학은 결국 직업훈련소였다. 내게 대학은 그런 곳이었다. 머리가 띵 해졌다. ‘앞으로 뭐하고 먹고살아야 하지?’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내 나이 열아홉. 고3 가을이었다.
나는 곧바로 다음 주에 다시 합격한 대학교에 갔다.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것일까 부산하게 움직이는 선배들이 보였다. 고등학교 때 봐왔던 노스페이스와는 다르게 코트를 입고 구두를 신은 멋쟁이 형누나들을 보며, 드디어 대학생이 되는 것이군!이라는 기쁨도 잠시 나는 곧바로 내가 합격한 학과의 학과 사무실로 갔다. 그곳에는 학생들과 조교선생님 그리고 교수님들로 북적였다.
"조교 샘, 오늘은 어떤 커피가 맛있을까?" 정교수님이셨다.
"정교수님은 이 시간대엔 항상 믹스드시지 않으셨어요?" 반대쪽에 서계셨던, 김 조교 샘이셨다.
"그렇지? 당이 당길 시간이지. 그런데 학생은 누구지? 처음 보는데?" 정교수님이 내게 물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12학번으로 입학하게 된 Austin입니다."
이때가 2011년 겨울, 정교수님이 궁금한 듯이 물었다. "응? 12학번이 왜 학교에 왔지?, 조교 샘이 불렀어요?" 당황한 조교 샘이 나에게 물었다. "네? 아뇨?… 그래, 넌 누구니?, 무슨 일이야?"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Austin입니다. 아직 입학하지 않은 합격생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학교생활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잘 취직할 수 있을지 고민되어 왔습니다."라고 내가 말하니 김 조교 샘과 정교수님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됐지만 한 해 선배였던 근로장학생의 눈이 서로 맞춰지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 눈빛은 바로… ‘얘, 뭐라고 하는 거니?’였다.(작가는 아직도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내가 얼마나 희한한 학생이었는지 알겠다. 다만, 그때는 몰랐다. 왜냐면 당시에 내 기분은 '내가 진짜 취직을 해야 하니까 너네가 길을 알려줘'라는 절박한 나만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속마음은 이랬다. '대학 나온다고 해서 다 취직되는 건 아니라며… 난 진짜 취직하고 싶단 말이야… 알려 달라고… '.
정교수님은 웃음 지으며, "올해는 재미난 애가 들어왔네, 그래 내 방으로 와바."라고 하셨고 나는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리곤 내 소문은 머지않아 우리 학과 전부에게 돌게 되었다. 교수님 방에서 차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집은 어딘지 등 스몰토크를 이어나가시던 교수님께서 질문하셨다.
"왜, Austin이 취직을 하려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대학원생이 될 수도 있고, 연구원으로 교내에서 일할 수도 있는데 콕 집어서 취직이라는 걸 묻는 게 궁금해서 그래."
나는 그래서 평소 생각하던 내 생각을 말했다. "저는 월 400은 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동안 매일같이 신문 사설을 모으면서 이런저런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수집해보니, 월 400은 벌어야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월 400은 그런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월 400을 번다는 것은 그 이후에 더 큰 급여를 번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교수님은 "그래? 월 400이란 돈이 Austin 네겐 그런 돈이구나, 그런데 내가 얼마 받는지는 아니?"
교수님의 질문에 당황했다. 나는 교수님이 얼마 버는지 몰랐다. 돈에 대해서 궁금했지, 어떤 직업이 얼마를 버는지에 대해서 궁금해보진 않았기 때문이다. "네? 교수님요? 왜요?" 교수님은 이에 헛웃음 치며 말했다. "아니, 그냥…. 돈에 대한 의미를 알까 싶어서 물어봤지. 그래 네 뜻은 알겠고, 취직을 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자신 있니?"
나는 교수님의 질문에 고민을 조금 했다. 왜냐면…. 난 대학 오면 공부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취직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니, 해야지 뭐… 라는 생각에 "네, 열심히 할게요, 교수님. 대신 도움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제게 강의실을 좀 빌려주세요."라는 내 말에 교수님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응? 강의실?" 하지만 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스터디를 만들어 보려고 해요. 공부를 잘해야 취직도 잘된다고 하셨죠? OT에서 모이는 신입생 중 일부를 모아서 스터디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내 말이 그렇게 웃긴 건지 교수님은 또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그래, Austin이 원한다면, 과 차원에서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조교 샘, 학생 강의실 하나 마련해 주세요. 시간대는 추후에 정하면 될 것 같아요." 교수님은 곧바로 조교 샘께 전화를 했고, 나는 강의실 매주 4시간씩 두타임을 공식적으로 얻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생 때 가장 돈 아깝다고 생각되는 리포트 출력과 공부할 때 마실 커피도 학과 사무실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배려해주셨다.
이로써 나의 취직을 위한 교수님과의 공생관계(?)가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