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왔다
사는 게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 처음 입사할 때였다. 임원들과의 면접을 마치고, 사장님과 면접을 따로 한 적이 있었다. 보자마자 내 이름을 불렀다. 몇 번 보지는 않았더라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장이 신기했다. 어떻게 아냐고 물었는데, 어제저녁에 사진과 이름을 보며 외운다고 밤을 꼬박 새웠다고 했다. 참, 사장 노릇도 힘들구나 싶었다.
이 회사에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전공을 기반 삼아 채용됐기에 전공대로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직무대로 일을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다 갑자기 진지하게 나에게 마케팅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다. 한평생 공대생으로 살아왔고, 과학을 좋아했던 나에게 마케팅은 전혀 모르는 분야였다. 만약 내가 간다고 해도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됐고, 민폐 끼치지 않을까 맘 졸일 것 같았다.
하지만 사장은 적극적이었다. 어차피 신입은 베이스가 없는 것이니까, 두려워 말고 한 번 일 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다시 한번 물었다. 나는 재차 물으시는 사장을 보고 왜 이러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괜히 또 거절했다가는 사회생활 시작부터 꼬일까 싶어 냉큼 그러겠다고 했다. 시키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시켜달라고 말이다. 어차피 신입인데 뭔들 못 하겠는가. 잘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 싶었다.
그렇게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는 들뜬 마음으로 발령을 받기를 기다렸다. 나는 속으로 공장 대신에 본사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제일 아래에 공장 발령이 적혀있었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고, 나중에는 실망을 했다. 처음부터 간다고 했었던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대가 컸었던 것 같다. 실망을 하고 있는 와중에 다른 동기는 본사 근무가 아닌, 울산지사에 간다는 얘길 들었다. 그 동기의 표정은 아직도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선배님들 앞에서, 임원들 앞에서 발령에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웃으면서 수료증을 주는데, 그 동기만큼은 표정이 밝지 않았다. 나는 그보다는 나았기에 만족은 못했지만 내 마음을 추스르며 받아들였다. 그런 내 표정이 읽혔을까, 마칠 때쯤 사장이 다가와서는 딱 1년만 일하고 보자고 했다. 1년 이후에 본사에서 같이 근무하자고 말이다.
내가 도대체 뭐가 마음에 들었길래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지 했다. 내 참... 사람 마음 싱숭생숭하게 말이다. 그렇게 1년쯤 공장에서 근무하고 적을 했을 때 인사발령이 났다.
○○○사장 의원면직(2019.xx.xx)
참... 사는 게 내 맘대로 되질 않더라.
그렇게 5년을 공장에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관악 시민이 되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