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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어라운드 Jul 23. 2024

수영장 (1)

아이의 마음을 얻는 방법

물놀이 하러 가고 싶어


얼마 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한 주 내내 물놀이 프로그램이 있었던 때의 일이다.


유치원 앞마당과 뒷마당 데크에

각종 소형 풀이 세팅되었고,

아이들은 수영복을 입고 온몸을 적시며 놀았다.

어떤 날엔 가볍게 물총 놀이를 하며 놀이를 하기도 했다.


게다가, 유치원 안에서 하는 물놀이 외에도,

그 주 수요일엔 유치원에서 단체로 인근의

야외 공원 물놀이장으로 진짜 물놀이를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주초부터 비가 오고

하늘이 잔뜩 흐리더니,

결국 낮은 기온과 우천으로 인해

물놀이가 취소 및 잠정 연기되었다.


우리 아이는 그게 내심 속상했던 것 같다.

목요일 저녁 즈음 돼서,


"나 물놀이하러 가고 싶어!"


라고 말하길래, 선뜻 대답을 했었다.


"응 그래, 그럼 내일 수영장 갈까?"


정말 가보자는 마음 반,

내일이면 아이가 까먹겠지 하는 마음 반이었다.


그런데 이어 아내가 덧붙인다.


"아 난 어차피 토요일에 약속도 있고, 지금 피부 때문에 수영장 못 가니까, 그럼 둘이 가면 되겠다!"


지난 태국 여행에서 모기에 물려

피부에 알러지 반응이 생긴 아내는,

좋아하던 수영장도 못 가고,

아직도 약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어차피 같이 가지 못하는 거였다.


아, 내가 원하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설마 내일 가자고 할까?'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지나갔다.


그런데 웬걸.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이가 이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 엄마에게

내일 수영장 갈 거라며 재잘댄다.


그리고 이를 들은 아내가

나에게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다.

나는 당황하여 대답한다.


"정말로 수영장을 가라고?"

"응 오빠가 데려간다고 했잖아~"

"난 그냥 해본 말이었지!"

"뭐??"


상황이 난처해진다.

결국 급히 수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나를 보며 아내가 조언을 해준다.


"시에서 하는 이동식 물놀이장으로 가~ 개장했대."


찾아보니 7월 20일에나 개장한단다.

부랴부랴 다른 곳을 더 찾아보니,

주말 야외 공원의 물놀이장은 위생이 불량하여

다녀온 아이들이 각종 질병에 걸렸다는

후기가 보였다.


아, 가깝고, 깨끗하고,

나도 덜 힘들만한 곳은 없을까.

그러다가 드디어 한곳을 찾았다.


시청에서 주말에 바닥분수가 운영을 하는데,

여기서 아이들이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재밌게 한단다.


"그래 여기야!"를 속으로 외치며,

아내에게 내일 이곳을 갈 거라며 보여줬다.

아내도 딱 좋다며,

약속이 끝난 후 이곳으로 합류하겠다 했다.



이건 수영장이 아니잖아


그리고 마침내 일요일이 되었다.


오늘 아침도 8시도 전에 일어난 청개구리 아들은

(평일엔 항상 늦게 일어나고, 주말엔 일찍 일어나는 아들이다)

일어나자마자 외쳤다.


"오늘 우리 물놀이 가?!"


내심 아이가 기억을 못 하면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기억을 하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시청 바닥분수를 보여주며,

이곳으로 가자 꼬드겨 보았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이건 수영장이 아니잖아?!"


다시 꼬셔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그냥 일반 수영장을 보여줘 봤다.


"그럼 이런데 가고 싶은 거야?"

"아니! 이런데 말고, 막 물총도 쏘고, 태국에서 놀았던 것 같은 그런 수영장!"


아 그래... 워터파크 같은 걸 원하는 거구나.

그래 알았다 아들. 너의 취향은 정말 확실하구나.


예전부터 언젠가 가봐야지 하고

킵해놨던 비장의 장소를 꺼내들었다.

바로 화성에 위치한 '프로방스 율암'.


온천 호텔인데,

수영장만 따로 이용이 가능한 곳이었다.

수영장 물이 따뜻하고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이라고 했었다.


아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응응 여기 갈래!"

라고 한방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가보자.


우리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기에,

특히 토요일엔 도로가 막혀서 더 걸릴 것이기에,

아침 일찍부터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수영장 그냥 가지 말까


하지만 쉬운 게 없었다.


아이 본인이 가고 싶다고 한 곳임에도,

외출 준비는 여전히 어려웠다.


아침 일찍 준비해야 한다고

옷부터 입으라고 했음에도,

거실 소파로 가서 사인펜을 들고

장난을 치더니 양손이 까맸다.


밥 먹으려면 손 씻고 오라고

화장실에 들여보냈더니, 감감무소식이다.

흘깃 안을 살펴보니,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손 세정제의 거품을 풀어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으득.


한번 경고를 주고, 다시 아침 준비를 하는데

또 화장실에서는 물소리만 나고 있다.

다시 가보니 세면대 물놀이 2차전이다.


어금니가 꽉 깨물어졌다.

다시 한번 경고를 줬지만,


결국 아이는 3차 경고까지 받아냈다.


'아... 수영장 그냥 가지 말까.'


머릿속에서는 다 귀찮고,

집에 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드디어 나왔다.

그러고는 아침으로 차려준 샌드위치를 놓고

고사를 지내고 있다.


연신 딴짓을 하며,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다.

용케 구운 계란 2개를 입에 넣고,

샌드위치는 여전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제 수영장 안 가고 싶어진 아빠는,

억지로 점심 도시락을 준비한다.


다진 소고기를 볶고,

밥에 볶은 고기와 주먹밥 가루를 뿌려서

주먹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 거 한 통, 내 거 한 통.

각자의 주먹밥 도시락을 만든 후에는,

납작 복숭아 2개를 꺼내 밀폐용기에 담았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마친 후에야

아이의 식사가 끝났다.


'아... 수영장 그냥 안 가면 안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비 끝에 두 부자는 집을 나섰다.


우리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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