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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어라운드 Jul 24. 2024

수영장 (2)

아이의 마음을 얻는 방법

물놀이는 2시간도 하지 않았다


수영장으로 가는 길도 쉽진 않았다.


판교 부근에서 고속도로 차선을 잘못 타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게 됐다.

난데없이 서울 나들이를 할 판이다.


게다가 서울 가는 차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정체다.


양재 부근에 이르러서야,

과천으로 길을 빠져나와 시원한 속도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와 단둘이 약 1시간 15분을 달려,

경기도 화성에 도착했다.


꽤 오랜 시간을 아이와 둘이 재잘대며

차를 타고 가다 보니,

작년에 제주 한 달 살기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그때도 이렇게 매일 같이 단둘이

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말이지.


12시가 약간 안돼서 도착했는데,

벌써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차 있었다.



래시가드로 옷을 갈아입고 수영장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사람들이 많다.


아이는 수영장 물에 들어가기 전에 나를 보며,


"아빠, 우리 준비 운동해야지!"


하며, 짧은 팔, 조막만 한 손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영차 영차 준비 운동을 했다.


"아빠랑 같이 해보자 요렇게!"


내가 국민체조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조금 따라 하다가 이내 재미가 없어졌는지,

이제 준비 운동은 다 했다며 물에 들어가쟀다.


물은 생각보다 조금 찼지만,

그래도 미약한 온기가 느껴지긴 했다.

그냥 워터파크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물이 차가워서 주저하는 아이 손을 잡고

조금씩 물에 들어갔다.


처음엔 춥다며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던 아이도,

어느새 물에 깊숙이 들어왔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고, 엄마도 없어서 일까.

아빠의 등을 꼭 껴안고 떨어지려 하질 않는다.


"아빠, 업고 가줘!"


이 말을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일어나면 허리 밖에 안 오는 수심을

쪼그려 앉은 자세로,

아이를 등에 업고 계속 물을 휘젓고 다녔다.


슬라이드는 한번 타보더니,

물이 코에 들어가서 다시 타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물총 싸움도 하고, 야외 스파도 하고,

제트 스파 앞에서 장난도 치고,

떨어지는 물을 같이 맞기도 하면서

1시간 반 정도를 보냈더니,

아이가 이제는 가고 싶다고 했다.


생각보다 너무 짧게 논 느낌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 또한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임에,

아이 손을 잡고 탈의실로 올라왔다.



수영장보다 재밌는 목욕탕


물놀이를 끝내고, 목욕탕으로 입장했다.


온천 호텔이라 그런지,

목욕탕이 굉장히 잘 되어 있었다.


줄지어 있는 샤워기와 의자들.

냉탕과 열탕이 각각 널찍하게 있어,

몸을 담그기도 좋아 보였다.


어렸을 때 부모님 손잡고 다녔던

목욕탕 생각이 났다.


아이와 물 샤워를 한 후에, 열탕으로 같이 들어섰다.


"뜨거워!!"


외치는 아이에게,

들어와서 10초 있으면 안  뜨거워진다고 알려줬다.


아이는 아빠 말대로 두 발을 열탕 속에 담그더니

10초를 세기 시작했다.


"한나~ 두울~ 세엣~"


그리고 열을 세더니 환하게 웃는다.


"이제 안 뜨거워!!"


고개를 끄덕여주며 호응해 주니,

이번엔 엉덩이까지 물에 담가본다.


"하나~ 둘~~셋~넷~~"


열을 세고 나서, 또 뜨겁지 않다며, 좋아라 웃는다.

다행이었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몸을 담그고 있으니,

세상 낙원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열탕과 냉탕 사이에 놓인 작은 대야에

아이 관심이 갔다.


"이건 뭐야?"


하며, 물을 펐다 부었다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옆에 다가온, 한두 살 많아 보이는 형이

냉탕에서 대야로 물을 퍼내

몸에다 끼얹는 모습을 보자,

새로운 놀이를 찾은 얼굴이다.


찬물을 펐다가, 더운물을 펐다가,

여기 부었다가, 저리 부었다가, 아주 신이 났다.


원래 같으면 차가운 물에

아이가 감기라도 걸릴까,

그를 만류하는 나였을 텐데,

오늘은 뜨거운 온천물 때문인지,

내 마음도 같이 풀려버렸다.


나도 흥이 돋아, 몸을 벌떡 일으키고,

냉탕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뜨거운 물에서 차가운 물로 갔다가, 또 뜨거운 물로 가고. 반복하면, 우리 몸의 혈관이 확장돼서 건강에 아주 좋아!"


아이에게 설명해 주며,

찬물을 몸에 끼얹었다.


아이는 이런 아빠 모습에

자기도 발을 찬물에 넣어본다.


결국 차가워서 발을 뺐지만,

여전히 손에 대야를 놓지 않고 있었다.


나는 열탕에 들어갔다,

냉탕에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아이 보고 아빠 몸에 대야로

찬물을 끼얹어보라고도 했다.


아이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연신 쫑알 거리며 대야로 물을 퍼서 장난을 쳤다.


그렇게 한참을 목욕탕에서 노는데,

왜 이게 수영장보다 재밌는 걸까.


'아이와 목욕탕에 한번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자고 해야지'라고 가끔 생각했었기 때문일까.


목욕탕의 열기로

내 마음도 같이 훈훈해졌다.


몸을 말리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뭐가 재일 재밌었어?"

"목욕탕에서 물놀이한 거!"


너도 그랬구나.

아빠도 그랬어.



아이의 마음을 얻는 방법


돌아오는 길도 또 차선을 잘못 타서,

도착 시간이 늘어났다.


집에 도착하고 보니, 오후 4시가 거의 다 됐다.


약속이 있었던 아내는 진즉 집에 돌아와 있었고,

집에 도착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나 이 정도면, 지금 육퇴해도 될 것 같아!"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빠 오늘 육퇴하세요!"


하지만 내심 불안감이 든다.

과연 아이가 나를 안 찾고, 온전히 쉴 수 있을까?


역시나, 예감은 틀리질 않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 보니,

아이가 계속 아빠를 불러댄다.


저녁 식사를 위해,

주방 베란다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고기를 굽는데,

아이가 자꾸 들어오려 한다.


"아빠, 저도 같이 구울게요!"

"아빠, 제가 상추쌈을 싸서 드릴게요!"

"아빠, 제가 샐러드를 가져왔어요!"


아이는 방앗간 앞 참새 마냥,

자꾸만 아빠를 찾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저녁 운동을 다녀오는데,

아내의 메시지가 왔다.


"아빠 기다린다고 문 앞에 있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아이가 달려온다.


"아빠~~~~!!!"

"그래~~ 아직 안 잤어? 근데 아빠 몸이 땀에 젖어서 안아줄 수가 없네~"

"괜찮아요! 마음으로 안아주시면 되죠!"


갑자기 왜 이러니 아들.


"아빠, 씻고 나올게~?"

"네 아빠! 제가 아빠 옷을 가져다드릴게요. 속옷~ 바지~ 티셔츠~~ 여깄습니다!"

"어우 고마워요~~"

"옷을 벗으시면, 제가 옷을 세탁기에 넣겠습니다!"

"어유~~ 너무 고맙습니니다~~"


갑자기 호강 모드?


샤워를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린다.


"아빠~~"


아이가 한없이 다정하게 아빠를 부르며 들어온다.

그러더니 아빠 옷을 챙겨주겠다며,

로션을 발라주겠다며, 부산하다.


"아빠 보고 싶어서 들어왔어? 샤워 다 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릴 거야?"

"네~~"


결국 아이는 내가 샤워를 끝내고 나올 때까지,

샤워 유리 옆에서 내 곁을 지켰고,

나와서는 같이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가끔 이런 날이 있다.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히 아이에게 사랑을 주었을 때,

아이의 마음이 나로 가득 차서,

내가 도리어 너무 황공해지는 그 순간이.


이 짧지만 긴 하루를 되돌아보니,

하루가 참 행복하고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또 그 아이가 사랑을 되돌려주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저녁에 아이와 셋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인형을 한가득 쌓아놓고 놀이를 하는데,

아내가 '지금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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