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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어라운드 Jul 29. 2024

이러니 내가 널 사랑할 수밖에 (1)

우리 가족은 지난 주말부터 차례로 장염에 걸렸다. 처음엔 아이, 그리고 아내, 그다음은 나.


금요일 저녁부터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주먹밥을 먹고 싶다 하여, 영양 가득 잡곡밥으로 정성스레 주먹밥을 만들어주었었다. 그러나 아이는 한 입 먹고는 더 이상 먹기 싫다고 했다. 다시 배가 아프다는 말에, 소파에 가서 누워 있게 했다. 그리고 잠잘 때가 될 무렵, 일이 터졌다.


침대 위에서 갑자기 우욱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이상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급한 마음에 양손을 아이의 입에 갖다 댔다. 그러자 아이의 입에서 토사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양손에 아이의 토사물을 가득 담고서, 어쩔 줄 모르는 나. 아내도 달려왔다. 나와 교대하여, 양손으로 아이의 그것을 받아냈다. 그렇게 한 번씩 원치 않은 경험을 하고 난 후에도, 아이는 여전히 '욱욱' 거렸다. 아내가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마무리를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아내도 일요일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복통과 구토가 반복됐다. 나만 왜 멀쩡한가 했다. 아내는 일요일에 먹은 보쌈고기 때문에 체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상세가 심상치 않았다. 결국 아내는 월요일에 조퇴를 했다. 집에 환자가 2명이 생겼다.


그리고 그날, 나도 그 싸움에 참전했다. 새벽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잠을 깨다 자다 반복했다. 열이 나기 시작했다. 어질어질 상태가 이상하여, 체온계로 고막 열을 재보니 38도가 넘었다. 아이의 해열제를 꺼내다가 먹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버티기 힘들었다.


그런 몸으로 밤을 보내고, 아침에 겨우 출근했는데, 도저히 버티질 못할 것 같았다. 조퇴를 하고 병원에 들러 링거를 맞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고 오한과 함께 잠이 쏟아졌다. 아이의 하원 시간도 놓치고 잠에 빠져들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보니, 아내와 아이가 들어오고 있었다. 마침 태권도장 옆 마트에 들렀다가, 아이가 아직도 태권도장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데려왔다고 했다. 내가 알람을 안 맞추고 잠든 것에 아내는 불퉁한 모습이었다.


하원한 아이는 자기도 배가 아직 완전히 다 낫지 않았으면서, 아빠를 위로해 줬다. 'OO이 손은 약손~'이라고 노래를 부르며,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내 배를 문질러주었다. 그렇게 비몽사몽 잠이 들었다.


이런 사유로, 우리 세 가족 컨디션은 모두 정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래서였을 것이다. 우리가 평소보다 더 예민해진 것은.


다음날 아침, 어제 아빠를 케어해 주겠다고 친절히 말하던 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아침 등원 준비하기 싫다는 떼쟁이만 남았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나와 아내는, 아이를 닦달할 힘도 없어서, 맥없이 아이를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셔틀버스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결국엔 얼른 옷을 입으라고 강한 억양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래도 계속 딴짓만 하고 있었다. 결국 이러다간 서로 소리를 지르게 될 것 같아서, 아내 보고 먼저 출근하라고 눈짓을 했다. 엄마 먼저 간다는 말에 아이가 또 짜증을 부린다. 그러고는 인사하고 돌아서는 엄마의 뒤로, 닫히는 중문에 대고 발길질을 했다.


아내와 나는 이 광경에, 머리 위 뚜껑이 열려버렸다. 결국 큰 소리가 나고 말았다. 그에 아이의 입이 삐죽빼죽. 실룩거렸다. 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아빠의 입에서는 한참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아내는 화가 난 채로 출근해 버렸고, 아이와 둘이서 등원 준비를 마쳤다. 집을 나서며 아이는, 방금 전 일을 금방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내게 종알 종알 말을 걸었다.


"비가 올 줄 알고 장화를 신었는데 비가 안 와!"

"오늘 바깥놀이하면 불편할 것 같아."


아이는 자꾸 아빠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아빠의 낌새가 좋지 않으니, 화제 전환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도 화가 진정이 되지 않은 상태라, 결국 아이에게 쏘아붙이는 말투로 대꾸를 하고 말았다.


"그게 불편해? 장화 신고 오겠다고 선택한 건 너야. 그러니까 불편해도 어쩔 수 없어!"


아이는 아빠의 눈치를 보았다. 내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나는 혼자 앞으로 쌩 걸어가 버렸다. 아이를 뒤로 하면서 내 마음도 조금 무거워졌다. 아이는 이제 그만 화를 풀자고 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는, 방금 전처럼 문을 발로 차는 행동같이 공격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아이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그리고 어색하게 서로를 안아주었다. 서로 포옹은 했으나, 그 안에 따뜻함은 없었다. 피상적인 봉합이었다.


그렇게 셔틀버스에 타서 등원을 하는 아이를 바라봤다. 나는 애써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이도 무표정으로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저만치 떠나는 버스의 창문으로 아이가 손으로 눈을 훔치는 것이 보였다.


눈이 가려워서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아이가 이내 여러 번 눈가를 손으로 훔치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


'아이가 울고 있구나.'


떠나보내는 내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지금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떠나고 있을까.'


상상이 되고, 또 한숨이 쉬어졌다. 그렇게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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