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 충분히 길었습니다.
유치원 방학으로 28일(금)에 휴가를 썼기에, 3월 3일 대체휴일까지 하면 제겐 4일의 연휴였습니다. 지난 추석, 설날 연휴를 생각하면 이게 뭐가 길까 싶지만, 그 전주까지 회사일로 소진된 체력을 생각하면, 이 4일도 충분히 긴 시간이었습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96시간을 아이와 함께 붙어 있으면서 제 인내력도 바닥이 드러났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ㅎㅎ
어제 아침엔 일어났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상쾌한지요.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고 밤새 푹 자서 그런지, 정말 컨디션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당근마켓에 원하던 물건이 저렴히 올라와서 득템까지 할 수 있었죠. 하루의 시작이 좋았습니다. 번아웃으로 인한 피로도 모두 풀린 듯한 느낌이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걸요. 착각이었나 봅니다. 하루 종일 아이와 투닥 거리게 되더니, 마침내 저녁 6시가 되어갈 무렵 즈음. 사건이 터졌네요. 어떤 사건이요? 한번 들어봐주시죠.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아이가 엄마와 아빠를 부릅니다.
"엄마~~ 같이 하자!"
"아빠~~ 같이 하자!"
혼자 좀 진득하게 그리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계속 불러댑니다.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더니, 그다음은 자기가 하는 걸 보라고 또 불러댑니다. 그림 그리는 하나하나를 보여주고 하지 말고, 스스로 그리고 싶은 걸 그려보라고 타일러 봅니다. 그랬더니 혼자 그리는 건 재미없다고 같이 그리자고 불러댑니다. 육아 독립, 참으로 어렵습니다.
읽고 있던 책을 다 읽고, 아이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저녁 무렵인데 달달한 커피가 당겨서, 믹스 커피 한 잔을 유리컵에 타서 갔죠. 아이가 혹시나 넘어뜨릴까 봐 조심히, 아이가 없는 쪽으로 컵을 놔뒀습니다. 심기일전해서 아이와 한번 재밌게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마음의 다짐도 하고요.
"아빠랑 해보자!"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이죠? 제가 곁에 가자, 좋다고 방방 뛰던 아들.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으면 좋았을 것을. 저의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커피잔을 바닥에 넘어뜨리고 맙니다.
하얀 매트 위를 덮는 갈색 액체의 향연. 제 왼쪽 종아리를 뜨겁게 적시는 그것. 화들짝 놀라 일어섰습니다. 넘어지는 컵을 잽싸게 잡아 다시 세웠지만, 바닥은 이미 난리가 났습니다.
"이게 뭐야!!!"
식탁에 앉아 있던 아내는 아직 이 사태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 번 더 소리를 치자 그제야 이 광경을 목격합니다. 스팀이 제대로 올라왔습니다. 커피는 매트 아래 나무 마루까지 흠뻑 적시고 있었습니다. 일단 수건 하나를 가져와 매트 위아래를 닦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자기가 친 사고에 쫄아서 가만히 있고, 아내가 와서 치우는 걸 돕습니다. 저는 바닥에 엎질러진 커피를 닦으면서도 화가 풀리지 않아 씩씩 거립니다. 이런 저를 보고 아내가 말을 겁니다.
"오빠, 운동 갔다 올래?"
운동하면서 마음을 좀 진정시키라는 의미겠죠. 아무래도 오늘 제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것 같다고 하네요.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커피를 담았던 컵을 보니, 커피가 절반 안되게 남아 있네요. 아깝습니다. 달달구리 커피가 먹고 싶었는데 말이죠.
남아 있는 커피를 쭈욱 들이키고, 집을 나서는데 마음이 좋지가 않습니다.
- 커피가 엎질러졌을 때, 아이에게 "괜찮아?" 하고 먼저 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아이가 데이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네가 다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면 더 좋았겠죠.
- "아빠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아이에게, "괜찮아. 너도 놀랐지? 조심하지 그랬어~" 하고 다정히 말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운동을 하러 나가는데 다가와 말을 거는 아이에게, "아빤 괜찮아. 운동 가서 건강해지고 올게!" 하고 얘기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커피는 엎질러졌지만, 아이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몸에 좋지도 않은 커피, 차라리 엎질러져서 적게 먹는 게 몸에도 더 좋았을 거구요. 순간 치밀어 오른 '화'라는 감정에 제 몸을 맡겨버린 까닭에, 후회가 이토록 짙게 찾아오네요.
가만 보면, 가족과 하는 일상의 패턴이 항상 이렇습니다. 별거 아닌 일로 화를 내고, 또 좋아 죽고, 그러다 또 화를 내고. 연휴같이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그렇습니다. 후회를 하면서도, 자꾸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네요.
다음번 비슷한 상황에서는 한 번쯤 '참을 인'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길 빌며, 반성의 글을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