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토요일, 드디어 여행 당일.
비행기 출발 시간은 저녁 10시였다. 휴일이었기에 이른 아침 비행기도 가능했지만 굳이 저녁 늦은 시간으로 잡았다. 여행 출발일이라고 너무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출발하고 싶었고, 출발 전까지는 아내와 아이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아이는 평소의 휴일과 같이 충분히 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리고 오후에는 미리 예매해 둔 '겨울왕국' 어린이 뮤지컬을 아내와 둘이 보고 왔다. 아빠와 둘만의 여행을 하기 전, 엄마와도 둘만의 데이트를 한 셈이다.
아내는 아이가 빵빵하게 가득 찬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대견함을 느끼는 동시에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국내면 모르겠는데 해외를 아빠와 둘이서만 일주일 넘게 여행한다는 사실이 막연한 불안함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 시작된 눈곱 감기 증상은 혹시 요즘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아데노 바이러스는 아닐까 걱정이었다. 또한 내가 어깨 통증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한다는 것에 또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이러한 걱정은 생각으로만 표정의 일부로만 남겨두고, 여행을 떠나는 우리를 온전히 응원해 주었다.
엄마와 단란하게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까. 드디어 저녁이 되고,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택시에 타자 마자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양쪽 눈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그러한 아이의 말을 듣자, 난감해졌다. 아이도 나와 같이 이 여행을 너무도 기다렸으니, 아주 신나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단다.
조금 속상하면서도, 걱정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상한 이유는 처음부터 신나게 시작하지 못함 때문이었고, '아이가 계속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적해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도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이가 엄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업무로 바쁜 시기와 아이의 겨울 방학이 겹친 까닭에 계획한 여행이었다. 아이 방학 때문에 아내가 바쁜 와중에 눈치 보며 휴가를 쓰고 주말도 제대로 쉬지 못할 수 있으니, 차라리 내가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자 싶었다. 그러면 아내가 평일에 야근을 하고 돌아오더라도 집에서 편히 쉴 수 있겠지 싶었다. 주말엔 오롯이 스스로를 위해 재충전을 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의미 있는 시기에 아이와 둘이 집을 비우는 것은,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을 들게 만들었다. 남겨진 아내가 홀로 외롭고 아쉬운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므로 아이가 둘만의 여행에 너무 신나 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출발하는 택시에서 아이가 "엄마가 보고 싶어" 라며 눈물짓는 모습이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은 함께 해야 가장 행복하다'라는 것을 아이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빌어 아내에게도 "OO이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대"라고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었으므로.
겨우 10여 분 만에 도착한 공항버스 정류장 대기 쉘터는 따뜻했다. 매끈한 목재 의자, 그리고 그 위에 설치된 무선 충전기까지. 10년 전 공항버스 탈 때와는 상전벽해다. 환경이 너무나 좋아졌다.
아이는 의자에 설치된 무선 충전기를 보고 내게 휴대폰을 충전하라고 연신 권유했다. 하지만 그러다 휴대폰을 두고 가면 여행의 시작부터 당황스러울 것 같아, 완곡히 거절했다. 나는 이제 서서히 긴장이 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 곧, 아이와 둘만의 긴 여행이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공항버스를 기다리는데 두근두근 가슴이 떨려왔다. 정말 둘이서만 여행하는구나 싶어서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여권은 잘 챙겼나, 지갑은 있나, 두고 온 건 없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엄마 보고 싶다며 울상을 짓던 아이는 금세 기분 전환을 하고,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아이가 참 작아서 아기 같아 보였다. 이 작고 연약한 체구를 보고 있자니, 내 배낭은 이미 가득 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짐을 조금이라도 더 내 배낭에 넣었어야 했나 싶기도 했다. 키 120도 안 되는 작은 아이가, 과연 하루 종일 이 가방을 메고 다닐 수 있을까. 하고. 부모의 마음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2024년 말 단 며칠 앞두고, 아이와 단 둘 만의 대만 여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