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비행기 출발 지연이었다.
원래는 저녁 10시 35분발 비행기였다. 그런데 지금 확인한 휴대폰 화면 안에서는, 저녁 10시 35분이라고 표기된 글자에 취소선이 그어지고, 그 아래 변경된 시각이 적혀 있었다. 새벽 02시 20분이라고.
'어?????'
말 그대로 눈동자가 사정 없이 흔들렸다.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여유있게 도착하자고 일찌감치 버스를 타고 출발 4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비행기 타는 시간이 4시간이나 더 뒤로 밀렸다. 즉, 공항에서 8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항공사에서 조금만 더 일찍 알려줬다면, 차라리 집에서 시간을 더 보내다 나왔을 텐데, 이미 공항에 도착한 뒤였다.
현실을 믿기 어려웠다. 8시간 동안 아이와 뭘 해야 하나 상상도 가질 않았다.
아내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머리가 멈춰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면 조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큰일났어. 비행기 지연됐어!"
"뭐?? 어떡해..."
황망한 통화 끝에, 일단은 수하물 체크인부터 하기로 했다. 무거운 배낭을 계속 이끌고 다니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먼저 아이와 내 패딩을 큼직한 파우치 안에 넣어 압축을 시키고,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처음 개봉하는 오스프리 에어 커버(배낭을 위탁 수하물로 보내기 위해 씌우는 커버)를 꺼내어 배낭을 그 안에 넣었다. 이 황당한 상황 속에서도, 배낭을 수하물로 보내기 위해 패킹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비보가 날아들 줄이야. 가뜩이나 늦은 저녁 비행기인데, 4시간여의 지연 소식은 나를 절망케 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고 있으면 아이도 불안할 터였다. 애써 태연한 얼굴로 “잊지 못할 여행이 되겠다! 그래서 더 좋다!” 를 반복해서 아이에게 말했다. 이 말은 나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내 스스로 주문처럼 되뇌여서 정말 그렇게 믿고 싶었다.
곧 스쿠트 항공의 체크인 카운터가 열렸다. 비행기가 지연됐지만 카운터라도 제 시간에 열리는 건 다행이었다. 카운터마저도 늦게 열린다면 더 멘붕이었을 것이었다. 수하물 체크인을 하고 나자, 항공사에서는 지연에 대한 보상으로 밀 쿠폰(Meal Coupon)을 주었다. 1만원권 2장이었다. 인천 공항 내부 음식점에서 쓸 수 있다고 했다.
'저녁은 어차피 라운지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공짜로 얻은 쿠폰인데, 별로 고맙지도 않았다.
'빨리 비행기나 타게 해주지...'
그래봤자 현실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 사이 아내와 한번 더 통화를 했다.
"오빠, 거기 지하에 찜질방 있어. 우리 신혼 여행 갈 때도 거기 갔었어. 찜질방에서 쉬다가 가."
좋은 아이디어였다. 마침 나도 검색하다 보니, 찜질방을 추천해주는 블로그가 있어서 혹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내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마침 항공사에서 준 밀 쿠폰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필요도 없는 걸 준다고 불평하고 있었는데 금세 마음이 바뀌었다. 이거라도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출국장 윗층인 4층으로 올라가,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너무나 여유로워서, 아이가 밥을 천천히 먹어도 재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 얼마든지 천천히 먹어라.'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식사 시간 중에 너그러운 아빠가 될 수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찜질방에 가기 위해서였다. 신혼여행 때 이후로 처음이니 무려 11년만었다. 우리 앞에는 여자분 한분이 결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분이에요?"
사장님이 질문하시자, 그 여자분과 내가 모두 당황했다.
"가족 아니에요?"
고개를 급히 흔들었다.
"아뇨 따로 왔어요~"
아이와 둘만 왔더니 이런 오해도 받는다.
그리고 입장을 하는데 이게 왠 걸. 원래 이 찜질방이 이런 곳이었나. 10년 하고 6개월 만에 방문한 공항 찜질방의 모습은 예전의 내 기억과는 많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