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제 1터미널 지하 1층엔 찜질방이 있다. 공항에 왠 찜질방이냐 싶겠지만, 한밤 중이나 새벽에 도착하거나 출국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당연히 있어야 하는 곳이었다. 10년 전에도 있었던 그곳은, 코로나 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기 있었다.
이용료를 결제하고 아이와 함께 찜질방에 들어섰다.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니, 좁은 복도의 왼쪽은 탕으로 들어가는 입구고 정면은 찜질방이었다. 뜨끈한 탕에 들어가 몸을 담그면 좋겠다는 마음이 불쑥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아이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긴, 몇시간 안 있을 건데, 옷 벗고 씻고 하다 보면 쉴 시간도 얼마 없을 것이었다. 그냥 찜질방에서 쉬다가 가는게 나았다.
카드키를 게이트 인식부에 대고, 찜질방으로 입장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찜질방이 뭐 이래?'
약 2미터 남짓한 좁고 긴 매트들이 찜질방 공용 공간 전체에, 오와 열을 맞춰서 빈틈 없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빈자리도 별로 없이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매트와 매트 사이의 공간과 통행할 수 있는 좁은 공간 외에는 여유 공간이 하나도 없는 거대한 개미굴 같은 모습이었다. 조금만 뒤척여도 옆 사람 팔을 건드릴 것 처럼 가까이 붙어서. 영화 매트릭스가 문득 떠올랐다. 누워 있는 사람들이, 마치 거대한 기계에 전원을 공급하는 건전지 같아 보였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들어서는 순간 말을 잃었다. 그곳에는 오로지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누워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깨어 있는 사람은 입을 꾹 닫고 휴대폰 액정 불빛만 얼굴에 비추고 있었다. 우리 아이보다 어려 보이는 4-5살의 아이 조차, 누워 있는 엄마 옆에서 휴대폰을 들고 게임을 하는지 영상을 보는지 모를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문득 아이가 물었다.
"아빠, 왜 찜질방에서 찜질을 안해?"
그건 나조차도 궁금한 참이었다. 동네의 찜질방이었다면, 지금 이시간엔 TV가 밝게 켜져 있고 그 주위로 도란 도란 모여서 수다를 떨어대는 모습이 보여야 했다. 찜질방 안 식당에서 돈까스와 식혜를 먹는 사람도 있어야 했다. 뜨거운 찜질방 문은 열릴 때마다 후끈한 열기가 밖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그런데 이곳은 적막 만이 흘렀다. 찜질방 역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기대했던 찜질방 모습이 아니어서 나 조차 당황한 참이었다.
입구 근처에 빈 매트 두개가 있길래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보았다. 반팔 반바지 인 채로 누웠더니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래서 입구에서 이불 대용 커다란 수건을 유료로 대여해주고 있었나 보다. 그래도 적응하면 괜찮겠지 하며 딱딱한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워 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의아한 눈치다. 소곤소곤 나에게 자꾸만 물어왔다.
"아빠, 여긴 왜 사람들이 누워만 있어?"
"피곤해서 그래"
"찜질방에서 왜 찜질을 안해?"
"피곤해서 그래"
"아빠, 아빠~~"
"......"
몇번 대답해주다보니 졸음이 밀려 온다. 그 와중에 아이는 계속 나를 불렀다. 밀려오는 수마에, 결국 인상을 쓰며 작게 아이에게 외쳤다.
"자!!"
동시에 후회했다.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 시작부터 화를 내게 될 줄이야. 즐거운 여행을 위해, 아이의 마음을 많이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겠다고 분명 다짐하고 왔거늘...
미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대답은 쉬이 친절해지지 못했다. 갑작스런 연착 소식에 우왕 좌왕 하다 보니 피곤했었나 보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있자,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저 잠이 몰려 왔다. 말소리도 크게 내면 안될 이 고요함 속에서, 아이는 가만히 있는게 힘든지 연신 아빠를 불러댔고, 그러다 지쳐 잠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고, 아이는 잠든 채로 내가 먼저 깼다. 결국 지쳐서 매트 위에 이불도 없이 엎드려 잠이 들어버린 아이를 보고 있자니 미안하고, 또 항공사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든다. 시계를 보니, 아직도 탑승 시간까지는 한참이 남아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애써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를 써본다.
이미 벌어진 일, 어찌 할까. 이 또한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지' 하고 다시 주문을 외워보았다. 이처럼 우리의 여행은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강렬한 추억을 하나 쌓으며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