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새벽으로 무르익고, 보딩 하러 갈 시간은 조금씩 다가왔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찜질복으로 갈아입은 탓에, 다시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하면 또 시간이 꽤 소요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외출, 혹은 여행은 항상 그렇다. 성인의 준비 시간으로 계획을 세우면 안 된다. 그보다 세배 아니 네 배도 더 걸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가끔 아이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준비를 마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괜히 집에서 뭉그적거리지 말고 재빨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 계획했던 출발 시간보다 이른 시간이더라도. 그렇지 않으면, 아이의 마음이 또 변하여, "나가자", "싫어 조금만 더 놀래" 하며 결국엔 늦게 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의 귀에 대고 "비행기 타러 가자"라고 귀에 속삭였다. 아이가 잠에 취해 못 일어날까 봐 걱정했지만, 신기하게도 벌떡 일어났다. 조금의 미적거림도 없이, 조금의 짜증도 없이. 말 그대로 벌떡 일어났다. 마법 같은 일이다.
금세 말똥말똥 해진 아이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신기했다. 여행이란 그런 걸까. 시작부터 너무 설레는 것.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었다. 목이 마르다며 찜질방 안에 설치된 정수기에 가서 물을 먹는 모습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따봉이(아이의 배낭 이름)를 참 잘도 메고 다니는구나.
찜질방에서 나와 3층 출국장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출국장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요즘 인천공항에 사람이 몰려서, 출국 수속에만 4시간이 걸렸다는 글도 보았었는데 한산하다. 아마도 새벽이라서 그런 거겠지.
우리는 만 7세 미만의 아이와 동행 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약자 우대 출구로 입장했다. 그런데 입장하고 보니, 일반 출구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은 대면 심사를 해야 해서, 일반 출구로 입장한 사람들이 더 빠르게 수속을 마치고 면세장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었다. 뭐가 됐든 출국 수속이 빠르니 좋아해야 할 텐데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손해 본 기분이다. 이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나 보다.
순식간에 출국 수속을 마친 후 탑승 게이트로 향하니,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서고 있었다. 너무 빨리 도착해서, 탑승구 앞에서 오래 기다리는 건 아닐까 했었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다.
아이 손을 잡고 줄을 서 있는데, 아이 눈이 반쯤 감겨 있는 게 보였다. 비행기 타러 가자는 말에 신나서 잠이 깨긴 했지만, 역시 새벽 시간이라 힘들었던 모양이다. 서 있기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이럴 때, 쫙 펴서 앉을 수 있는 휴대용 의자가 있으면 딱인데!'
자동차 트렁크에 던져둔 접이식 휴대용 의자를 가져왔으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본다. 아니다, 아무리 가벼운 플라스틱이라 하더라도 여행 내내 크고 무거워서 짐이 되었을 게 뻔했다.
대신 내가 메고 있던 배낭을 바닥에 깔아주고, 그 위에 앉아서 기다리게 했다. 줄이 조금씩 줄어들 때마다, 내 가방을 발로 살짝살짝 앞으로 밀어가며 위치 조정을 해주니 잘도 앉아 있는다. 하지만 여전히 눈은 반쯤 감긴 상태. 아이의 입에서 '힘들다'는 말은 이미 한참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얼른 이 줄이 줄어들기 만을 바랄 뿐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났다. 마침내 탑승 게이트를 통과하여, 노란 색 스쿠트 항공 비행기를 만날 수 있었다. 비행기를 배경으로 아이와 함께 셀카를 찍어 보는데, 아이가 피곤해 보인단 말을 할 때가 아니다. 내 얼굴도 만만치 않게 피곤으로 덮여 있다. 우리 이 여행 잘 다녀올 수 있겠지?
드디어 앉은 비행기 좌석에서, 아이는 피카추 인형을 꺼내더니 안전벨트를 제 몸과 함께 맸다. 푸하하. 그 모습이 귀여워 빵 터지고 말았다. 그렇지, 피카추도 안전벨트 해야지.
어렸을 때부터 아이와 차를 오래 타고 다니며 안전벨트를 강조했더니, 어딜 가든 안전벨트를 꼭 챙긴다. 그러고 이제는 인형에게까지 안전벨트를. 그래 네가 우리 집 안전 지킴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선, 아이의 둘도 없는 애착인형(라이언 바디필로우)를 집에 두고 왔다. 인형이 너무 커서 배낭여행엔 맞지 않다고 설득을 했는데, 용케 동의해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타협한 것이 주먹 두 개만 한 피카추 인형.
피카추야, 일주일 여행하는 동안 우리 아이를 네가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
※ 교통약자 출국 우대 서비스란?
인천공항에서는 '교통약자 출국 우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만 70세 이상, 만 7세 미만, 장애인, 임산부, 병약 승객, 사회적 기여자에 대하여 별도의 우대 출구와 빠른 출국 수속을 제공하는 서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