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꿈, 아들이 해줄 수 있는 일
보고 싶은 아버지께
아버지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젠 아프신 데는 없이 행복하신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큰 탈 없이 잘 계시고, 누나들도 잘 지내며, 저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잘 지내고 있는 건 다 아버지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매일 감사합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13년이 지났습니다. 저도 철없던 20대에서 이제는 불혹이라 하는 40대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무뚝뚝하고 엄하다고만 생각하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를 먹으니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삶과 왜 그런 성격을 보이셨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지금은 30대 후반이나 40대에도 아이를 낳는 게 보편화되었지만 제가 태어날 당시에는 40대에 아이를 낳는 것이 흔치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저는 딸만 있던 아버지한테 늦둥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그때 당시를 알지 못하지만 자라면서 아버지께서 엄청 좋아하셨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딸만 있는 가정에 그토록 바라던 늦둥이 아들이 태어났으니 주변 사람들은 엄청 이쁨 받고 귀하게 자랐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자라면서 버릇이 없다는 얘기를 안 듣게 하려고 엄하고 강하게 키우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아버지가 날 싫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습니다.
다른 부모님들은 다정다감하신데 왜 아버지는 이쁨을 안 주실까 생각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다니던 오락실에 다니던 것도, 어른들께 인사하는 걸 한 번이라도 지나치는 걸 볼 때도 심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행동 하나하나 혼만 내시는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제가 크면 꼭 여쭤보고 싶었는데 결국 여쭤보지 못했습니다.
학창 시절 아버지께 칭찬을 듣고 싶어 공부도 열심히 해봤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성적이 좋아 칭찬받으려 자랑하면 무덤덤하게 넘기셨던 아버지였습니다. 저는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응 없으신 아버지를 보면서 미움이 더 커졌습니다.
이후 군대를 갈 나이가 되었을때, 아버지께서는 대학 졸업까지 지원해 주려면 군대를 일찍 가야 된다고 강요하였습니다. 그 당시 별생각이 없어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가장 빠른 입대를 할 수 있는 의경에 자원입대하였습니다. 힘들 거라 생각 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몇 배 더 힘들었습니다.
훈련소, 경찰학교 각 한 달씩 생활한 후, 서울 한 경찰서에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군 생활하면서 부모님 생각이 참 많이 났습니다. 그때 마침 아버지랑 어머니께서 면회를 오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훈련과 근무로 인해 면회를 하지 못했습니다. 면회 취소 소식에 절망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근처에 주무시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면회를 신청하셔서 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면회 당시 기쁠 줄 알았는데 아버지, 어머니께서 지리도 잘 모르시는 서울을 아들 하나 보려고 이틀이나 시간을 보내셨다는 생각에 슬프면서 죄송했습니다. 비록 긴 시간 면회는 아니었지만 그날은 남은 군 생활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군대를 무탈하게 제대하였습니다.
학교를 복학하고 바로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부모님께 얘기했습니다. 쉽지 않은 형편이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저를 믿고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공무원을 합격하기 위해 서울 노량진으로 상경해서 3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3년의 시간을 투자했지만 결국 불합격하여 다시 본가로 내려갔지요. 그때 또 한 번 죄송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공무원 준비를 포기하고 학교에 복학해서 취업을 준비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열심히 준비히 준비했습니다. 마음 잡고 자격증, 토익시험에 몰두하던 중 갑자기 큰 불행이 닥쳤습니다. 그건 바로 아버지의 직장암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누구보다 건강하시고, 쇠 말둑처럼 강인한 아버지였기에 암이란 병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똘똘 뭉쳐 암을 치료하려 노력 했습니다. 하지만 2년만에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병원 투병생활 중 저는 평생 용서 받지 못할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투병 중 수술과 치료로 지치셨고 자신의 결말을 예감하셨는지 가족에게 갑자기 모질게 대하셨습니다. 특히 어머니께 심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순간 화가나 나쁜말을 했습니다. ‘‘이러실 거면 차라리 살아계실 때 어머니랑 이혼해 주세요.” 그땐 어머니가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이후 후회하고 또 용서를 구하려 했을 때는 아버지께서는 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으신 어머니를 보필해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 취업을 하였습니다. 취업 때문에 다시 서울에 상경해 사회 생활을 하면서 40대가 된 지금에서야 아버지가 살아오신 삶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생활만으로도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살아계실때 가족들을 책임지고, 힘든 일을 하시면서도 불평불만 하지 않는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도 사람인지라 힘드셨을텐데 어떻게 버티셨는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분명 아버지도 꿈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셨을텐데 포기하고 사신 삶을 어릴때 이해 못한 점 참으로 죄송합니다.
문득 투병 중일때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죽기전에 내가 살아온 삶을 책으로 출판하고 싶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보다는 나 이렇게 열심히 잘 살아왔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그 이후부터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기 전 아버지께서 하고 싶으셨던 꿈, 그것을 제가 해드리고 싶습니다.
살아 계셨을때 직접 하셨으면 좋았겠지만 아들인 제가 대신 해 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를 뵈었을때 제가 했던 말과 행동을 사죄하면서 선물로 아버지 책을 드리고 싶습니다. 꼭 그런날이 올 수 있도록 제가 열심히 글을 쓰겠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한 날 중 가장 돌아가고 싶은 날이있습니다. 제가 스무살 성인이 된 후, 집에서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버너에 삼겹살을 구워 주시면서 소주를 따라 주시던 그날입니다. 40대가 된 지금도 종종 생각납니다. 많은 기억 중 그때가 생각나는 거 보니 가장 좋았던 날이 었나 봅니다. 다음에 뵙게 되면 그때처럼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항상 행복하세요.
2025년 11월 어느날 아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