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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Oct 21. 2023

[안나의 습작노트] 8. 체증


 체증



 어느 월요일. 평소 출근시간에 맞춰 나간 대근 (남, 36)은 끝도 없이 이어진 광역버스 줄에 경악한다. 승객을 가득 채운 버스가 25분 간격으로 3대 지나가고 마침내 4번째 버스에 겨우 올라탄 대근. 대근이 지도 앱을 켜고 집에서 회사까지의 소요시간을 끊임없이 새로고침 해보지만, 도착예정시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근은 정식(남, 46)에게 ‘팀장님 근처에 사고가 나서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카톡을 쓴다. 긴장했는지 계속 오타를 내는 대근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정식과의 카톡방을 1분마다 열어 확인하는 대근. 마침내 사라진 ‘1’ 표시. 하지만 정식은 답이 없다.

 

 다음날 평소보다 1시간 더 일찍 나온 대근. 모두들 대근과 같은 생각이었던 건지, 여전히 길게 늘어선 광역버스 줄. 대근은 초조한 표정으로 코트를 여미며, 요 며칠 입주가 시작된 초대단지 신축 아파트를 노려본다. 간당간당 하게 3번째 버스에 올라탄 대근은 자리에 앉자마자 지도앱으로 회사까지의 소요시간을 확인하고, 출근 시간까지 20분 정도 여유가 있는 것을 보고 안도한다. 그새 골아떨어진 대근의 머리가 사방으로 상모를 돌리듯 돈다.


 그리고 ‘쾅’.


 옆차선에서 무리하게 끼어든 화물차와 접촉사고가 난 대근의 버스. ‘쿠허하헣헣’ 맹수 같은 소리를 내며 까무러치듯 일어나는 대근. 사태를 파악한 대근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정식과의 카톡창을 연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대근의 목이 사선으로 삐끗, 돌아가 있다. 대근 뒤 창밖으로 보이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삿대질을 하고 있는 버스기사와 아수라장이 된 도로.

 

 다시 다음날, 어제처럼 1시간 더 일찍 나온 대근. 대근이 3번째 버스에 올라타려는 순간. 버스기사가 대근을 제지한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버스기사를 올려다보는 대근.

 

 “자리 없어요. 다음 거 타세요.”

 “저 서서 가도 돼요. 제발 태워 주시면 안 될까요?”


 애걸하는 대근에게 버스기사는 대답도 없이 입석금지 표시판을 턱끝으로 가리키고 문을 닫는다. 대근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탄 마지막 승객의 안도한 옆모습이, 버스 밖 망연자실한 표정의 대근을 빠르게 스쳐간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택시 앱을 켜서 목적지에 회사명을 쓰는 대근. 총액 6만 3천 원. 출근 시간이라 평소보다 더 비싼 택시비에 흠칫 놀라, 지도앱을 켜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만 뾰쪽한 수가 없다. 결국 택시 호출을 누르는 대근.


 ‘근처에 가능한 택시가 없습니다.’


 빌어먹을. 대근을 농락하는 야속한 알림 창. 같은 알림창이 3번 뜬 후에야 대근은 결국 만원 더 비싼 프리미엄 택시 옵션을 선택한다. 0.1초도 안돼서 택시가 바로 잡힌다. 허겁지겁 다이빙하듯 올라탄 택시....... 하지만 대근의 기대와 달리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택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차창 밖 광역버스가 쌩쌩 달리는 버스전용도로를 바라보며, 택시 뒷좌석의 대근은 몸도 뒤로 기대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한다.


 결국 5분 늦게 회사에 도착한 대근. 대근이 자리에 앉고 10분 뒤, 정식으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한다. 3일 연속 지각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함께, 한 번 더 지각하면 징계처분 하겠다는 이메일. 참조란에는 보란 듯이 모든 팀원과, 과장님, 부장님 그리고 인사팀까지 걸려있다.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대근. 10년 동안 지각, 결근 한번 하지 않았던 '성실함'이 주특기인 대근은 의기소침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광역 버스 안. 회사 근처 찜질방과 모텔을 검색해 보는 대근. 찝찝한 표정으로 폰을 화면을 끄고 손을 내린다. 잠시 후 다시 핸드폰을 들어 검색창에 중고차 시세를 검색하는 대근. 곧 착잡한 표정으로 회사 근처 집값을 검색창에 쓰다 말고 폰 화면을 끄고 손을 내린다. 구직/이직 앱을 켜 일자리를 둘러보던 대근은 어느새 몇 달 전에 부모님 지인이 권리금만 받고 넘기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던 카페 리뷰를 읽고 있다. 별점 4.8점에 긍정적인 리뷰들.


 집 앞 정류장에 내려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대근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낡은 아파트 공동 현관으로 들어가 좁은 복도 끝에 하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대근. 각종 전단이 덕지덕지 붙여진 좌우거울이 끝도 없이 반사되어 있다. 그 반사된 수십 개의 거울 안에 나타나는 수십 명의 대근. 대근이 거울 제일 끝의 자신의 찾으려 눈을 찌푸려보지만, 찾을 수 없다.


 띠띠띠띠-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현관 센서등이 확 켜진다.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대근 주위로 하나 둘 다가와 몸을 부비는 3마리의 고양이들. 대근은 그제야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양이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어루만져준다.


 씻으러 들어가기 전에 어제 맞춘 알람보다 1시간 더 일찍 알람을 맞추는 대근. 대근이 화장실에 들어가고, 곧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탁자 위 시계는 저녁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2023.10.20

Photo l © Olivier Vogel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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