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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n Sep 12. 2019

경제가 민주와 공화를 만나면?

최근 협동조합을 또 하나 설립하는데 참여하게 되었다. 어떤 분들은 골치 아프게 협동조합을 설립하지 말고 일반 법인을 설립해 사업하기를 권유한다. 수익을 목적으로 한 영리한 사업가라면 그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 손실을 최소화하고, 같은 투자라면 더 나은 기대수익을 선택하고 싶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본주의 시장 안에서 경제적 승자가 되는 원리는 그러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농협’은 생산자 협동조합이다. 개별 농민은 소생산자로서 경제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기에 서로 협력하여 생산자로서 더 큰 힘을 갖고자 설립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성장한 대기업에 대항하기 위해 상호부조를 직접 목적으로 설립된 유럽의 협동조합처럼 약자가 거대 자본과 맞서 경쟁하며 생존하기 위한 연대의 방안인 셈이다.

농협은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협동조합의 예로 들면,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협동조합은 일반 법인처럼 출자금에 따른 ‘1주 1 표제’가 아니라 ‘1인 1 표제’ 의사결정구조로 조합원 모두가 평등한 의결권을 가지고서 외부 간섭 없이 조합원 자율에 맡겨 운영된다. 단 조합의 잉여금 배분은 원칙적으로 이용도에 비례하여 행한다.

경제영역에 민주적인 가치가 적용되어 아무 차별 없이 동등한 권리로 개방적이고 자유롭게 조합원들의 경제적 참여가 이뤄지므로 평등, 수평적인 정보의 공유, 교육, 협력 등이 전제된다. 더 나아가 사회적 기여를 협동조합의 원칙으로 삼아 경제영역에 민주주의 가치와 공공선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자연히 의사수렴 과정은 시끄럽고 오래 걸리기도 해서 일반적인 영리법인보다 사업 진행에 덜 효율적이고 불리한 면이 있다. 대외적으로 사업 파트너로서 신용이 그리 높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하다.

조합 활동을 해보면 늘 일하는 사람들만 일한다고 제각각 불만이 높다. 종국은 권리는 누리고 싶으나 책임은 나누기 싫어 서로 눈치 보며 볼멘소리하다가 해체되는 수순을 밟기 일쑤다. 비교적 가치지향적이고 사회적 연대의식이 높다는 출판계에서도 자본의 논리 하에 위협받는 생존을 위해 협동조합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잦았다. 주관이 뚜렷한 개체들이 합의를 모으는 과정도 어렵거니와 또 이들조차 숫자 앞에서 드러나는 생계와 직결된 이기심으로 의무를 회피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 설립하는 조합은 기능적인 측면보다 지향점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래 함께 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1년 이상의 지난한 시간을 보낸 후 마지막까지 남은 최소의 인원으로 비로소 협동조합을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조합원들은 각각 자신의 사업영역에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 급한 일에 치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은 알지만 지금 당장 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일을 등한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향후에 그 일은 돌이키기 어려운 시급한 일로 다가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너무 늦었다 후회하지 않도록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특히 조합원 모두가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크고 교육이 비단 학교에서만 이뤄지지 않음을 알기에 동참해 고민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즉 포괄적인 의미의 교육이 문화임을 이해한다. 누군가의 기회비용과 수고로움이 참여하는 생활문화 속에 교양과 품격을 갖춘 문화공동체로서 우리 모두가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길로 나아가는 작은 한걸음임을 믿는다.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맥락 있는 문화콘텐츠 플랫폼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에 동의하고 조합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기여할지 주위를 돌아본다. 경영적 접근에 앞서 자본주의 시장에서 그 가치가 훼손되고 평가절하 된, 소비되기 위해 본질을 잃고 왜곡된 각종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인건비 경쟁에만 치중하지 않고 본질에 충실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뭔가가 필요하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체계를 갖춘 더 나은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도록 이들의 콘텐츠 생산이 지속 가능한 기반 위에서 성장하기를 바란다.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등. 요즘 말하는 소득주도 성장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몇 년의 짧은 경험이 전부다. 그럼에도 실패 운운하며 승자 지배구조로 회귀하기를 종용한다. 그 목소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는 아주 느린 걸음걸이를 기꺼이 선택했다. 모두가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 느린 걸음에 우리의 믿음을 퇴색시키지 말고 무엇보다 모두가 지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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