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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만소리 Nov 27. 2017

라이프 체인지 스위치

세계 여행하며 출간하기 3




 세계 여행 한 달째, 친구들이 물었다.

“너 아직도 방콕이야?”


세계 여행 두 달째, 친구들이 또 물었다.

“언제까지 태국에 있을 거야?”


세계 여행 세 달 째, 친구들이 체념했다.

“세계 여행 간 거 맞지?”



친구들아, 나도 모르겠어. 나도 내가 세계 여행을 간 것인지 일을 하러 태국에 온 것이지 정말 혼란스럽단다. 누가 알았겠니. 배낭을 메고 호기롭게 떠난 자유로운 세계 여행자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버릴 줄. 



길리 아이르 섬의 흔한 풍경. 바다를 앞에 두고 왜 놀지를 못하니... 왜...



여행을 떠나기 전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나의 상상은 이랬다. 야자수 나무 아래 테이블에서 여유롭게 노트북을 꺼내고, 망고를 듬뿍 갈아 만든 주스와 브런치를 주문한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면서 행복함을 만끽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 돈 만 원 언저리.  막상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보니 나의 상상엔 많은 오류들이 있었다. 


1. 야자수 나무 아래 테이블에서 작업 > 노트북에 전기를 얻어올 수 없음  

2.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며 >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그런 명당자리엔 인터넷님이 도달하지 못하심. 

3. 행복함을 만끽 >이런 풍경을 눈앞에 두고도 일해야 하는 절망감을 만끽

 4. 이 모든 것들이 만 원도 안돼요 > 생활 물가를 한 번 알면 관광지에서 손 떨려서 못 사 먹음.


테이블 어디든 소켓이 있는 곳은 한국이 최고. 여기에 있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 뿐이니 일하려는 자 노트북을 들고 훠이훠이 멀리 떠나라.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출근 완료.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어휴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 중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여행자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출간 작업 중이던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를 마감하기 전까지 나의 여행, 아니 생활 패턴은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수영장과 헬스장에서 간단한 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고 레지던스 내 도서관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도서관 마감 시간인 9시가 되면 나도 집으로 퇴근을 했다. 


이런 패턴으로 살다 보니 일주일에 사흘이나 밖에 나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커피나 간식거리는 미리 사다 두었고, 저녁도 5분 거리에 위치한 동네 포차와 식당에서 사 오곤 했다. 레지던스가 밀집된 지역이라 저녁 6시만 되면 거리에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찼다. 치킨 튀기는 고소한 기름내, 로띠를 만드는 아줌마의 손놀림, 쏨땀을 야무지게 무치는 아저씨까지. 가성비 최고의 레지던스, 작업 능률 200% 올려주는 도서관 책상, 시내에 나가지 않아도 배 채울 수 있는 동네 맛집들. 이 모든 것들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넌 일만 해, 다른 건 우리가 책임진다!”


왜 태국에 디지털 노마드들이 모이는 지 알 것 같다. 서울의 핫 플레이스를 옮겨놓은 것 같은 이 곳엔 노트북을 들고 각자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서울 스멜



 최고의 연봉과 복리후생을 가진 회사에서도 퇴사자가 나오는 것처럼, 나 역시 일하기 완벽한 레지던스 동네를 탈출하고 싶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 주어져도 ‘일 하기 싫어!!!’ 마음을 피할 길이 없었다. 만약 내가 떠도는 삶에 지쳐 규칙적이고 제한적인 삶을 그리워했다면, 세계 여행하면서 책 출간하는 작업을 정말 행복하게 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초보 세계 여행러였고, 하루를 흥청망청 써버리는 망나니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세계 여행을 통해 자아실현이니, 새로운 꿈같은 건 솔직히 관심 없었다. 내 나이 앞에 ‘3’이라는 숫자가 붙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나는 얼마 남지 않은 팔팔한 내 젊음을 써버리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나의 30대의 시간은 잘도 흐르는데, 나는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러니 내가 마음 잡고 책상에 앉아서 작업을 하겠어요? 못 하겠어요?



아니 솔직히 이런 풍경이 눈 앞에 있는데 일이 손에 잡히냐구요. 숙제를 미루고 노는 아이처럼 내 마음 속에 늘 불안감과 조급함 그리고 죄책감이 내 여행을 짓누르고 있었다.




 평생 꿈꿔온 출간과 세계 여행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축복과 행복인데, 왜 나는 이토록 힘든 것일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질문의 답은 질문 속에 있었다. 


 ‘동시에 하려고 하니까 힘든 거야.’


 애초부터 세계 여행자와 디지털 노마드는 함께 걸을 수 없는 길이었다. 안 되는 걸 붙잡고 있으니 시간만 축내고 마음은 콩밭을 헤매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 두 가지 답에 속하는 사람이 아닌데, 자꾸만 둘 중에 하나를 택하려니 골이 아팠다. 때론 질문 자체가 틀릴 수도 있는데 내 답이 틀린 줄 알고 끙끙댄 꼴이었다. 질문에 얽매이지 않고 내 답을 적기로 했다



당신은 세계 여행가인 가요, 디지털 노마드인가?


둘 다 아니에요. 아니 못해요. 저는 그냥 3일 글을 쓰고, 4일 여행하는 키만소리입니다.

세계 여행가도 디지털 노마드도 아닙니다. 세계 여행 가라고 말하기엔 관광지도 아닌 이상하고 조용한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고 심지어 잘 움직이지도 않아요. 한 번 머물면 한 달씩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니 여행 가라고 말하기도 뭐하네요. 또 디지털 노마드라기엔 일도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아요. 그저 3일 동안 마음에 드는 책상에 앉아 그림과 글을 쓰고, 남은 4일의 주말을 즐깁니다. 아직 저처럼 여행하고 혹은 살아가는 사람을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하나는 알 것 같아요. 이렇게 사는 것이 절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요.



 다른 디지털 노마드들은 어떻게 일하는 삶과 여행하는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밸런스를 맞추는데 실패했고, 이도 저도 아닌 결과에 이르렀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래서 난 나만의 라이프 스위치를 만들기로 했다. 3일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4일 동안 디지털 노마드 삶의 스위치를 꺼버린다. 여행이 끝나면 다시 스위치를 켠다. 말장난 같은 이 마인드 컨트롤은 내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해변을 앞에 두고 일하는 내 삶에 대해서 불평하고 후회했던 지난 나과 달리 이 스위치 하나로 나는 즐거운 마음을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노마드 스위치 오프! 여행 라이프 스위치 온! 오늘 밤 아무도 나 말리지마.



누군가 그랬다. 평일이 있기에 주말이 더 행복한 거라고. 나에게 3일의 평일이 있기에 4일의 주말이 행복하다. 3일 일하고 4일 여행하는 지금의 삶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다. 때론 4일 일하고 3일 여행하기도 하고, 7일을 여행하고 7일을 일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서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동시에 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여행 라이프와 일하는 라이프의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수는 없지만 그 덕분에 남들보다 천천히 여행을 음미해간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처럼 많은 돈을 벌지 못하지만 상관없다. 돈을 쓰지 않고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으니까. 이도 저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 여행하는 것, 일하는 것이 좋다.


기간을 정해놓고 빠르게 세계를 도는 것도 맞는 방법이고, 우리처럼 기약 없이 일과 여행을 병행하며 천천히 동네를 걷는 것도 맞는 방법이다. 누군가는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건 그 사람의 답이고, 나는 나만의 답을 찾아가면 되니까.



오늘도 배낭 메고 출근합니다.


나만의 라이프 밸런스를 찾아가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6개월 동안 디지털 노마드와 여행자 사이에서 방황하며 작업한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책이 전국 서점에 깔리고서야 라이프 체인지 스위치 사용 방법을 득도(?)했달까. 글은 번질나게 썼지만, 정말 찌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지금부터 나의 찌질의 역사는 끝이다. 찌질했던 6개월을 거름 삼아 나는 이제 이 스위치를 제대로 써볼 생각이다.



어떻게 쓸 생각 이냐 하면은,


엄마와 여행 다음으로 남편과 여행이다! 본격적으로 가족 팔아 글쓰는 작가의 길을 걸어보겠습니다. 하핫.


3일동안  키만과 효밥의 세계 여행 이야기를 그리고 쓰고 (꿀잼 예약!)

4일동안 헬프엑스를 이용한 슬로우 여행을 할 예정이라죠? (꿀팁 예약!!)

>이미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 중이며, 

여행 사진은 @kiman 인스타에서 보실 수 있어요.


부지런히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브런치를 통해 연재를 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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