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만소리 Nov 04. 2017

나의 작업실은 어디인가

세계 여행하면서 출간하기 2


 세계 여행을 하면서 책 출간 작업이라니.
 말만 들으면 정말 멋진 삶이다.




하지만 어느 삶이든 고민과 걱정은 동반되었고, 나의 고민과 걱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노트북과 타블렛을 올려놓고 작업할 수 있는 최고의 책상을 찾는 일. 두 번째 고민은 여행하는 삶과 일하는 삶의 균형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아무 책상과 앉을 수 있는 의자만 있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디지털 노마드에게 책상은 인터넷 연결만큼 중요했다. (타블렛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나에겐 적어도 그랬다.)



▲ 나라별로, 도시별로 참 다양한 책상을 많이 만났다. 아무리 좋은 숙소라도 티테이블밖에 없는 곳도 있었고, 예상밖에 일하기 좋은 테이블이 준비된 숙소도 있었다. 




 여행 초반 나는 보통 숙소에 비치된 공용공간을 이용하거나 커피숍에 갔다. 공용공간과 커피숍에 비치된 테이블들은 너무 작았고, 장시간 작업을 하면 허리와 목에 상당한 무리가 갔다. 하루 잠깐 이용하기엔 괜찮았지만, 이대로 계속 이런 패턴으로 일하다간 디스크에 걸릴 것 같았다. 책 출간과 내 건강을 맞바꾸고 싶지 않았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작업 능률을 해치지 않는 나만의 책상이 필요했다. 여행자가 나만의 책상을 어떻게 구한담? 그게 나의 첫 번째 고민이었다.


▲ 쇼파에 앉아서 작업할 수도 있는 다른 디지털노마드에 비해 노트북과 타블렛을 동시에 올려두어야해서 나는 남들보다 더 많은 애를 먹었다. 카탈스런 디지털노마드 중 한 명, 인정..




 효밥(나의 짝꿍)이와 나는 3년+알파 기간을 설정하고 세계 여행을 떠났다. 여행하다 마음이 가는 곳에 새로운 집을 꾸리자는 생각으로 집도, 차도, 직장도 모두 깔끔하게 0으로 만들고 떠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여행보다 세계 이사라고 우리의 여행을 명명했고, 첫 번째 여행지인 태국에서 무려 3개월을 보내기로 했다. 기간도 길겠다, 본격적으로 우리의 첫 번째 집, 아니 나의 책상을 찾기로 했다.


우리집, 아니 내 작업실은 어디인가


▲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는 시암 같은 중심부와 살짝 떨어져있지만, 가성비가 끝내줘서 모든 것이 커버된 우리의 첫 번째 집이자 나의 작업실.


 에어비앤비로 가성비 좋은 집을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M 레지던스를 발견했고, 집을 보러 가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방을 보여주는 순간 ‘와, 방콕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나.’고 생각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레지던스 건물 안에는 야외 수영장과 헬스장 그리고 도서관이 있었는데, 도서관 문을 여는 순간 속으로 ‘끝났다. 무조건 여기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가격도 끝내줬는데, 1박에 15000원이었다. 원룸도 아닌 1.5룸에 수영장에 도서관에 셔틀버스까지 모두 포함해서 1박에 15000원이라니!! 그 후로 우린 많은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역대 최고의 가성비는 바로 이 집이었다.


*1박 15000원은 주 할인과 신규 가입 여행 크레딧 할인을 포함한 가격. 할인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저렴한 1박에 17~18000원 선이었다. 에어비앤비 신규가입 여행 크레딧은   www.airbnb.co.kr/c/hansolyik   링크를 통해 가입하면 받을 수 있어요:)



▲ 사진으로는 평범해보이지만 저 의자에 한 번 앉으면 집중력 200%가 늘어났다. 책 작업 중에서 가장 시간과 집중이 필요한 웹툰 작업의 대부분을 이 곳에서 끝낼 수 있었다.



 레지던스 도서관에 비치된 책상은 내가 만나본 책상 중의 최고였다. 인생 책상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넓직한 크기며 푹신한 의자며 공짜 와이파이까지. 그래서 그런지 나 말고도 도서관을 이용하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많이 보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한국인 아저씨도 있었고, 일주일 동안 함께 책상을 지키다 여행 간다며 홀연히 떠나버린 프랑스 청년도 있었다. 각자 다른 일을 했지만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 함께 한 책상에서 일하니까 능률도 오르고 동지애도 생기더라. 안 나오면 괜시리 심심하기도 하고. 이래서 코워킹 스페이스로 모이는 건가 싶었다.




본격적인 출간 작업 시작!


 첫 번째 집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출간 작업 속도를 높였다. 아침에 일어나 수영을 하고 밥을 먹고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배가 고프면 방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잠깐 쉬었다 다시 도서관으로 갔다. 모든 것은 집에서 해결하니 집 밖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좋기도 했지만, 이럴 거면 한국에서 일하는 것과 무슨 차이일까 싶기도 했다. 슬슬 여행하는 자아와 일하는 자아의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다.



▲ 세계 여행 다니는  키만과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외노자의 삶은 한 끗 차이.




 방콕에 머무는 한 달 동안 책 출간작업을 끝내길 원했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책을 출간한다는 일은 정말 녹록치 않았다. 내 노트북에는 수정.jpg, 수정2.jpg 진짜 끝.jpg 마지막 수정.jpg 진짜마지막끝제발.jpg 파일들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아 끝나지 않는 수정의 굴레여.



▲ 디지털 노마드의 장점은 출근이 없다는 거지만 반대로 퇴근도 없었다. 코인 세탁기에서 빨래를 돌리다가, 계곡에서 수영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곳이 내 일터가 되었다.



작업하기 좋은 레지던스를 나와 우리는 새로운 숙소를 찾아 떠났다. 숙소의 결정 기준은 ‘책상’이었고, 나 때문에 숙소를 결정하는데 효밥이는 꽤 애를 먹었다. 가끔은 예산 때문에 책상이 없는 숙소에 묵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노트북과 타블렛을 들고 작업할 수 있는 커피숍을 찾는 긴 여정을 떠나야 했다. 한국처럼 작업하기가 용이한 로컬 카페가 생각보다 많이 없어서 고생 꽤나 했다. 뜨겁고 습한 동남아 날씨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커피숍에 도착하면, 이미 땀에 쩔어서 일할 기운도 없기 일쑤였다. 



▲ 발리의 스타벅스에서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책의 뒷 표지 디자인이 나왔다. 역시 책상이 편하고 일하기 좋은 분위기라서 그런지 작업 속도가 LTE급이었다.


▲오전부터 일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천천히 큰 책상을 하나 둘씩 가득 메꿨다. 발리 스미냑의 스타벅스는 내가 봤던 스타벅스 중에 시설이 최고중의 최고였지만 발리 물가에 비하면 커피값은 너무 비쌌다. 



물론 스타벅스에 가면 작업용 큰 테이블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장기 여행자에게 매일 스타벅스로 출근 도장을 찍는 건 지갑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심지어 나는 스타벅스 커피도 안 좋아했으니까. 그래도 심각하게 작업실을 못 찾는 경우엔 스타벅스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야했다. (스타벅스라고 다 좋은 책상을 두는 건 아니었다. 비싼 돈을 치뤘지만 작업할 여건이 안되서 금방 나온 경우도 많았다. 또, 오래 일할 때는 기본적으로 주문을 두 번하는데 그 값이 만만치 않았다.)




▲ 이번에는 또 어디서 책상을 구걸하면서 다녀야하나.... 하 괴롭다. 괴로워.



 방콕, 치앙마이, 아유타야, 칸차나부리, 빠이, 끄라비, 피피섬, 푸켓, 루앙프라방, 쏩잼, 하노이, 깟바섬, 하롱베이, 믈라카, 쿠알라룸푸르, 카메론 하이랜드, 발리, 길리섬, 호주 케언즈까지. 나의 책상 찾아 떠나는 여행이 계속되었다. 이쯤 되면 내가 세계 여행을 하는지 작업실 탐방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장장 1년을 고생한 끝에 첫 책이 출간되었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책 출간이라니. 만약 내게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나는 치앙마이에서 3개월 동안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작업만 끝내고 여행을 시작할 것 같다. 책상 때문이냐고?


그것도 그렇지만 여행하는 삶과 일하는 삶의 균형을 찾는 문제는 책상을 찾으면 해결 되는 첫 번째 고민보다 훨씬 복잡했다. 순두부 멘탈을 갖고 있는 나는 두 자아의 사이에서 몇 번의 멘붕을 겪었는지 모른다. 


여행하는 삶과 일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 여행하면서 출간하기 3>에서 이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세계 여행하면서 출간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