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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만소리 Aug 24. 2018

발리에서 나의 마지막 서핑을

인생 예습 버킷 리스트 (1) 발리에서 서핑 배우기



"서퍼들이 죽고 못 사는 발리에서도 아니면, 정말 아닌 거야!"  

나는 서퍼들의 파라다이스, 발리에서 서핑과의 인연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발리까지 서핑하러 가서 웬 입장 정리냐고? 파도를 타고 당신의 얼굴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오는 롱보드를 상상해보라. 상상만 해도 얼굴이 짜릿해지는 그 경험을 나는 제주도에서, 그것도 서핑을 처음 배우는 날 당했다.


나는 바다가 좋았다. 탁 트인 풍경이 주는 시원함, 튜브를 타고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나른함. 그중에서 보드와 하나 되어 파도와 춤을 추는 서퍼들의 자유로움은 단연 최고였다. 그렇게 동경을 마음에 품고 시작한 서핑은 에메랄드 빛 제주 바다에 피를 뚝뚝 털어트리면서 종료되었다. 그 후로 부산 송정에서 한 번, 제주 바다에서 다시 한번 서핑에 도전했지만, 내 키보다 큰 롱보드가 나를 덮치는 고통스러운 상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롱보드가 파도에 휩쓸려 부셔버린 것은 서핑에 대한 내 마음이었다. 서핑은 무서워졌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의 자유로운 서퍼들를 향한 동경은 여전한 게 문제였다. 그렇게 서핑은 한참을 잊고 지내다가 불쑥불쑥 내 마음의 문을 두들기는 새벽녘의 전 남자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발리에서 서핑 배우기

인    생    예    습    버                트 (1)



 세계 여행 중 한 달을 뚝 떼어서 발리에서 서핑 배우기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언제까지 먼발치에서 지켜만 볼 것인가! 전 남자 친구를 훌훌 털어낼 때가 온 것이다.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한 번 해보자 서핑아!


 우리는 초심자들을 위한 서핑 바다로 알려진 꾸따 비치 쪽에 숙소를 잡았다. 꾸따 비치는 레게 음악이 흐르고 맥주를 마시며 bro를 만들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위기였지만, 차분히 서핑을 배우기엔 조금 복잡해 보였다. 서핑 쪼렙인 우리들은 조금 더 레슨에 집중하기 위해 꾸따 비치가 아닌 바투 보롱 비치로 옮겼고, 그곳에서 서퍼 선수 출신 지미를 만났다.


 지미는 매일 새벽, 파도 높이와 바람의 풍속에 따라 레슨 시간을 정했는데 그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지미를 통해 서핑을 다시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김칫국을 시원하게 드링킹 하기 시작했다. 내가 발리에서 서핑을 하다니! 오늘부터 난 서퍼로 다시 태어난다!! 를 외치던 그 순간, 큰 파도에 휩쓸려 보드와 함께 바닷속으로 말려들어갔고, 파도와 함께 우리 쪽으로 쏟아졌던 다른 서퍼의 롱보드가 아슬아슬하게 내 얼굴 옆을 빗겨 나갔다. 



"젠장! 이제 내 인생에서 서핑은 영원히 아웃이야!!"


쉬지 않고 몰아치는 큰 파도에 나는 결국 사시나무 떨듯 떨었고, 발리가 왜 서퍼들의 천국임을 온몸으로 절실하게 느꼈다. 파도의 높이가 제주 바다와 비교도 되지 않게 높고 길게  계속해서 불어 닥쳤다. 서퍼의 동경이고 나발이고 내가 죽게 생겼다. "Jimmy! I don`t wanna surfing anymore!"를 외쳤고, 그렇게 내 인생의 마지막 서핑이 종료되었다.




인생 - 서핑 = 행복




 서핑을 하고 있는 효밥이와 지미를 바다에 남겨둔 채 나는 선베드에 말려둔 수건처럼 조용히 널브러져 있었다. 물이 송골송골 맺힌 시원한 빈땅을 마시며 발리의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서핑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바람은 적당했고, 햇살은 따뜻했고, 맥주는 환상 그 자체. 오! 내 인생에서 서핑을 빼니 모든 것이 완벽하네?


역시 사람은 해봐야 안다니까. 비록 내가 세탁기에서 굴러다니는 빨랫감처럼 보드와 함께 굴러다녀서 제대로 된 서핑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해보니 알았다. 내가 만약 서핑을 계속 고집한다면, 그것은 행복과 멀어지는 일이라고.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없는 것처럼, 공포와 행복은 공존할 수 없었다.



무모한 도전을 하던 무한도전 시절, 멤버 한 명이 도전에서 실패하자 유재석이 말했다. "비록 A 멤버가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A 멤버는 에이스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에이스가 있습니다." 그렇다. 나 역시 서핑엔 실패했지만 여전히 나에겐 또 다른 버킷리스트들이 남아있다.




상자를 열어봤는데 네가 원하는 게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

해보고 싶은 일을 막상 해봤는데도 생각보다 즐겁지 않다고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그저 다른 선물 박스를 열어본 것뿐이니까. 내 행복을 담은 선물박스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 다음 버킷리스트로 가볼까?





키만의 버킷리스트 이야기는 <나중에 말고 지금 해봐요>를 통해서

부부 여행 웹툰은 <여보야 배낭 단디 메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그림 키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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