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키만소리 Aug 08. 2019

어머, 글씨 참 못 쓰네요.

글씨는 인격을 대변하지 않는다.

오늘의 기분

손글씨가 빼곡히 담긴 편지를 쓰고 싶은 기분



 “서기, 여기 칠판에 있는 거 적어라”


지금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생일 땐 학급엔 서기가 한 명씩 있었다. 보통 서기의 역할은 학교 내 전달 사항이나 학급 회의 기록을 학급일지에 받아 적는 것이었다. 반장처럼 투표를 통해 선발되어 임명장을 받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학교의 서기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필기구로 가득 찬 필통에서 색색깔 펜을 꺼내 학급 일지 위에 글씨를 적어내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서기의 책상으로 몰렸다. 


 서기가  글을 적어 내려 가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열람하며 “너 글씨 진짜 잘 쓴다. 나도 글씨 잘 쓰고 싶다.”를 읊는 학생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급 노동의 현장이었거늘. 무엇이 우리를 부럽게 했을까. 예쁜 글씨로 또박또박 채워나가는 서기의 표정은 언제나 당당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초라했다.






 눈치챘겠지만 내 글씨체는 못생겼다. 악필까지는 아니어도 남들 앞에서 글 쓰는 시간이 찾아오면 침을 꼴깍 넘기며 눈치를 살피게 된다.



 삐뚤빼뚤. 휙휙. 주인의 급한 성격을 빼다 박은 내 글씨는 피치 못할 일이 생겨서 떠나는 이름 모를 여관방 손님이 적어둔 것 같이 보였다. 니은은 언제나 바람에 날아갈 것처럼 쓰이고, 리을은 조카가 그린 지렁이 그 자체다. 기역, 니은, 디귿, 어디 하나 제대로 갖춰진 모양이 없다. 내 글씨체에 대해서 낱낱이 적다 보니 에잇,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못하겠다. 제대로 고백한다. 나는 살알짝, 악필이다.


 그래도 나 정도면 악필은 아니지 않아?라는 마지막 심정으로 구글 이미지에 '악필'을 검색해봤다. 한국어가 꼭 아랍어처럼 보이는 사진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나와 비슷한 글씨체를 가진 사람들의 이미지가 많았다.  십수 년간 외면하고 있던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악필의 범주에 들어간 것이다.







 악필로 산다는 것은 삶을 위험할 정도로 치명적이지 않지만 머리를 긁적 하게 되는 멋쩍은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는 걸 뜻한다.



 은행이나 관공서에 가서 서류를 작성할 때 은근히 신경이 쓰여 손에 땀이 난다. 오늘 이후로 다시는 볼 일 없을지도 모르는 은행 직원분에게 신용도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호감 있는 사람 앞에서 글씨를 쓸 때는 더하다. 혹시라도 못생긴 글씨를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아, 저 글씨를 잘 못쓰는데... 하하하' 하고 밑밥을 까는 걸 잊지 않는다. 또 중요한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는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쓴 글씨처럼 보이고 싶어서 고심한다. 사인을 끝내고 나면 펜을 꽉 쥐고 있던 손이 아리지만 괜찮은 척 웃는다.



 글씨와 나는 명백히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글씨는 인격을 대변한다.라는 속설 때문에 손글씨 쓰는 순간들이 두렵다. 이처럼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가 쓴 글씨체를 보고 '신용도가 떨어지는' 혹은 '신뢰를 줄 수 없는' 사람으로 판단할까 봐 글씨를 쓰는 순간이 썩 유쾌하지 않다. 또 글씨를 반듯하고 성실하게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서기를 부러워하던 그 사춘기 소녀로 돌아가 단번에 초라해지고 만다. 그깟 글씨체가 뭐라고.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도 명필이래! 그러니 글씨는 인격을 대변한다는 말은 신뢰도를 잃었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알려줄 수도 없는 모양이고. 참.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가득 찬 이 사회에서 악필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사랑하는 이의 악필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연애 시절 남편 효밥이 내게 선물과 함께 카드를 준 적이 있었는데 그의 필체는 놀랍도록 쭈굴쭈굴했다. 세탁기로 빨면 안 되는 고급 소재의 니트를 빨아서 쪼그라든 것 같은 그런 글씨로 인디밴드 몽니의 '그대와 함께'의 가사가 적혀있었다.



그대와 함께 기차를 타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
그대와 함께 모든 걸 잊고 저 넓은 바다로 향해 달려가고 파.



 못생겼지만 사랑스러웠다. 편지지 앞에 웅크리고 앉아 가사를 적었을 그를 상상하니 귀여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릴 때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을 테고, 펜을 너무 꽉 잡아서 손목이 저릿저릿했을 것이다. 쭈굴쭈굴하게 적혀 내려간 가사에 그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편지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 다시를 만나지 않을 사람들 혹은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글씨 쓰는 것을 두려워하는 일이 얼마나 하찮은 일인가. 투박하게 쓰인 부모님의 글씨, 소리 나는 대로 쓴 조카의 편지, 휘갈겨 쓴 여행지에서 보낸 엽서, 쭈굴쭈굴하게 쓰인 러브레터까지. 마음이 담긴 손글씨는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가 읽게 된다. 나이도 국경도 초월하는 사랑이 그깟 글씨체가 뭐라고 망설일까. 


 악필이어도 괜찮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글씨체가 아닌 마음을 읽을 테니까. "글씨 참 못 쓰네요." 라는 말을 들어도 "괜찮아요. 제 글씨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라고 말할 용기가 생겼다. 


사랑을 담아, 마음을 담아 손글씨로 빼곡히 채워진 편지를 쓰고 싶은 밤이다. 가까운 이에게 사랑을 전해주고 싶은 밤이다. 펜을 꺼내고 싶은 밤이 내게도 왔다.





여행자이자 기록자

김한솔이 (키만소리)

엄마와의 여행을 기록하다 : 출간 완료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남편과의 여행을 기록하다: 위클리 매거진 <여보야 배낭 단디 메라>

엄마와의 메일을 기록하다: 출간 예정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세계여행 후 다수의 순간을 기록 중: 세계 여행 전문 서적 준비 중

Insta @kiman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는 시험에 합격하려고 오는 곳이 아니예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