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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만소리 Jun 26. 2019

직함이 적힌 명함에 인생을 대입하지 말아요.

직업의 '직'이 아니라 자신의 '업'을 찾을 것

오늘의 기분

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기분



 취업을 꿈꾸는 4학년 학생들이 모인 강의실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적막하게 내려앉은 공간을 채우는 건 마음의 칼날을 가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때로는 단거리를 단숨에 뛰어온 선수의 들숨날숨처럼 초조하게 들리기도 했고, 무엇을 갈아야 할지 몰라 그저 의미 없는 왕복만 오고 가는 허공의 메아리 같이 들릴 때도 있었다. 저마다의 이유로 강의실은 칼날 가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때 교수님이 입을 뗐다.



"취업 준비하느라 다들 바쁘죠? 그래도 잊어버리면 안 될 게 하나 있어요. 첫째, 첫 번째 직장이 자신을 대표한다고 믿지 말 것. 두 번째, 직업의 '직'이 아니라 자신의 '업'을 찾을 것."



 교수님의 첫 번째 조언은 졸업 후 친구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은 근사한 직장을 얻지 못하게 될 예비 사회 초년생들을 위한 격려이자 직장의 이름 뒤에 숨어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경고였다. 첫 번째 조언도 꽤 좋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은 것은 두 번째 조언이었다. 취업의 길을 짧고, 인생을 찾는 길은 길다. '직'은 계속해서 바뀐다 그러니 너희들의 '업'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직'이 따라올 것이다.라는 교수님의 이어지는 말에 취업의 칼을 갈던 4학년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희가 원하는 건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교수님의 인맥이 담긴 명함이라고요."






 다 컸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때의 우리는 고작 24살, 25살이었다. 19년을 책상에 앉아서 오지선다형을 풀다가 고작 4년 동안 인생을 풀려니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참고서 뒤의 해설지 좀 훔쳐볼까 싶어 시간을 쪼개 '진로와 모색' 수업을 들으러 왔는데 오히려 '업'을 찾으라는 새로운 문제를 덤으로 받은 셈이었다.


 취업에 불안함을 느낄 때마다 교수님이 해준 두 번째 조언을 생각했다. 비록 내가 하는 '직'들이 균일 감이 없어 보일지라도 내가 '업'으로 삼고 싶은 글쓰기가 항상 숨어있다고 생각하면 조급한 마음이 조금 풀렸다. 남들에게 근사하게 자랑할 정도로 명함에 적히는 일이 아닐지라도 '직'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전화를 붙잡고 친구에게 불안함을 토로하며 울며 밤을 지새운 적이 있기도 했지만.  '업'에 관한 고민과 시도는 계속 이어졌고 나는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작가님이라고 적힌 메일을 많이 받아봤지만, 브런치에서 불러주는 작가님이 가장 기분이 좋았다.  



 빨간색으로 수정사항이 주렁주렁 달린 글을 받는 작가가 아닌 온전히 나의 글을 쓰면서 작가로 불린다는 건 생각보다 꽤 기쁜 일이었다. 작가님으로 불리는 게 좋은 공간에서 나는 계속해서 나의 글을 썼다. 2015년 11월에 첫 글을 올리고 4년째가 되자 2019년 서울 국제도서전 브런치 '작가의 서랍 전'에 전시된 나의 첫번째 출간 책에 "브런치 덕분에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라는 글귀를 적게 되었다. 꾸준하게 '업'을 향해 걷다가 '직'이 생겼다는 뻔한 스토리도 함께 적고 있다.




 

여전히 브런치에서 불러주는 작가님이 가장 듣기 좋다. 이곳에 있으면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고 정한 24살의 내가 생각난다. 만약 '작가'라는 직업을 목표로 달려왔으면 어쩌면 나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네모난 명함 속에 나를 구겨 넣으려 했을 것 같다. 작가로 불리지만 글 쓰는 걸 싫어하는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브런치 작가에서, 에세이 작가로 지금은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한다. 그때가 되면 나는 작가가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전히 내가 글을 쓰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나에겐 명함대신 절대로 퇴사할 수 없는 그런 인생의 업이 생겼다.


  첫 만남에 어디에 다닙니다, 가 아니라 (          )을 좋아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오길 바라면 인생의 '업'을 찾으라는 뻔한 자기 계발서 같은 글을 남긴다.


 




여행자이자 기록자

김한솔이 (키만소리)

엄마와의 여행을 기록하다 : 출간 완료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남편과의 여행을 기록하다: 위클리 매거진 <여보야 배낭 단디 메라>

엄마와의 메일을 기록하다: 출간 예정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세계여행 후 다수의 순간을 기록 중: 세계 여행 전문 서적 준비 중

Insta @ki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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