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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만소리 Aug 23. 2019

더이상 골목에 밥 짓는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헛헛한 하루가 차갑게 식어가는 시대에 산다.

오늘의 기분

저녁 짓는 냄새가 가득한 골목을 걷고 싶은 기분




 “솔이야, 아랫목에 아빠 밥공기 넣어 놔라.”     



  어릴 적에 누구나 한 번은 했던 심부름이다. 갓 지은 흰쌀밥이 소복하게 담긴 아빠의 밥공기를 아랫목 솜이불 사이로 넣어두는 일.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빠에게 따뜻한 밥을 내어드리기 위한 가족의 마음이었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네 가족이 옹기종기 앉아 저녁이 시작되었다. 아랫목에서 꺼낸 아빠의 밥공기는 가족의 마음을 알았는지 용케 식지도 않고 온기를 품고 있었다. 할머니 된장으로 푹 끓인 된장찌개와 시골 여수에서 올라온 꼬막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부 구이가 식탁으로 올라왔다. 



소박하지만 따뜻했던 나날들이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누리는 전기밥솥과 식탁 그리고 전자레인지가 없는 불편한 시절이었지만 그날의 저녁을 생각하면 사람 사는 집의 온기가 마음속에 스며든다. 코끝으론 갓 지은 밥 냄새가, 손끝으론 뜨끈한 아랫목의 따뜻함이 만져진다. 눈을 감아도 여전히 선명하게 떠오르던 온기 넘치던 나날들. 단칸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아 몸은 불편했어도 마음은 아랫목에 넣어둔 아빠의 밥처럼 따뜻했던 시절이었다.     






 집 안에 사람이 귀해졌다. 


저녁이 되면 모두 집으로 모였던 그때와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갓 지은 밥 냄새와 지글지글 기름에 구워지는 생선구이 냄새가 골목 한가득 퍼지는 대신 늦은 밤 배달 음식을 싣고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집을 밝히는 빛보다 빌딩의 꺼지지 않는 노동의 빛이 익숙하다. 또 심야의 도로 위에는 까무룩 쏟아지는 졸음을 부여잡고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싣고 달리는 택시들이 내뿜는 매연이 자욱하다. 발 뻗고 사는 만큼 사람 사는 집 냄새와 온도가 나날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도 안 웃긴 이야기


 영하 16도까지 내려갔던 지난겨울, 아파트 관리소에서 엄마를 찾아왔다. 수도세는 나오는데 도시가스 요금이 너무 적어서 집에서 사람이 사는지 확인하러 왔단다. 보통 아빠는 가게에 계시고, 엄마 혼자 큰 집에 있다 보니 전기장판만 쓰고 보일러를 때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밥도 한번 해두면 먹을 사람이 없어서 남은 밥과 반찬을 전자레인지로 돌려 먹었단다.      


 엄마는 웃긴 일이라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가장 따뜻해야 할 부엌에서 냉랭한 겨울바람이 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사람이 내뿜는 온기 하나 없이 엄마 혼자서 버텼을 생각을 하니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사람 사는 집 맞냐는 말이 한겨울의 바람처럼 느껴져서 웃기기는커녕 코끝이 퍼렇게 차가워졌다.      





 온 가족이 얼굴과 마음을 기대며 저녁을 먹던 그 시절의 구들방 온도가 그리워졌다. 


비록 방도 변변찮고 부엌도 따로 있었던 집이었지만 사람 사는 냄새와 온기가 가득했던 그 날의 저녁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작은 밥상 위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갓 끓여낸 된장찌개를 후후 불어 먹던 그 밤들의 온기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름도 어렵고 높이도 아찔한 고층의 아파트들이 계속해서 들어선다. 그중에 고슬고슬한 밥 냄새가 나는 집은 몇이나 될까. 식구의 저녁을 준비하는 부엌에서 올라오는 뽀얀 훈기가,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던 막내딸의 발그레한 두 볼에서 뿜어내는 설렘이,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아빠의 마음의 온기가 아랫목처럼 뜨겁게 피어오르는 집이 몇이나 될까. 더 크게, 더 높게 올라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버린 탓에 점점 집 안에 온도는 식어 간다.  아랫목에 넣어둔 아빠의 밥공기 대신 진공포장된 배달 음식이 속속히 도착한다.


 우리는 그렇게 헛헛한 하루가 차갑게 식어가는 시대에 산다. 따뜻한 저녁을 그리워하며.




여행자이자 기록자

김한솔이 (키만소리)

엄마와의 여행을 기록하다 : 출간 완료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남편과의 여행을 기록하다: 위클리 매거진 <여보야 배낭 단디 메라>

엄마와의 메일을 기록하다: 출간 예정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세계여행 후 다수의 순간을 기록 중: 세계 여행 전문 서적 준비 중

Insta @ki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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