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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만소리 Jul 30. 2019

아빠는 묵묵히 핑크색 자전거를 탔다.

각자의 위치에서는 몰랐던 각자의 사정

오늘의 기분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



우리 가족의 암묵적인 행사가 있다.  한 달에 한번 아빠의 공식적인 휴일엔 온 가족이 모여 점심 한 끼를 나누는 것인데, 엄마의 큰 손 덕분에 소박한 한 끼는 언제나 대명절 잔칫상이 되어버린다. 덕분에 아침부터 부엌엔 고소한 기름 냄새와 진득한 갈비 냄새 그리고 손주 전용 반찬까지 쉴 새 없이 지지고 볶아진다. 아빠의 공식적인 휴일은 동시에 소화불량의 날이기도 했다.


 그날도 그랬다. 통통통. 아유,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가 안되네.라고 말하는 아빠는 시계와 창문을 번갈아보며 소화를 돕는 소일거리를 찾는 듯했다. 엄마는 아빠와 공원에 자전거라도 타고 오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선뜻 내키지 않았다.





우리 아빠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다. 불러도 언제나 대답 없는 그 사람. 우리 아빠는 가사 그대로 불러도 대답이 없다. 언제나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고 음악만의 내 길이요 하고 산다. 길을 걸어도 혼자 저만치, 전철을 타도 혼자 반대편에, 식당에서도 혼자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사람. 그 사람이 우리 아빠다.



그렇게 다정함과 거리가 먼 외로운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녹이 슬어 밟은 만큼만 딱 정직하게 나가는 자전거로 아빠의 뒤를 맹렬하게 쫓았다. 기어는 고장이 난 듯 조용했고 내 숨소리만 거칠게 들릴 뿐이었다. 내 숨소리가 3단으로 내려갔을 무렵 아빠의 자전거는 점점 더 시야에서 멀어졌다. '나 버리고 혼자 갈 줄 알았어!'  혹시나 아빠가 나와 발을 맞춰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 내 잘못이었다.



"아빠, 이거 기어가 고장 났나 봐." 집에 가자는 말이었다.

"아빠 자전거랑 바꿔 타." 아직 소화가 덜 되었다는 아빠였다.

"싫은데. 안장이 너무 높아서 무서워." 그만하고 집에 가자는 말이었다.

"안장 낮춰줄게. " 자전거를 더 타겠다는 강경한 아빠였다.






우리는 서로의 자전거를 맞바꿨다. 아빠의 자전거는 내게 너무 컸고, 분홍색 자전거는 아빠에게 너무 작았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아빠를 흘낏 쳐다봤다.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고장난 분홍색 자전거에 몸을 욱여넣고 페달을 낑낑 밟는 아빠의 모습은 진짜 웃겼으니까. 속도라도 빨랐다면 사람들 시선을 피해 쓩 도망이라도 갔을 텐데. 분홍색 자전거는 정말 느렸다.



 반면 아빠의 자전거를 탄 나는 고작 두어 번 페달로 저만치 아빠 앞을 가로질러 나갔다. 어라. 마음먹고 밟으면 고물 분홍색 자전거랑 멀어지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아빠가 나를 신경도 쓰지 않고 혼자만 저 멀리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빠의 자리에 앉아보니 아빠는 뒤에서 열심히 쫓아오는 딸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우린 서로 자리를 바꾸고서야 알았다. 각자의 위치에서는 몰랐던 각자의 사정을.


공원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전거 타기가 어렵다는 내 말에 아빠는 대답없이 자전거 방향을 틀어 사람도, 차도 없는 조용한 골목으로 나를 데려갔다. 우리는 말 없이 사람도, 차도 없는 한적한 골목을 달렸다. 어두운 저녁을 환하게 밝히는 가로등 조명이 들어왔다. 하늘은 어느새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렁차게 우는 매미소리와 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여름밤을 알리고 있었다.  통통통, 소리가 나는 배가 까무룩 꺼질 무렵 우리는 자전거 머리를 집으로 돌렸다. 


 누구 하나 '지금부터 발을 맞춰 다정하게 달리는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느새 발을 맞춰 다정하게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빨갛게 상기된 볼 위로 시원한 바람이 일렁이는 기분 좋은 여름밤이었다. 




여전히 아빠는 불러도 대답이 없는 그 사람이다. 그런데 그 대답 없음이 예전보다 답답하지가 않다. 아빠는 아빠만의 대답을 하고 있는 중이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자전거를 바꿔 탄 그 날의 아빠 뒷모습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심수봉의 말이 없던 그 사람이기도 하면서, 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 사람이기도 한 나의 아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사정으로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운이 좋으면 오늘처럼 가끔 이해하기도 하고, 때론 눈물지으며 돌아서기도 하면서. 가족은 그렇게 살아간다.



비가 오면 생각 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고
위로하며 다정했던 사랑한 사람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어쩌다 한 번쯤은 생각해줄까?
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 사람.
-심수봉 [그때 그 사람]





여행자이자 기록자

김한솔이 (키만소리)

엄마와의 여행을 기록하다 : 출간 완료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남편과의 여행을 기록하다: 위클리 매거진 <여보야 배낭 단디 메라>

엄마와의 메일을 기록하다: 출간 예정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세계여행 후 다수의 순간을 기록 중: 세계 여행 전문 서적 준비 중

Insta @ki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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