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만소리 Jun 04. 2019

그 날 내가 받은 것은 꽃뿐만이 아니었다

꽃 하나로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해질 수가 있다니

오늘의 기분

꽃을 선물하고 싶은 기분


 한국에 들어온 지 한 달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제법 추웠던 4월의 코 끝 시리던 바람은 제법 훈훈한 열기를 띄며 여름의 초입을 알려주고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싱그러움을 머금고 주인을 기다리는 꽃들이 제법 보였다. 평소 같으면 그냥 눈길만 주고 지나갔을 텐데 그 날은 유난히 꽃집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서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꽃 한번, 시계 한 번을 번갈아보다가 5분 정도 늦을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고 친구에게 선물할 꽃을 골랐다.


 무슨 꽃인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장님이 계산을 하면서 알려주셨는데 포장지 속에 얌전히 쌓여있는 연보라의 작은 꽃망울과 잔털이 보송보송 난 올리브색의 작은 잎사귀에 정신이 팔려 까먹고 말았다. 작은 꽃망울 주제에 제법 깊은 향기를 품고 있었다. 덕분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내내 나는 여전히 꽃집에 머물러 있는 기분이 들어서 발걸음이 조금 방방 떴다.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친구에게 몰래 다가가  꽃을 건넸다. 2년 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엔 5월의 봄날 같은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웬 꽃이야?"라고 묻는 친구에게 "지난번에 통화할 때 요즘 즐거운 일이 없다는 말이 생각나서. 내 행복을 담은 꽃이니까 앞으로 행복한 일만 생길 거야."라고 말했다. 내 말은 곧 이뤄졌다. 나와 헤어지는 순간까지 친구는 꽃을 보며 행복해했으니까.


 

그 후로 나는 세 번의 꽃을 더 선물했다. 길 가 위에 핀 작은 꽃 한 송이도 예뻐하는 나의 시어머니에게, 또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그새를 못 참고 결혼식을 올린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새로운 가족을 품고 어른의 기로의 선 친구에게. 꽃을 선물하는 이유는 다 달랐지만 내 마음은 하나였다. 꽃을 받으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그 마음. 나는 그 마음을 선물하고 싶었다.





임신한 친구가 내가 선물한 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니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여행을 다녀온 게 아니라 세상을 배우고 왔네."라고. 어, 어떻게 알았지? 내가 꽃을 선물하는 건, 정말로 누군가에게 배웠기 때문이었다. 조지아에서 셰어하우스를 하면서 머물고 있을 때였다. 익숙한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며칠 전 우리 집에 머물던 언니네 커플이 한 손엔 꽃다발을 다른 한 손에 잘 익은 체리를 들고 서 있었다. 이제 조지아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데 그동안 고마웠다며 내 품에 꽃을 선물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꽃다발은 몇 년간의 고생을 축하하는 졸업식이나 애인과의 특별한 날에 받는 줄 알았는데, 어제와 다름없는 평범한 오늘 같은 날에 받다니. 마음이 울렸다. 




아마 내게 꽃다발을 준 언니는 사랑받은 사람이 분명했다. 그러니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 알았을 테고, 그런 마음을 내게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날 언니가 내게 준 것은 사랑을 베푸는 기쁨이었다.


 


꽃을 고르는 동안 꽃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는 건 정말 설레는 일이다. 꽃을 포장하는 장면을 하나하나 뜯어지게 살펴보는 일도 퍽 좋다. 그중에 가장 행복한 과정은 꽃을 들고 선물하는 그에게 가는 길이다. 부끄러움에 하는 '그냥 오다가 샀어'라는 말보다 '오늘 하루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서 샀어.'같은 솔직한 마음을 더하면 기쁨은 우리 곁에 더 흩뿌려진다. 


 꽃 하나로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니. 또 사랑을 전해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쉬운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꽃을 선물한다. 




여행자이자 기록자

김한솔이 (키만소리)

엄마와의 여행을 기록하다 : 출간 완료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남편과의 여행을 기록하다: 위클리 매거진 <여보야 배낭 단디 메라>

엄마와의 메일을 기록하다: 출간 예정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세계여행 후 다수의 순간을 기록 중: 세계 여행 전문 서적 준비 중

Insta @kiman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