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키만소리 Aug 21. 2019

나는 남편밥을 먹고 산다.

꼭 사랑한다고 말을 해주는 것만이 사랑받는 게 아니다.

오늘의 기분

남편밥을 먹고 싶은 기분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 신혼부부 타이틀을 얻었을 때도 자연스럽게 부엌에 서 있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나였다. 그런데 요즘 부엌에 서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내가 부엌에 있는 경우는 설거지를 하거나 남편 요리에 쓸 채소와 갖은 식재료를 다듬을 때다. 결혼 5년 차. 나는 이제 남편 밥을 먹고 산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밥보다 때론 엄마밥보다 남편밥이 더 맛있으니까.     





 

 남편은 잘 먹는 사람에 속했지 요리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우리 집 셰프 자리를 꿰차기 시작한 것은 2년간 해외 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외국에서 직접 해 먹는 집밥은 굶주린 배도, 고향의 그리움도 든든하게 달래주는 고마운 녀석이었다. 하지만 아시아 마트에서 간신히 구한 다국적 소스와 현지 재료들로 만든 한식은 늘 그렇듯 20% 부족한 맛이 난다. 한국에서 요리할 때도 엄마밥 맛이 안 나는데 해외는 오죽할까. 


그런데 이 남자. 그 20%의 빈틈을 간으로 다 잡는다. 그게 내가 셰프 자리에서 밀려난 이유였다.    


  본인도 몰랐던 재능을 부엌에서 발견한 그는 우리 집 간잽이가 되었다. 그의 요리 스승은 인터넷 레시피 어플과 셰프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고 요리를 시작한 남편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무김치, 무김치, 배추김치, 파김치, 오이김치도 담갔다. 김치 담그는 남자라! 이두근에 힘주며 운동하는 남자만 섹시한 줄 알았는데, 맨 손으로 김장을 하는 남자의 옆모습도 만만찮다는 걸 또 한 번 깨닫는다.






  한 번은 고사리와 숙주나물, 양파와 그리고 파를 듬뿍 넣고 끓여주는 엄마표 육개장이 먹고 싶었다고 칭얼댔다. 향수병과 함께 찾아온 마음의 허기였다. 향수병이 불러온 허기는 아무리 맛있는 다른 음식을 먹어도 채워지지가 않았다. 고향의 맛. 엄마밥 맛. 그 맛이 그리웠다. 며칠 후, 남편은 고사리와 숙주나물 대신 간신히 구한 귀한 파로 파계장을 끓였다. 보글보글. 색깔은 일단 합격. 오! 냄새도 좋아. 그렇다면 맛은? 간잽이 씨는 그날부로 절대미각으로 승격되었다.  


 남편이 담근 배추김치와 함께 파계장 두 그릇을 해치웠다. 헛헛하게 찾아왔던 마음의 허기가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엄마밥에서 영원히 졸업 못할 줄 알았는데. 이제 나에게 육개장은 남편표로 갱신되었다.







 외국에 살면 먹는 것만큼 치열한 것도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장을 보고, 없는 재료로 머리를 굴려가며 만들고, 치우고 또다시 요리하는 그 끝나지 않는 삼시 세 끼의 굴레에서 나온 밥 한 끼는 만든 이의 사랑을 품고 있다. 밥 한 끼가 뭐라고. 사랑까지 말하나 싶었는데 집밥은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절대 그 맛이 안 난다. 꼭 사랑한다고 말을 해주는 것만이 사랑받는 게 아님을 남편밥을 먹으면서 느낀다. 나를 생각하며 파를 다듬으며, 뜨거운 불 앞에서 소고기를 볶고 정성스럽게 고추기름을 내는 남편의 모습이 파개장 위로 둥둥 떠오른다.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와 언제든지 엄마표 육개장을 먹을 수 있지만, 향수병에 시달리며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남편이 만들어준 파개장이 맛이 그립다. 꼭 그 음식이 먹고 싶다기보다 나를 생각하며 만들었을 그의 마음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일까나. 나보다 간을 잘 본다며 부엌을 양보한 것도 정성과 사랑이 담긴 남편밥을 매일 같이 먹고 싶은 나의 핑계가 아니었을까. 엄마밥이 물리지 않았던 것처럼 남편밥도 물리지 않을 것 같다. 사랑한다는 말이 질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내 요리보다 맛있기도 하고. 


 P.s 엄마가 이 글을 본다면 괘씸할 것 같기도 하다. 평생을 사랑을 담아 밥을 해줬더니 남편밥으로 갈아탔다며 등짝을 한번, 엄마밥을 보고 사랑도 못 느끼고 반찬 투정했다고 등짝 한번 더. 

 



여행자이자 기록자

김한솔이 (키만소리)

엄마와의 여행을 기록하다 : 출간 완료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남편과의 여행을 기록하다: 위클리 매거진 <여보야 배낭 단디 메라>

엄마와의 메일을 기록하다: 출간 예정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세계여행 후 다수의 순간을 기록 중: 세계 여행 전문 서적 준비 중

Insta @kiman



매거진의 이전글 헤어짐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