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글을 써야하는 이유
오늘의 기분
글을 쓰고 싶은 기분
나에게는 늦깎이 글쓰기 학생이 있다. 돋보기안경에 의지해 침침한 눈을 최대한 또렷하게 뜨며 한 글자씩 천천히 유유히 써 내려가는 우리의 늦깎이 학생의 나이는 55년생이다. 굽은 어깨와 거칠어진 손으로 잡은 펜 끝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인생을 몇 자 적어 넣기 시작한다. 서툴고 투박하지만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그렇게 적힌 글들은 인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스며들어있어 읽는 이에게 먹먹함은 선사한다. 이상하리만큼 늦깎이 학생이 쓴 글은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춤을 추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내려앉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인생의 무게는 그렇게 숨길 수가 없다.
나이 든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은 용기가 무척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은 인생이 좁아지지 않게 주변을 둘러보기 위함이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글을 쓴다는 것은 살아온 인생을 마주하는 것이니까.
따뜻한 이불속에 몸을 뉘인다고 한들 평탄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걸어온 길을 곱씹어 글로 적어낼 때마다 초라한 과거를 마주해야 하는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맞춤법이 맞지 않고 띄어쓰기가 엉망이지만 그래서 더 꾸밈없는 솔직한 글이 된다. 꾸며낼 줄 모르기에 적어낸 글들의 속내가 뜨거운 법이다. 우리의 늦깎이 학생의 글을 읽을 때는 울지 않기 위해 마음을 고쳐 메고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가야 한다. 늦깎이 학생이 나의 엄마이기에 마음을 더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까딱하다가는 뜨거운 글에 마음이 달궈져 눈물이 또르르 고이고 마니까.
"내가 써봤자 뭐 얼마나 잘 쓰겠어."라고 말하는 엄마의 글은 분명 서툴다. 그러나 담담하게 적어낸 글 속에 가끔씩 마음을 탁 내려치는 문장들이 숨어있다는 걸 엄마는 모른다. "마지막 인생 끝자락인 나에게도 희망이 보였어."라고 글을 적는 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핑 났다. 내용은 뻔하디 뻔한 삼류 신파인데, 정작 펜을 쥐고 종이에 한 글자씩 채워 넣는 엄마의 얼굴은 깨끗하게 떠오르는 아침 햇살 같다. 글을 쓰는 엄마가 오늘따라 예쁘게 보인다. 자신의 손 끝에서 글이 나오는 게 신기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피어난 엄마 표정은 꼭 학교에 첫 입학하는 아이 같다. 그런 엄마를 보니 나도 덩달아 따라 웃게 된다. 사는 게 버거웠던 엄마의 얼굴이 점점 잊히고, 사는 게 기쁜 현자 씨 얼굴이 그 자리를 채워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글을 쓴다고 해서 초라한 마음을 안고 있던 지난 과거가 변하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때론 아픈 상처를 꺼내 그렁그렁한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펜을 쥐고 글을 쓰는 것일까. 동이 트는 아침 햇살처럼 웃으며 글을 쓰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그 답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을 너머 나를 안아주는 일이다. 어둠의 수렁에 빠져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일. 외면했던 상처를 보듬어주는 일.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두려움을 달래주는 일. 마음을 담는 글쓰기는 그런 일들을 해낸다. 늦깎이 학생의 글이 마음을 울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잘 쓰지 못해도, 완벽하지 못해도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늘진 얼굴에 빛이 들기를. 마음의 멍에 벚꽃이 내려앉기를. 소복이 쌓인 눈들이 얼어붙지 않고 사르르 녹아버리기를 바란다. 글쓰기를 통해 조금 더 따뜻한 계절을 보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늦깎이 학생처럼 말이다.
키만소리 (김한솔이)
2년간 남편과 세계 여행을 하다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곳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를 만들었다.
여행자에서 이제는 작가와 글방 에디터,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다.
제 3회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를 출간했다.
다수의 작품을 그리고 쓰며 활발히 연재중이다.
인스타그램 @ki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