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나와쓰 3화. 화 낼 시간에 노래를 부르자
농키아우는 라오스 수도인 루앙프라방에서 140km 더 떨어진 아주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다. 볼거리라곤 메콩강과 빼곡히 솟은 산 그리고 빠르고 낮게 움직이는 구름 떼가 고작이다. 그런 마을에서 자꾸 어디선가 뽕짝 리듬이 울려 퍼진다. 이 조용하고 따분한 마을에 웬 소란인가 싶어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빼꼼 내밀며 쳐다본다. 그곳에는 아침부터 버스 기사에게 사기당하고, 마지막 배도 놓치고, 끝까지 트럭 기사 아저씨한테 속아 하루를 날린 배낭 여행자가 마이크를 들고 속없이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를 부르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나다.
라오스에 나와쓰! 3화. 글/키만소리(김한솔이)
"화 낼 시간에 노래를 부르자"
"이미 배도 놓쳤는데 여기 와서 시원한 맥주나 한 잔 해."
시간 개념 없는 배낭 여행자 8명을 낚은 기사 아저씨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허허 웃으며 맥주를 권했다. 평소였다면 거짓말을 따져 물었을 테지만, '와아아아~ 맥주다~'하고 달려가는 동갑내기 대학생 민과 옌 때문에 나도 덩달아 '와아아아~ 나도~~'하고 그만 들떠버렸다. 민과 옌은 우리에게 불행한 일이 없다면 모쪼록 행복한 거야!라는 에너지를 뿜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녀들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들 덕분에 고물 버스 여행도, 버스 사기도, 지금 이 순간 맥주 잔치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 어차피 배도 없는데 공짜 맥주라도 마시자!'
마음을 비우고 마신 라오 비어는 꿀맛이었다. 스피커에서는 태국에서 흘러온 뽕짝이 들려왔다. 민과 옌은 망설임 없이 노래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와! 맨 정신으로 저렇게 마음을 열 수 있다니. 저게 바로 20대 찐 텐션인가. 30대 여행자에겐 술기운이 필요했다. 나는 맥주를 허겁지겁 비웠다. 아저씨는 스피커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렸고, 라오스판 노래방이 열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아쉽게도 신체는 꼬박꼬박 나이를 먹나 보다. 다들 맥주보다 해먹에 눕는 걸 선택했다. 결국 라오스판 노래방에 끝까지 남은 사람은 민과 옌, 그리고 나였다. 라오스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말이 오가며 라오 비어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아저씨는 스피커에 마이크를 연결하더니 우리에게 건넸다. 역시 한국이든 라오스든 술에 노래가 빠지면 쓰나. 나름 고민 끝에 고전 팝송을 부르니 아저씨가 고개를 저으며 라오스 말로 뭐라 뭐라 한다. '네? 뭐라고요? 조금 더 신나는 걸로 가자고요? 아아, 오케이! 접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인가요~ 당신의 어깨가 무거워 보여~"
반주부터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는 서주경의 "당돌한 당신"이 라오스 시골 마을에 울려 퍼졌다. 아저씨가 격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든다. 역시 분위기 띄우는 데는 트로트만 한 게 없다. 케이-트롯에 취한 아저씨는 주인집 꼬마를 부르더니 맥주를 더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우리도 엄지를 척! 내밀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 주었다. 언어를 초월한 이심전심의 순간이었다.
맥주를 마시다 고개를 들자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큰 용안 나무가 보였다. 싱싱한 용안이 나무에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얼핏 보면 못 먹는 나무 열매처럼 생긴 용안은 사실 리치보다 더 달콤하고 맛있지만, 과일 치고 모양새가 허름한 편이라 대부분의 여행자가 쉽게 지나친다. 손가락으로 나무 가지를 가리키자 아저씨가 용안 열매가 탐스럽게 열린 가지 하나를 꺾어 준다. 과일 안주가 생겼다. 앞니로 톡 터트리자 안에서 과즙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시장에서 사 먹는 것보다 바로 갓 잡아 따먹으니 달콤함이 두배는 되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가 엉망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마지막엔 꽤 기분 좋게 얼큰하게 취해버렸다. 만약 나와 오빠, 우리 둘만 있었다면 아마 경계심에 맥주도 거절하고 배낭을 메고 다른 숙소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오늘의 결과를 분석하며 잘못의 지분을 나눴을 테고, 각자에게 점수를 매기며 속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생각 없이 '와아아아아~ 맥주다.'하고 달려간 민과 옌이 문득 고마웠다. 그녀들은 "하루를 망쳤다고 말하기엔 아직 오후 4시 반 밖에 되지 않았어."라고 내게 웃어주는 것 같았다.
서른이 된 나는 어느새 마음이 딱딱해져 있었다. 단단한 것과 딱딱한 건 다른 결이었다. 그건 남편인 효밥이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배낭을 메고 낯선 곳에 불시착하기만 하면 여유 넘치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여기가 아닌가. 이 곳이 아닌가. 장소 탓을 하며 돈도 써봤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러다 민과 옌을 보면서 알았다. 제자리에 멈춰서 지레짐작으로 계산하고 머릿속으로만 여행하는 나의 태도가 문제였다는 것을.
가끔씩 그녀들은 손을 데어봐야 뜨거운 걸 아는 어린아이처럼 보였지만, 적어도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어가고 있었다. 토니가 즉흥 여행의 길로 우리를 이끌었다면, 여행의 순간을 능동적으로 바꾸는 법은 그녀들이 보여준 셈이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침대에 눕자마자 효밥이에게 말했다. "민이랑 옌이랑 여행을 계속하면 진짜 재밌을 것 같아. 오늘처럼 말이야." 나이 많은 언니의 나 홀로 짝사랑이었을까. 다음 날 문을 열자 먼저 마을로 떠난다는 민과 옌이 남겨둔 편지가 방문 앞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멀리 가지 못했다. 배가 제때 오지 않아 우리는 다시 선착장에서 만난 것이다. 그런데 표정이 심상치 않다. 민과 옌은 사람들 몰래 나를 부르더니 '언니, 우리랑 같이 쏩잼으로 가지 않을래요?'라고 은밀한 제안을 한다. 사실 국적도, 성격도, 취향도 다른 8명은 미묘한 문화 차이가 있었다. 한쪽이 해맑았다면 다른 한쪽은 심히 다크 했달까. 그래도 그 중간에는 토니가 있었다. 처음부터 우리는 토니의 즉흥 여행에 매료되어 여기까지 왔기에 결정해야 했다.
토니에게 봤었던 거친 여행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민과 옌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맑은 여행을 느껴볼 것인가.
나그네의 옷을 벗긴 주인공이 바람이 아닌 해였던 것처럼, 우리도 어둠 대신 봄 햇살 같은 맑음을 선택했다. 토니와 나머지 일행은 원래의 목적지 마을에 내렸고, 우리는 메콩강을 더 오래 달려 더 깊은 오지 마을로 향했다.
"지금 가는 쏩잼 마을은 어떤 곳이야?"
"전기도, 가스도, 인터넷도 아무것도 없는 곳이래요."
"그럼 어떻게 돌아오려고?"
"글쎄요."
해맑음에는 단계가 있다. 민과 옌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해맑은 여행의 경지에 서 있었다. 무색무취의 계획.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어둠과 맑음은 한 끗 차이였다. 우리의 여행은 어느 선택을 하던 모험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배의 모터 소리가 점점 잦아지더니 강 끝에 배가 멈췄다. 배를 모는 아저씨는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알고 오는 거여' 라는 눈빛으로 우리를 본다. 선착장에 배가 들어와도 개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아주 조용하다. 샌들 사이로 메콩강의 차가운 강물이 들어온다. 첨벙첨벙.
"진짜 아무것도 없네. 오늘 숙소는 구할 수 있으려나. 대충 하루 묵고 돌아갈까?"
"그럴까요?"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그 아무것도 없는 마을에서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홈스테이를 할 줄이야. (계속)
키만과 효밥. 2년간 부부 세계 여행 기록을 <여보야, 배낭 단디 메라> 웹툰으로 옮기다가 작가가 너무 게으른 탓에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림보다 글이 빠를 것 같아서 여행 하이라이트를 뽑아 연재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여행 이야기는 라오스 메콩강 북쪽 오지 마을에서 일어난 <라오스에 나와쓰!>다.
키만소리 (김한솔이)
2년간 남편과 세계 여행을 하다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곳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를 만들었다.
여행자에서 이제는 작가와 글방 에디터,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다.
제3회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를 출간했다.
세계 여행하면서 받은 엄마의 메일을 엮어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를 출간했다.
다수의 작품을 그리고 쓰며 활발히 연재 중이다.
인스타그램 @kiman